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황없는 삶의 연속인 것 같다.
책 디자인과 편집, 유튜브 영상 제작, 스마트 스토어 관리, 글쓰기...
하루에도 여러 벌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프리랜서의 삶이란 그렇다.
그나마 지난 2월, 2년간 붙들고 있던 농학 공부를 마쳐 졸업을 하고
아들의 길고 길었던 겨울방학도 개학을 해서 여유가 생긴 편이다.
오랜 시간 타인의 글을 편집하면서
'내 글, 내 책은 언제 쓰겠나.' 하는 푸념이 새어 나와
내 글을 차곡차곡 모아보자는 취지로 브런치를 시작했는데
글의 주제도 어느새 경황없이 흩어지고 있다.
글도 결국 쓰는 사람의 삶을 꼭 빼닮는다.
나를 향해 다재다능하다는 사람들의 칭찬이
언제부터인가 '산만함, 집중력 결핍'으로 들린다.
다른 건 몰라도 글쓰기는
죽을 때까지 꾸준히 끝까지 하고 싶다.
한 가지 일을 오래 밀고 나갈수 있는
집중력과 끈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누군가와 '함께할 때'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제 10년 넘게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얼굴을 못 본 지는 15년쯤?)
친구에게서 반가운 전화가 걸려왔다.
문예 창작을 전공했던 친구는 '잃어버린 10년'을 살았다.
10년간 4명의 아이들을 낳아 키운 이 시대의 애국지사다.
친구의 돌봄과 사랑을 오롯이 받고 있는 아이들은
누가 봐도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자라고 있었지만
10년의 절필은 어딘지 모르게 친구를 시들게 만들었다.
아이들이 존재하기 전, 글에 쏟아붓던
친구의 열정과 탁월한 재능을 알기에
몇 주 전 나는 안부 인사 겸
언젠가 너의 글을 출판하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다.
네 명의 아이들과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는 걸 알기에
큰 기대 없이 건넨 인사였다.
물론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와 함께 책을 만들 수 있다면
나에겐 로또 같은 행운이고 행복이지만
다둥이 엄마에게 현실적으로 너무도 어려운 일이기에
큰 부담을 주기보다 편안한 소통의 끈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는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하겠다고. 다시 글을 써보겠다고.
사실 요즘 친구는 넷째까지 어린이집에 보내고
자신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때마침 출판을 제안하는 나의 문자는
친구를 더욱 혼돈의 소용돌이에 몰아넣었고
치열한 고민 끝에 나에게 전화한 것이다.
끝까지 글을 쓰고 책을 완성하고야 말겠다는 내면의 열망에
우리는 공명했다.
어릴 적 교환 일기를 쓰듯 계속 글을 주고받으며
공저로 만들어 보기로 했다.
친구는 흔쾌히 수락했고 나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내가 먼저 내민 손이지만
이제는 그 친구가 나를 붙들어줄 것 같다.
그렇게 서로를 밀고 당기고 의지하며
서로에게 가장 살가운 저자이자 독자가 되어줄 것이다.
계속 끝까지 쓰게 하는 힘!
'함께' 일 때 강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