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을 위한 성실함
큰 목표를 작은 목표들로 세분화하여 하나씩 달성하는 방식을 좋아한다. 그 과정에서 '잘 해야만 한다'는 중압감도 내려놓고 성취감도 챙겨보고 있다. 하지만, '이다음은 뭐지?'라고 생각했을 때막막해지는 단계가 있다.
진화 과정에서 높은 성실성은 당시 환경에 따라 저주가 되기도, 축복이 되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매우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는 그날 어떤 일을 하는 것이 가장 좋은지 미리 알 수 있기 때문에 높은 성실성이 자연선택된다. 성실성 수치가 높은 사람은 집중력이 강하고, 체계적이며, 산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 적합하다.
반면에,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서는 순간순간 주어진 상황에 즉각 충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적합하다. 이렇게 유연성이 필요한 시기에는 성실성 수치가 높은 사람이 불리하다. 일상의 변화를 싫어하고 그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환경이 예측 불가능하고 유동적일 때는,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 증상을 가진 사람같이 성실성 수치가 낮은 사람이 유리하다. 오늘날 넓은 스펙트럼의 성실성 수치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거에 인간이 경험한 자연선택에 일관성이 없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 대니얼 네틀 - 성격의 탄생 >
'강박 성격장애'라는 정신장애가 있다. 성실성이 극단적으로 높은 정신장애인데, 책 '성격의 탄생'에서는 유연성, 개방성, 효율성을 포기하고 정신 및 대인관계에 대한 통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증상이라고 한다.
주변에 한두 명씩 있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사례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규칙이나, 스케줄, 자신만의 원칙을 지키는 부류들.
이런 사람들이 쉽게 놓치는 것은 '수단'과 '목적'이다. 마치 '아침형 인간'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목적을 이루려고 했던 사람이 '아침형 인간'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릴 수 있다. '미라클 모닝' 자체가 목적이 된 사람인 셈이다. 이런 사람들은 충동적인 반응을 억제하는 전두엽 메커니즘이 너무 강하다고 한다. '신경성'이 높은 여성의 경우에는 너무 높은 성실성에 의해 '섭식장애'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전두엽의 억제 메커니즘을 사용해 음식 섭취를 과도하게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성실성'이 높은 부류들은 '수단' 자체를 계속 달성해야 하기 때문에 워커홀릭이 되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시간을 낭비라고 생각하고, 무언가를 성취했을 때 그다음 스텝이 없으면 두려워하기도 한다.
물론, 사람마다 성실함의 정의와 성실함을 보여주는 범위가 다 다를 것이다. 어떤 분야나 순간에는 '성실함' 자체가 1순위로 필요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너무 슬프게도 성실함 하나만으로는 계속 나아갈 수 없다.
물론, 처음엔 너무 잘하려고 하면 시작도 못한다. 큰 목표만 바라보면서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채 오랜시간 고민하고 씨름하기엔 가야할 길이 멀다. 그리고 결과를 내봐야 뭐가 어색한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 보인다. 그렇기에 서툰 결과들을 성취해보면서 성실함으로 커버한다.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작은 성취들이 주는 만족감과 위안에 중독되면 안된다. 더 큰 목표를 위한 저항을 뚫어야 한다. 이제는 좀 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 더 프로다운 결과를 내는 것에 신경 써야 한다.
생각을 정리하겠다는 목표로 글을 조금씩 쓰고 있다. 누군가 봐주지 않더라도 자기만족도 어느정도 충족되고 글이 쌓이면서 서로 다른 글을 합쳐볼 생각도 하고, 다시 읽으면서 표현들을 좀 더 압축시켜 보기도 한다. 성실한 나 자신을 보면서 큰 뿌듯함도 느낀다. 근데, 이 다음은 뭐지?'라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글 하나로 오랜시간 소모하기멘 쓰고 싶은 주제가 많다. 글로서 완성해봐야 뭐가 어색한지,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이 될 수 있는지가 보인다. 그렇기에 서툰 글을 써대면서 성실함으로 커버한다. 하지만, 분명 한계가 있다. 이제는 좀 더 독자에게 필요한 글, 더 잘 다듬어진 글을 써야 한다. 난 독자에게 화살처럼 날아가 쿡! 박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저 스쳐가듯 향기만 남기는 글이 아니라 오래 기억에 남는 글을 쓰고 싶다.
내 모든 오감에 유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