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갑은 없다.
영업과 연애는 닮은 점이 참 많다.
그중 하나는 받는 사람은 주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
좀 더 직관적으로 표현하자면 '갑'은 '을'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영업에서는 물론이고 연애에도 미세하게라도 갑과 을이 정해져있기 때문이다.
을은 늘 갑을 보며 고민하고 연구하고 반응을 살핀다. 하지만 갑은 굳이 을의 마음이나 상황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받는 입장'은 그 자체로 여유롭기 때문이다. 마음이든, 서비스든, 제안이든, 어떤 것이든 누군가에게 받는 입장에 서 있을 때 우리는 쉽게 ‘평가자’가 된다. 그리고 평가자라는 자리는 대체로 냉정하고, 때로는 무심하다.
영업을 할 때 무언가를 제안하고, 요청하고, 설명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기분을 살핀다. 그러나 결정권을 가진 쪽, 즉 '갑'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뒤의 사정이나 노력을 헤아릴 필요 없이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다. 이건 그 사람이 나쁘다거나 예의가 없어서가 아니다.(물론 그런 사람도 많다.) 관계의 구조 자체가 이해의 방향을 편향적으로 만든다.
연애에서도 호감을 먼저 표현하는 쪽은 매 순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자기를 드러내고, 거절에 대한 두려움을 감수한다. 하지만 받는 쪽은 생각보다 무심하다. 왜 저 사람이 나를 좋아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그 애씀의 무게를 체감하지 못한 채, 당연한 듯 받아들이거나 심지어 가볍게 흘려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갑이라고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갑의 위치에서 다양한 제안과 영업을 받는 입장이더라도, 언젠가는 을의 위치에서 고개를 숙이게 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리고 그 순간에는 과거의 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던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반대도 성립한다. 지금 을이더라도, 다음 게임에서는 갑이 될 수 있다. 우습게도 갑이 되면 을 시절 기억을 까먹는다. 아마도 인간이 효율적인 동물이라 뇌를 최적화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영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영원한 갑은 없다.”
갑이라고 너무 우쭐대지도, 을이라고 너무 상처받지도 말라는 의미이다.
연애에서도 오늘은 마음을 전하다가 거절당했지만, 내일은 누군가의 고백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우리는 상대방의 마음을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한다. 지금 받는 입장이라면, 주는 사람의 진심과 애씀을 무시하지 말고 그 무게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주는 입장이라면, 거절이나 무관심 앞에서도 너무 쉽게 상처받기보다, 이 갑과 을 시스템 안에서 나의 노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영원한 갑도 없고, 영원한 을도 없다.
중요한 것은 역할이 아닌, 역할을 대하는 나의 태도이다.
내 모든 오감에 유난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