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의 아침에 쓰는 우표 한 장 생활칼럼
오늘 유난히 다니던 모교 사진들을 찾아보게 되었다. 앞만 보고 살아오던 시간들에 왜 그리도 추억을 더듬어 보지 않았는지 생각이 든다. 앉아서 차 한잔을 마시며 지난 시절들에 대한 장소와 사람 그 추억들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유난히 부유했던 첫 국민학교 시절 서울의 한 사립학교를 다닌 기억은 지금도 슬프다. 왠지 풍요하지만 아이들이 저마다 잘난 집안의 영향인지 그런 환경에 거침없고 건방진 면도 없지 않았다. 하루는 내가 학교에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지고 갔는데 어느 녀석이 내 서랍에 넣어둔 그 장난감을 훔쳐가 버렸다. 나는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는데 그 상황이 지금도 생각하면 사회의 현실과 비슷했다. 장난감을 훔쳐간 아이는 모기업의 잘 나가는 집안의 아이였고 상대적으로 나는 부모님이 학교에 잘 오지 않는 평범한 아이였다. 선생님은 학교에 장난감을 가져온 네 잘못이라며 그 아이에게 내 장난감을 선물로 주셨다. 도둑놈에게 아부하듯이 참 어처구니없어 어린 마음에 상처를 받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난다 긴다 하는 집안의 부모들이 그 학교에 지 자식들을 보내 놓고 하루가 멀다 하고 선생들에게 촌지에 값비싼 선물을 같다 바치는 꼴이 참으로 역겨운 모습이었다. 한 번은 어느 재벌가 아이가 그래도 쪼금 사는 집 아이에게 몇 대 맞은 일이 있었다. 그 제벌가 아이를 대동하고 오신 선생님은 우리 반 수업 중에 막무가내로 들어와 때린 아이를 멱살 잡으며 어떻게 때렸냐고 다그치는 모습에 정말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돈과 권력에 의해서 갑을이 정해지는 세상의 이치를 이미 그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그 무식한 선생과 그 뒤에서 웃음 짓는 아이의 장면이 섬뜩하게 인식시켜주는 것 같았다.
우리 집 가세가 기울며 나는 공립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런데 그 사립학교에서 전학 온 나는 공립학교의 교육방식에 적응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립학교에서는 교과서를 공부하지 않고 외국 영어 교제에 방송 학습에 수영, 스케이트, 스키, 그리고 지금 들어도 생소한 집단체조 이런 걸 배웠었다. 공립학교는 교과서와 숙제 체육이나 간단한 미술활동을 하였고 나는 그 안에서 아이들의 군중 심리를 선생님이 얼마나 잘 이용하는지를 보았다. 내가 학습을 잘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 선생님은 나보고 니네 집은 돈도 많아서 사립학교 보냈는데 너는 왜 잘 따라오지 못하냐고 다그쳤다. 그러던 와중에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반 아이들이 길게 줄을 서서 상납하는 모습을 보았다. 선생님은 물건 하나하나 보면서 주는 아이 얼굴을 기억했다. 나는 그 모습에 나도 무언가를 줘야겠다는 생각에 집에 굴러다니던 보석 목걸이를 선생님께 갔다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의 태도는 180도 달라져서 그다음 날부터는 내 칭찬만 하시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목걸이 줄이 짧으니까 다른 종류로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전하라고 하셨다. 나는 그때 우리 선생님은 보석에 약하시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시고 우리 집은 가세가 많이 기울어 나는 저 전라도 시골마을에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 서울에서 전학 온 나를 시골아이들은 신기하게 보았고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골아이들보다 더 시골 아이처럼 지냈다. 비 오면 미꾸라지나 가물치를 잡으러 다녔고 할아버지의 심부름도 잘 다녔다. 시골학교의 인심은 좋았고 옷도 잘 못 입고 다니는 내게 시골 선생님은 자기 아들이 입던 옷을 입혀 주시기까지 했다. 순박하고 정다운 농촌의 인심을 왜 그 큰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했을까? 그때의 정감과 인정은 내가 요리를 하게 된 큰 밑거름이 되었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해주는 삶이 값지다는 것을 바라기만 하는 요즘 더욱 반성하게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는 대전으로 이사를 와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중학교에 입학한 나는 할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소년가장처럼 근근이 살게 되었다. 그런 나를 가엽게 생각하신 체육 선생님은 틈만 나면 내게 살아가는 이야기와 앞으로의 꿈 그리고 대전의 유명한 성심당 빵을 자주 사주시곤 하셨다.
사람은 상처를 주기도 하기만 상처를 치유하기도 한다. 이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변화무쌍한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요 며칠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파업을 한다 뭐한다. 난리를 치고 있다. 아이들을 돈으로 보고 장사하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틀림없다. 아이들 급식비를 유용해서 명품가방을 사고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으면 우르르 일어나 파리 때처럼 웅성거린다. 세상에 깨끗한 면만 보고 살 수는 없지만 썩은 내가 진동하는 이런 교육환경에서 씁쓸하지만 지나온 나의 학창 시절 선생님들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교육의 목표는 감동에 있다. 감동이 없는 교육은 인간을 기계로 만들고 형식적으로 치우치게 한다. 부족하지만 따뜻한 마음 넘치지 않지만 인자한 스승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교육자의 태도가 다시금 생각나는 하루다.
3월 2일 북경에서 달도선인 김기훈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