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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Nov 11. 2024

다르게. 진득하게.

닮고 싶은 어른이 인생에 있다는 것도 내 복

  아이가 조부모와 영상통화를 하면서 제 장난감도 자랑하고 자기 땐스도 보여주겠다는 모습에 기쁨이나 즐거움, 귀여움 따위의 긍정적인 감정 말고 또 어떤 마음이 들 수 있나. 내 경우엔 수치심이었다.   


  어렸을 때 바둑을 두었다. 조금의 관심도 없었지만, 엄마가 서예와 바둑에 보냈기 때문에 다녔다. 무엇이 전략인지 생각해 본 적 없다. 두세 수를 내다보고 둬본 적도 없다. 그냥 딱 눈앞에 있는 목표인 남의 돌 하나 잡아먹기만 해 보았다. 아버지는 바둑을 좋아하셨고, 동료들 사이에서 고스톱이나 바둑으로 내기를 하면 그날은 (당신이 좋아하시던) 과자를 듬뿍 사들고 오실 정도의 수준이 되는 분이셨다. 아버지 앞에서 오빠와 내가 바둑을 둔 날이었다. 내가 아버지 눈치를 한참 보다가 한 수를 뒀더니 아버지가 “야, 이 바보야.” 하셨다. 별것도 아니었을 수 있는 그 말에 나는 바로 눈물을 후드득 흘렸다. 나는 기가 죽을 대로 죽어있었다. 주눅이 들어 몸뚱이를 오그라트릴 수 있었다면 아마도 생쥐만큼 작아져서 소파 밑으로 들어가 숨었을 것이다. 그걸 못하니 어쩔 수 없이 앉아있을 뿐이었고, 정말로 두세 수를 내다볼 능력이 되지 않았다. 어린 나는 아, 나는 정말 아빠 판단대로 바보로구나, 그랬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다 자랄 때까지 내 마음에 내성이 생기지 않았다.


  아들이 춤을 추었다. 내 엄마가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발차기만 하는 거냐, 너무 오른발만 움직이지 말고 왼쪽도 해라, 음악에 맞지 않는 동작이다, 세세히 수정하라고 한다. 아버지가 또 다른 모습을 보시더니 그렇게 해서 뭐가 되겠냐고 웃는다. 아들이 그 말을 잘 못 들은 건 내가 중간에 아무 소리나 떠들어서 그 말을 덮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들이 긍정적인 피드백을 듣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황급히 말을 꺼냈다. 한글공부 하라고 한 적도 없는데 본인이 알아서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엄마는 산수공부도 해야 하는데, 아이가 산수는 아직 못하지? 하셨다. 엄마에게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아내는 건 기대를 버려야 하는데, 왜 아직도 그걸 못하고 또 이야기를 꺼냈는지. 남편은 여러 번 말했었다. 기대를 버리라고. 칭찬받으려는 생각을 왜 아직도 하냐고. 그러니 한글공부 이야기를 꺼내는 내 모습을 남편이 썩소를 지으며 보고 있다. 장인장모에게 그런 말씀을 마시라는 말은 못 하고, 영상통화를 마무리하려는 예의 바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귀에 쟁쟁 울리는 것만 같다. 전화를 끊고서도 남편은 말이 없었다. 나중에 이야기해 보니 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원래 그런 분들이잖아? 하지만 나 혼자 수치스러웠다.


  남편과 함께 엄마와 통화하며 들은 말들이 마구 밀려왔다. 이케아에서 옷장을 샀다고 하면 이케아 옷장 별로던데 하시고, 강북 어딘가로 이사 갔을 땐 집 구경한다고 오셨다가 다음 이사하면 아파트로 갈 수 있겠어? 하시고, 아이가 오래도록 생기지 않자 자궁 운동을(섹스를) 더 해라 하시고, 유산을 하니 몸을 어떻게 굴린 거냐 하시고, 애를 왜 흘리고 다니냐고 하시고, 부모님 집에 들어서면 자네 살이 좀 쪘네 하셨다. 내 부모를 만나는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그래서 결혼한 첫 주말부터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지금껏 11년을 빠지지 않고 주말마다 통화했지만 내 부모에게 전화를 한 건 몇 년 되지 않았다. 그것도 내키지 않아 2주에 한 번씩 한 적도 꽤 있었다. 남편은 식구란 으레 자기 식구들 같을 거라 생각하고 행동했고, 저런 식의 반응에 어리둥절해했다. 타지방 사과를 사가면 사과는 이 지역 사과가 최고인데 하시고, 고기를 사가면 고기는 어디 어디가 제일 좋은데 하셨다. 한때는 내가 부모에게 느끼는 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 부모에게도 똑같이 다정하게 대하려고 했지만, 남편도 차츰 내게 발맞춰 거리를 두었다.


  전에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찰쌀찰싹 때리는 것도 계속 맞다 보면 아픈 게 쌓인다. 더는 참을 수 없게 된 후에는 별것 아닌 찰싹 치는 게 언제 훅 들어올지 몰라 너무 두려운데, 거기에 대해 뭐라고 항의하면 상대는 고작 찰싹 가지고 뭘 유난을 떠냐고 한다고. 차라리 정신을 못 차리게 아구창을 날리면 이때다 싶어서 그야말로 당당하게 지랄을 하고 연을 끊으려고 해 볼 텐데, 집에선 평생을 그렇게 찰싹찰싹 때려댄다고.    

  

  나도 모르게 내 부모처럼 무심코 아이를 평가하며 세세하게 수정을 요구하는 모습을 고쳐야 한다는 데 남편과 나 모두 동의했다. 사소한 것들을 너무 정정하느라 신난 아이에게 찬물을 끼얹은 적이 너무 많다. 부모가 세세한 것을 매번 고쳐놓으려고 하면 아이는 자존감이 낮아진다고 한다. 눈치를 많이 보게 된다고 한다. 내가 실수하는 걸로도 족하다. 내 부모까지 아이에게 이런저런 수정의 말을 아이에게 덧붙이는 게 싫다.  이젠 전화를 다시 줄여야겠다.


  나는 너를 믿는다. 할 수 있지? 당연히 할 수 있을 거다. 네가 누구 딸인데. 난 저 말을 많이 들었는데, 시어머니는 저런 말씀을 한 번도 안 하셨다고 했다. 믿네 안 믿네 언급 자체를 안 하셨다고 한다. 이런저런 언급 없이 진득하게 지켜봐 주셨다고 한다. 걱정을 하신들 겉으로 드러내 보이지 않으셨다고. 시어머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될 수 있을 거다. 오래도록 애써야 하겠지. 그래도 닮고 싶은 어른이 인생에 있다는 것도 내 복이다. 어젯밤엔 다들 잠든 뒤 나 혼자 마루에서 한바탕 울었다. 나는 아이가 나를 닮을까 봐 출산에 소극적이었다. 무서웠다. 그런데 이젠 아들이 나를 닮아도 괜찮다. 다르게 키우면 된다. 다르게. 진득하게. 눈물을 뽑아내니 숨 쉬기 편하고 좋다. 아들에게만 바를 게 아니다. 나도 괜찮아연고를 발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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