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월의 어느 날. 11학년 홈룸 학생들에게.
내려놓으면 된다
내려놓으면 된다.
구태여 네 마음을 괴롭히지 말거라.
부는 바람이 예쁘고,
그 눈부심에 웃던 네가 아니었니.
받아들이면 된다.
지는 해를 깨우려 노력하지 말거라.
너는 달빛에 더 아름답다.
너에게 - 서해진
쌤은 미국에 있는 대학교에서 심리학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을 탐구하는 것이 흥미로웠기 때문이죠. 그러나 생각했던 것만큼 쉽지는 않았습니다. 실험을 설계하고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은 흥미진진했지만, 통계학적인 기준으로 사람의 행동과 감정을 구분지으려는 시도는 늘 불만족스러웠습니다. 그로 인해 심리학이라는 학문에 대한 회의감이 스며들기 시작했죠. 마치 사춘기를 지나 오춘기처럼, 혼란스러운 시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2년 동안 공부를 하던 중, 환율이 높아져 미국에서의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교로 편입하기로 결정하고 돌아왔습니다. 총 세 군데의 학교 중 두 곳에는 심리학으로 지원했지만, 나머지 한 곳은 심리학과 전형이 없어 영문학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영문학과에 합격하여 남은 2년을 문학도로서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학교는 심리학으로 유명한 곳이었죠. 선생님이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는지, 영문학 공부는 이전의 심리학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었습니다. 그 시기부터 선생님은 문학소년이 되었고, 글의 아름다움과 그 사이에 숨겨진 의미에 매료되었습니다. (심리학의 아쉬움이 남아 복수전공으로 졸업하긴 했지만요.) 졸업 후, 미국 문학에 푹 빠져 대학원 석사과정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공부를 시작하기 전 방학 동안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영어 캠프의 코디네이터로 일할 기회가 생겼습니다. 40일 동안 아이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순수한 웃음 속에서 많은 행복을 느꼈습니다. 힘든 순간들도 많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소중한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캠프 이후 대학원에서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마음이 동요했고, 영어교육에 대한 비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집에서 가까운 대학원 영어교육 전공 입학 시험을 보게 되었고, 예상치 못한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영문학을 접고 영어교육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문경 GVCS 교단에서 ELA와 진로, 심리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흔히들 인생을 산에 비유하곤 합니다. 정점을 바라보며 힘들고 지쳐도 올라가야 한다고 하지만, 요즘 "사막을 건너는 여섯 가지 방법"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사막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여러분들이 자꾸 떠오릅니다. 산에서는 정상의 모습이 보이지만, 사막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고 길을 잃기도 하며 신기루를 쫓는 듯한 불안함이 느껴집니다. 목표를 볼 수 없고, 목적지에 도달했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그 사막 같은 삶 속에서, 저 역시 고등학교와 대학 시절에 많은 방황을 했습니다. 그곳이 과연 나의 목적지인지 잘 모르면서 말이죠.
지금 이렇게 제 삶을 되돌아보니, 그때 겪었던 방황이 결국은 제가 교사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던 것처럼, 저도 사막과 같은 삶 속에서 훈련받고 있음을 느낍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하고 있는 선택들이 조금씩 쌓여 결국 여러분을 목적지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어떻게 이끌어 주셨는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선택들이 어디로 인도할지 두려울 때에는 잠시 앉아 그 마음을 내려놓고 부는 바람을 느끼고 지는 해를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길 바랍니다. 그리고 비춰지는 달빛 아래에서 여러분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마음과 새 힘으로 주어진 하루를 살아가길 바랍니다.
무엇이 되기보다는 무엇을 위해 살 것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라며.
동주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