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채볼 참이다

여러 명의 나에게 입을 다물라고

by 내복과 털양말

두 달 전에 공모 정보를 접했고, 마감 날짜를 맞추지 못했다. 마감날을 맞추지 못할 것 같지만 맞추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가졌으니 어쩌면 예상이 바람을 이기는 건 정해진 일이었는 듯도 하다. 잘하면, 어쩌면 제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졌으니 무조건 해낸다는 마음보다 느슨한 마음이지 않았냐 지적한다면 그래,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겠다. 마음 안에 여러 명의 내가 있어 그 안에서 비난하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하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래서 마음이 늘 시끄럽다.


아들은 매주 나흘간 한 시간씩 본인이 좋아하는 영상을 본다. 우리는 그걸 “영상 쿠폰”이라고 부른다. 평일에 쿠폰 두 장, 주말에 두 장. 아들은 주로 토일월화 나흘을 붙여서 쿠폰을 쓴다. 하루는 아들이 쿠폰을 사용하는 중에 마루로 나와 노트북을 켜고 곧 연주라도 시작할 피아니스트처럼 자판에 손가락을 올려놓았다. 그렇게 쓰다 보니 떠오르는 것도 있고 하여 두드리다가 아들이 영상을 끄고 달려오는 소리를 못 들었다. 갑자기 왼쪽 어깨 뒤로 찰싹 붙더니 아들이 물었다.

“엄마 시 써요?”

“아니.”

“그럼, 소설?”

“아니야. 그냥. 엄마는 글자 쓰는 거 좋아해.”

아들이 그걸 유치원에 가서 모두에게 말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얼버무렸다. 아들은 시나 소설을 쓴다는 말을 하기 전에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도 없는 듯하다. 나는 그 면구스러움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늘 얼버무린다. 아들의 그 거침없는 발언이 조금 대단하고 뿌듯하고 대견하여 약간 성취감이 든다.


생각해 둔 이야기는 약 45% 진행했다. 이걸 일단 마쳐야겠다. 그 뒤 전에 냈던 공모전에서 떨어진 글을 수정할 생각이다. 잘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신나게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늘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막는 것 같아서. 그 생각을 하는 사람 또한 나이니, 결국 내가 나를 막고, 그 가로막힌 나를 또 다른 내가 뒤에서 민다. 그래서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기가 그렇게 만만찮았나, 코웃음이 쉭 새 나온다. 그런데 신나 하는 내가 없는 것도 아니다. 걔는 키가 작을 뿐.


목표는 소박하다. 3인칭으로 진행되는 긴 이야기를 진행하고 마지막 마침표를 찍는 것. 그걸 해내면 또 약간의 성취감이 들겠지.


날이 좋다.

그러니 여러 명의 나에게 입을 다물라고 한 뒤 노트북 앞에 앉은 내게 글자를 조금 더 써보라고 보채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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