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할머니의 정원> 돈 케이시 글, 제시카 커트니-티클 그림
몇 해 전 시아버지의 텃밭 정원에서 '천리향'을 봤다.
꽃향기가 천리까지 퍼진다는 이 나무의 꽃향기를 꼭 맡아보고 싶었다.
집에 돌아와 천리향 화분을 사서 키워보았지만
겨우내 알 수 없는 이유로 시름시름 이파리를 떨구고
뿌리가 썩어갔다.
봄이 오면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희망을 품고
우리 집 식물들의 무덤 내지는 영안실 비슷한 베란다 한구석에 두었다.
놀라운 것은 내게 반죽음 당한 천리향이
친정 엄마의 손에 살아난 것이다.
뼈다귀처럼 가지만 앙상하게 남았던 녀석 곳곳에
새순이 돋은 사진을 보고
어메이징 그레이스 할렐루야가 절로 나왔다.
죽어가는 나무도 살리는 사람.
나무의사 자격증 따위는 없어도
우리 엄마는 그런 사람이다.
엄마는 늘상 생명을 돌보고 가꾸길 좋아하신다(식물이든 사람이든).
요즘 같은 봄날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카톡방에 꽃사진을 올리신다.
때마다 철마다 차례로 피는 꽃을 보고
소녀처럼 탄성을 터뜨리며 꽃처럼 웃고 행복해하신다.
엄마는 알고 있을까.
엄마보다 예쁘고 아름다운 꽃은 없다는 걸.
엄마꽃이 활짝 미소 짓는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 싶은 딸의 마음을.
<우리 할머니의 정원>의 주인공은 할머니와 손녀이다.
"들꽃들이란다.
꿀벌들의 식량이지."
할머니의 정원 수업은
언제나 '오~ 우와!'같은 탄성으로 시작할 것 같다.
보고 듣고 만지고 킁킁대고 심지어 크게 한입 베어 물 수 있는
정원에 가득한 생명들.
손녀는 책과 모니터로만 배우는 것과 다르게
생명을 입체적이고 관계적으로 알아간다.
사람에게는 쓸모없어 보이는 잡초와 작은 귀퉁이도
작은 동물들에게는 오솔길이 되고
아늑한 집이 되는 걸 알게 된다.
색과 모양이 제각각인 씨앗과 열매, 그리고
시간이 자라 계절이 건네주는 선물을 보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인내하는 법을 배워간다.
우리를 둘러싼 다른 생명들을 통해
우리네 인생도 성장하고 무르익고 소멸해 가지만
결국 다시 생명을 터트리고야 만다는 것도 깨달았을 것이다.
소녀는 그렇게 할머니의 텅 빈 의자,
죽음, 겨울의 쓸쓸함과 그리움까지 어렵게 배운다.
하지만 죽음 같은 겨울을 보내고
다시 생기로 온 땅을 뒤덮는 정원의 생명들.
소녀는 그 힘으로 계속 자라가고
자신의 아이에게 다시 할머니의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준다.
정원은 할머니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할머니의 미소를 닮은 꽃들이 활짝 피고
정원 구석구석을 돌보며 그때의 추억들은
조금도 낡아지지 않고 생생하게 반복된다.
사랑하는 누군가를 오래 기억하기 원한다면
누군가가 당신을 오래 기억해 주길 바란다면
함께 정원이나 텃밭을 가꾸는 건 어떨까?
낡고 썩어질 물건에 집착하기보다
영원한 치유와 소생의 땅에서
함께 씨앗을 심고 꽃을 보고
열매를 거두며 생명을 나눈다면
항상 새롭고도 한결같이
서로를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 출처 : 알라딘 미리보기,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