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쓰는 김기훈의 우표 한장 생활칼럼
예술이란 우연히 영감을 주는 삶의 영역이다. 그 영역 안에서 나는 간혹 운명이라는 가련한 인간의 실체를 볼 때가 많다. 어제 피아노를 아주 예술적으로 연주하는 작곡가 친구가 내 공간을 방문하여 들려준 연주는 나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사랑의 현장을 보여주었다. 나는 그 속으로 빠저 들었고 그 내용을 상상하며 음악을 들으니 온몸에는 전율과 심장에는 낭만이 가득차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오늘 소개하고자 한다.
제목은 “모란정에 돌아온 영혼 그 사랑이야기”
모란정환혼기(牡丹亭還魂記) 이다.
명대 낭만주의 작품으로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할 수 있겠다.
명나라 남안태수(南安太守)의 딸 두여랑(杜麗娘)은 늦은 봄 백화가 만발한 꽃밭에서 벌 나비를 보며 외로운 마음을 달랜다. 회춘(懷春)의 정에 못 이겨 아직 짝 없는 신세를 탄식하면서 저도 모르게 잠이 드는 가운데, 꿈속에서 버들가지를 가진 한 서생과 만나 깊은 사랑을 나눈다. 그러나 순간 꿈에서 깨어버리고 만다. 다음날 다시 꿈에서 본 장소를 찾아간 여랑은 모란정 기슭 한구석에 꿈에서 본 서생의 모습을 닮은 큰 매화나무를 발견하고 눈물 흘린다. 그녀는 이후 꿈속 서생을 그리워하다. 상사병과 몽유병자가 되어 끝내 죽었고, 유언에 따라 매화나무 밑에 묻혔다.
“꽃도 피고 지는 시절이 있어 꿈속에서 만난 그 사람 한번 보고 죽었으면 여한이 없겠건만 떨어지는 눈물은 염라대왕의 술잔에도 꽃을 피우는구나”
그녀의 영혼은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자신이 왜 죽었는지 모른다고 하며 한탄하였다. 이에 염라대왕은 사랑 때문에 죽었고 사랑 때문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한 번만 내 사랑을 다시 보게 해 주세요”
相見時難 別亦難(상견시난별역난)
만나기도 어렵지만 이별 또한 쉽지 않네
東風無力百花殘(동풍무력백화잔)
동풍이 멎으니 온갖 꽃이 시들고
春蠶到死絲方盡(춘잠도사사방진)
봄 누에는 죽을 때에야 실을 뽑아내고
蠟炬成灰淚始乾(납거성회루시건)
초는 다 타서 재가 되어야 눈물이 마른다오
曉鏡但愁雲鬢改(효경단수운빈개)
새벽에 거울 보며 머리털이 희어짐을 염려하고
夜吟應覺月光寒(야음응각월광한)
밤에 시를 읊으며 달빛의 차가움을 느낀다네
蓬萊此去無多路(봉래차거무다로)
님 계신 봉래산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으니
靑鳥殷勤爲探看(청조은근위탐간)
파랑새야 나를 위해 살며시 찾아가 주려무나.
-당대 시인 이상은의 무제-
한편, 꿈속 주인공인 광둥(廣東)의 서생 유몽매(柳夢梅)는 서울인 임안(臨安)으로 과거 보러 가는 길에 병을 얻어 남안에 머무르는 중에, 꿈에 나타난 여랑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의 꿈은 현실과 꿈속에서 교차로 그 대상에 대한 사랑에 빠지고 현실에서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을 꿈속에서 이룬다. 그리고 그 꿈을 다시 현실에서 이루기 위해 서로의 꿈에 나타나 실현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사랑이 꿈만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정작 현실에서는 사랑은 꿈인데 말이다.
염라대왕은 여랑의 이야기를 듣고 그녀에게 기회를 준다. 만약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을 꿈속에서 다시 만나게 해 줄 테니 사랑을 이루어 보라며 저승에서 유명한 화공에게 여랑의 초상을 그려 봄바람에 그림을 유몽매에게 날려 보낸다. 유몽매는 그림을 보고 순간 잠에 빠져 여랑을 만난다.
“낭자! 낭자는 누구시오? 누구신데 내 꿈속에서 나를 떨리게 하시오?”
“도련님 소녀는 도련님을 꿈속에서 만나 사모하다. 뵙지 못하고 죽어 구천을 떠돌다. 다시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도련님 꿈속에 나타난 것입니다. 부디 모란정 매화나무 아래 제 무덤을 파서 저를 다시 환생케 하옵소서”
유몽매는 여랑의 말대로 무덤을 파니 그 속에서 모란꽃이 만개하며 두여랑이 환생하게 된다. 그 대목을 두고 후대의 많은 소설가 들은 극적인 효과의 절정을 이 작품에서 배우게 된다.
“꽃이 피네 꽃이 피네 저승에서 돌아온 새벽이슬 모아서 사랑하는 낭군 찾아 꽃을 피네 봄바람은 사모하여 내님에게 닿았고 떨어지는 매화는 그 향기를 머금었네 아 이것이 꿈이냐 생시이냐!”
여랑은 환생하여 몽매와 혼인하려 하지만 죽었다 살아난 딸은 보는 아버지는 그 결혼을 반대한다. 딸을 죽게 한 장본인이 바로 유몽매였기 때문이다.
“너를 죽게 한 그놈이 원망치도 않으냐?”
“죽고 사는 것은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 온데 차마 사랑 때문에 죽었다는 이야기는 염라대왕도 여한이라 하였습니다. 다시 살았으니 이 또한 사랑 아니옵니까?”
결국 둘은 사랑을 승낙받고 몽매 또한 과거에 급제하여 입신양명하여 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이 이야기는 매우 낭만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어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또한 홍콩 영화 천녀유혼의 소재로도 사용되었다.
요즘 젊은 친구들이 들으면 무슨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 작품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것은 바로 진정한 사랑은 영혼이 전하는 감정의 시작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정신적인 부분의 사랑을 먼저 찾아야 육체적인 사랑도 더 큰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요즘 연예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상대방이 술에 취하거나 약물에 취해 의식이 없는 경우에 성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그것을 또다시 촬영하여 한낯 성적 노리개로 삼는 경우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영혼이 없는 죽은 시체를 붙들고 자신의 상상만을 채우는 동물적인 본능이 슬프기만 하다. 그 무서운 범죄의 현장에서 시체가 다시 잠에서 깨어 살아나면 그 얼굴을 어찌 보려고 그러는 것인지.
인간의 죄는 스스로의 욕망에서 비롯되지만 사랑이란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은 꿈같은 존재이다. 그 사랑이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인연을 만드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남녀의 사랑에는 생명이라는 고귀한 탄생이 있기 때문에 말이다. 나무가 꽃을 피우고 난 자리에 열매가 맺는 것처럼..........
이 봄날 아름다운 사랑을 꿈꿔본다!
2019년 3월 14일 북경에서
사족 :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기 전 와인 한두 잔은 매우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