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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복과 털양말 Sep 26. 2024

흐르나 보다

외할머니, 엄마, 나, 아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들이 시를 쓰겠다고 호기롭게 말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바로, 동시집! 내가 동시, 특히 어린이들이 직접 쓴 동시와 일기를 학교 선생님이 그러모아 낸 책을 아들에게 보여준 것이 영향을 줬을 것이다. 대부분 1학년이, 나이가 많아봤자 2학년들이 쓴 시와 일기들이었다. 아들은 그 책을 읽으면서 아주 재미있어했다. 글자를 읽을 줄 모를 때는 계속 읽어달라고 하더니, 이제 글을 깨치고 나니 혼자서 나름대로 자주 읽었다. 그 경험들은 아이에게 시가 가지는 문턱을 낮춰주었다. 어린이도 충분히 써서 책을 낼 수 있는 것이 시가 된 것이다.


  우리 집에는 시집이 많다. 한 번 왕창 걸러내어 도저히 처분할 수 없는 시집만 남겨놨는데도 책장의 한 층을 다 차지하는 것이 시집이다. 내 책장 이전에 이미 그런 책장이 있었다. 내 부모님의 책장이었다. 그곳에는 부모님이 더는 잘 손 데지 않는 책들을 모아두었고, 당시 내 방에 여유 공간이 있어서 그냥 세워둔 것이었다. 바닥칸에는 나무 문이 달려있어 무엇이 든 지도 알 수 없었다. 중학생이던 내가 우연히 그 문을 열었고  나무 문 뒤에서 시의 세계가 열렸다.

  엄마는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 대하소설과 미술사 책들을 주로 보셨다. 아버지는 종일 취재하고 기사를 써내느라 바쁘셔서 시집을 펼쳐보지 않으셨다. (아버지 손에는 담배 아니면 신문이었다.) 덕분에 두 분이 모은 200권가량의 시집이 몽땅 내 차지였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흔들림 없는 야행성이기에 모두가 잠들었을 때 방에 스탠드불 하나 켜놓고 시집을 팔랑팔랑 넘겨댔다. 뜻도 잘 모르겠지만 그 짧은 글에서 멋이 넘쳤고 가슴에 뭔가 자르르 흘렀다. 고등학생 때 무슨 시간이었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교과서 아래에 시작법 책을 깔아놓고 보다가 선생님께 걸렸었다. 선생님은 딱 걸렸어! 하면서 잡아내셨는데 뭔가 어색해하시면서 수업시간에 집중하라고 하셨던 것 같다. 그렇게 중구난방으로 펼쳐보면서 글로 하는 예술의 정점은 시인가 보다,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하니 내게도 나름의 컬랙션이 생겼다. 마종기, 황지우, 최영미, 신현림, 최승자, 윤의섭, 김선우, 진은영, 이연주, 김지하, 박노해, 황인숙... 대학에 진학하고선 없는 돈 쪼개어 시집을 샀다. 천 원 한 장이라도 지불할 때면 손이 파르르 떨리던 시기였는데도. 가방엔 필수품처럼 시집이 한 권 들어있었다. 그날그날의 기분에 따라 다른 시집을 골랐다. 그리고선 수업을 째고 잔디밭에 누워서 보고, 공강 시간에 과방에 앉아서 보고, 도서관 대출대 아르바이트하면서 아무도 대출을 하러 오지 않을 때 보았다. 학생수첩에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필사하여 찢어서 지갑에 넣고 다녔다. 그리고 일기를 썼다. 일단 펼치면 시집이니, 일기도 시 비슷하게 흉내 내어 썼다. 가망 없는 짝사랑에 화르륵 타오를 때였으니 더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 잘 가던 사이트의 익명게시판에 올렸다. 익명게시판이었지만 그 글이 내 글인 줄 아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중 하나는 자기 친구가 내 시를 너무 좋아한다고 난데없이 밝혀 얼굴 달아오른 채 두 사람이 악수를 한 적도 있었다. 시라니. 내가 어찌 감히 시를. 시처럼 고차원적 예술을!


  중학생 때 연습장 삼아 쓸 공책들을 뒤지다 낡은 상자에 처박힌 오래된 공책들을 발견한 적이 있다. 이미 쓴 페이지들은 찢어낼 심산으로 보니 엄마의 손글씨가 들어있었다. 엄마의 소설 습작이었다. 부분 부분 일기도 섞여있었다. 호기심에 좀 읽어 내려가다가 엄마의 알몸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어서 덮었더랬다. 엄마도 글을 쓰고 싶어 했다는 걸 그때 알았다. 한 번도 언급한 적은 없지만서도. 엄마뿐만이 아니다. 대학 다닐 때였나, 외할머니가 노인대학에 다니신다고 하셨다. 나는 외할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진짜 멋지세요. 할머니는 정말 시대만 잘 타고나셨으면 과학자가 되고도 남으셨을 분이에요."

  "야야, 내는 학교 다녔으면 글 썼을끼다."

  "예?"

  "내 이번에 노인대학에서 시 써가지고 잘 썼다고 발표도 하고 그랬데이."

  "......"

  "야야, 요새 사는 건 좀 어떻노?"

  "...... 맘대로 안 되네요."

  "사는기 원래 그렇데이. 혼자 잘 서 있는 거 같애도, 바닷물에 들어가 서있는 거 맹키로 물 따라 일렁일렁 흔들리는기 인생이다. 그래 흔들리다보믄 또 어디론가 가있데이. 야야, 너무 용쓰지 말고 힘 좀 빼보그레이."

  난 아직도 바보처럼 용쓰면서 살지만, 그날 외할머니와의 통화는 선명하게 기억난다. 우리 외할머니도 시를 좋아하셨다는 것과, 일렁일렁 흔들리는 게 인생이라는 말씀 때문에.


  시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래로 아래로 흐르나 보다. 혹시 아나, 내 아들의 아이들도 시를 사랑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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