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의 이면
부끄러움과 겸손함은 닯은 구석이 있다.
더 정확히는 부끄러움은 겸손함을 갖추게 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 없이는 발전이 없다.
요즘 흔히들 얘기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의 성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어떤 목표가 있을 때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면 비난받을까 봐, 부끄러워질까 봐 시작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 땐 작은 목표로 나누라는 것이다. 나눌수록 성취 가능성이 높아지고 자신감이 생겨 추진력 있게 결과물을 계속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실수 좀 했다고 해서 창피해 하거나 이뿔 킥을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당연한 수순이며, 그 누구도 실수 없이 살아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그 분위기 읽는 능력이라는 거는 경험에서 나오는 거지, 안 하는 거에서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아무것도 안 해서 실수를, 실패를 안 해본 걸로 메타인지가 상승하는 게 아니라 내가 갖다 박아봤는데 실수했어, 그러면 메타인지 올라가는 거거든요. 범인은 그래요.
그럼 나가서 그런 부끄러운 시선 한번 받아보고, 얼굴 시뻘게져서 집에 와가지고 민소매를 집어 찢을지 아니면 내가 3개월 더해가지고 3개월 뒤에 입을지 뭐 그런 걸로 고민도 좀 해보고 이불킥도 좀 해보고 이게 다 경험이고 인생사는 재미고 이런데,
나가서 창피당하면 인생 끝나는 줄 알고 이런 게 너무 아쉬워요"
< 유튜브 '흑자헬스' >
영업을 겸하는 직군이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회사를 다니면 참 사람 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아진다. 윗사람과 든 아랫사람과 든 대화를 할 때 스몰토크 주제는 연차를 더할수록 쌓여만 가고, 새로 만난 사람과 웃으며 인사를 건네고, 내 전화가 아니더라도 당겨 받아서 자연스럽게 응대할 줄 알게 된다. 그리고 너무하다 싶으면 뜻하는 바를 정확하게, 하지만 담백하고 간결하게 말할 줄 알게 된다.
그럴 수 있는 것은 윗사람과 처음 만날 때, 성향이 다른 실무자와 처음 만날 때 할 얘기가 없어서 어색해지거나 괜히 안 어색한 척 이것저것 몰아붙이다가 더 이상 해진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어떤 얼굴로 어떤 톤으로 말을 걸어야 할지 몰라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상대방의 리액션을 봐왔기 때문이다. 전화를 받을 때는 '또 무슨 요청을, 무슨 문의를 하려고' 하면서 받고, 다양한 상황마다 어떤 용어와 매너로 받아야 하는지 몰라 쩔쩔매 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당한 마음을 꾹꾹 눌러 담다가 결국 터져서 얼굴에 다 티를 내거나 욱해서 윗사람에게 무례하게 말해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근데, 영업을 하지 않던 직군에서 일할 때는 이 임계치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그냥 문제만 안 일으키고 자기 일만 잘하면 회사에서 1인분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루틴 한 상황들에 대해서만 적응을 하고 업무능력 자체가 성장하거나 전체를 볼 수 있는 인사이트가 늘어나진 않았다.
누군가의 찡그린 얼굴을 마주하고 누군가의 거절을 맛봐야 '이런 건 좋은 거고, 이런 건 나쁜 거구나'를 알 수 있다.
마음껏 부끄러워보자.
얼굴이 새빨개질 정도로 부끄러워 보자.
"내 모든 오감에 유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