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xxx나라 xxx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xxx입니다

모로코 여행기 2편

by Min
지구가 망하면 다시 사막에 올테야

3월 1일

모로코, 진짜 모로코다. 사막에서 택시를 타고 페즈 도심으로 넘어왔다. 지금까지는 사실 모로코보다는 그냥 세계 어딘가에 있는 사막에 왔다는 생각이 컸는데, 현지 시장과 골목에 넘어오니 비로소 모로코라는 나라에 왔다는 실감이 나는 것 같다. 나는 각 나라의 시장을 돌아보는 것이 참 좋은데, 시장에서의 활기, 그러니까 무언가를 사고 파는데에서 느껴지는 삶의 활력이 좋아서인 것 같다. 그리고 시장은 현지 사람들이 사고 파는 물건들을 통해 그들이 주로 뭘 먹고, 뭘 입고, 쓰는지 알 수 있게 해주기도 한다.


페즈 시장 안은 갈색과 노란색 계열의 낡은 벽과 골목들이 미로처럼 되어있었고, 예상했던 것보단 거리가 깨끗해서 놀랐다. 그래도 분위기를 보았을 때 혼자 다니면 위험할 것 같아 친구들과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그리고 고양이가 정말 많다.

모로코는 삐끼라고 하는 호객꾼들이 정말 많다. 우리가 가는 곳마다 길을 안내하려고 하는 건지 덤탱이를 씌우려고 하는 건지 그 의중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뭐라뭐라 말을 많이 얹는다. 아, 인종차별도 아직 만연한 나라인 것 같다. 친구들이랑 우스갯소리로 시장에 들어와 몇 초안에 인종차별을 당할지 말해보자고 했는데 정말 30초도 안 걸린 것 같다. 이들은 아시아인들을 보면 십중팔구 냅다 중국말로 인사을 하는데, 확률상 아시아인 중 한 명을 찍으면 뭐, 중국인으로 찍는게 아주 형편없는 도박은 아닌 것 같아 속으로 웃었다.


왜 특정 나라의 인삿말이 인종차별의 지표가 되었을까? 궁금해서 친구들과 얘기를 나눠봤는데, 어느 나라 말인지와는 관계없이 한 사람을 보자마자 어떠한 인종의 범주로 단정지어 바라보는 것 자체가 무례한 거라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은 왜 남을 범주화하고는 못 배길까. 내 생각에 모든 차별은 범주화에서 시작된다. 성차별, 학교 차별, 지역 차별, 인종 차별.. 그런데 동시에 이런 차별들을 해소하려면 그들을 새로운 범주로 묶어버리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학창시절에는 성격, 성별에 따른 갈등이 많을 때이기도 하지만, 부조리한 선생님과 학교 앞에서 쉽게 단합할 수 있다. 학교 내부에서는 크고 작은 단체들 간의 갈등이 있지만, 다른 학교가 적이라면 갑자기 '우리 학교'라며 쉽게 단합할 수 있다. 지역이 적이라면? 나라가 적이라면? 인종차별은 나라의 범주화에서 멈춰있다. 그럼 이를 해결하려면 우주를 적으로 만들어야 하나? 아놔. 무슨 이런 피곤한 종족이 다 있는지. 문득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결국 인간은 그런 식으로 이 세계를 분할하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었다. 위도 몇에 경도 몇.. 결국 그곳에 한 인간의 좌표가 위치해 있고, 우리의 삶은 여간해서 그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xx사단 xx연대 xx중대 xx소대 ooo상병이라 든지, xxx회사 xx부 xx팀 ooo대리라든지, 그런 소속과 계급이 없는 듯 보여도 결국은 xxx주식회사 xx부 xx팀 ooo대리의 아내라든지.


나는 xxx행성 xxx나라 xxx지역 xxx학교 xxx학년 (여)학생이다. xxx지역에 있는 xxx학교를 나온 xxx세의 ooo이기도 하다. xxx지역에 태어나 xxx학교를 나와 xxx회사에서 일을 하는 ooo아빠와 엄마의 딸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볼까? 그런데 지금은 그 좌표에서 살짝은 벗어나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슬쩍 웃었다. ㅁㅁㅁ나라 aaa학교 bbb학과 ccc학생이 되어 있다. 후후. 여간해서는 어떠한 좌표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새로운 좌표를 여러개 만들면 된다. 그러니 끝도 없이 적을 만들어야 하는 불쌍한 차별주의자들아! 부디 새로운 좌표를 만들어보길 바란다!


내가 누구든 될 수 있다는 마음은 차별이 얼마나 부질 없는 것인지를 알려주고, 누군가를 차별한다는 건 역으로 본인은 그 좌표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라는 슬픈 결론을 부른다.

해가 지는 것 같아 숙소에 들러 짐을 정비하고 밤 산책을 하러 다시 나왔다. 하늘은 파란빛과 보라빛이 섞여 밤인데도 밝은 빛을 만들어냈고, 도로가 한산해서 산책하기 좋았다. 중간에 사이렌 소리가 들려서 전쟁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그냥 기도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안심했다. 높게 지어진 성벽을 따라 걸으며 친구들이랑 여행 복기도 하고 영상도 찍었더니 금새 어두워져서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 조식도 먹고 택시 기사님들이랑 가격 기싸움도 해야 하니 일찍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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