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길 봐! 가족이 다 삼각형인데 혼자 원형이야.
근데 세 군데가 누가 자른 듯한 느낌이야. 둥글지 않아.
너, 완벽한 원형도 아니구나?
그럼 아무것도 아닌 모형이네?
왜 존재하는 거야?
그렇게 삼각형 집에 탈출하기 위해 19살에 기숙사가 있는 공장에 취직을 했다.
나를 보낼 땐 모두 후련해 보였다.
드디어 네가 키워준 값을 하는구나!
앞으로 우리를 위해 돈을 바치렴.
사실 2년 동안 아르바이트하면서 학비뿐만 아니라 동생 핸드폰 요금, 집안 생활비, 삼각형들은 단 한 번도 챙기지도 않았던 생일선물을 챙겨줬다.
성인이 되고 나서 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돈이 없다고 해서 익숙하게 내가 냈는데 여자친구 생일선물 골라달라며 백화점을 둘러보자고 말한 적이 있었다. 아무 말하지 않고 쳐다보니 그제야 아차 싶었는지 변명을 하는데 그때는 그 모습이 얼마나 밉던지
이 또한 억울하지만 받아들였다.
이유는 나도 일원이 되고 싶었다.
그들의 웃는 모습보다 인정해 주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다.
잘려나갈 때마다 피가 나는지도 모르고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게 내가 살 수 있는 길이었고 살아가는 이유였다.
고등학교 때 만나 지금까지 연락하는 친구가 있다. 이 모든 과정을 다 보고 같이 울어준 살아있는 내 과거다.
내가 가족에게 휘둘릴 때마다 삼각형들이 나를 찌를 때마다 위로해 줬다.
학교 끝나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내 곁에 항상 있어줬다.
용돈이 없는 나를 데려다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사주거나 자기 집으로 데려가 라면을 끓여줬다.
한 번은 거금을 들어 10만 원 가방을 샀는데 동생이 자기 것도 사주지 않으면 조부모님에게 말한다고 하자 친구에게 전화해 오늘 백화점 열었는지 물어봤는데 듣자마자 소리 질렀다.
"그 새끼가 너 협박해서 사달라고 하는 거지? 사주지 마! 알았어?"
나는 너무 당황해서 끊어버렸고 동생 역시 당황했는지 그날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넘어갔다.
공장은 2교대였는데 한 달은 혼나면서 배웠다. 그 당시 때 가장 무서운 선배에게 배웠는데 하나라도 잘못되면 될 때까지 가르치는 분이었다. 어린 나이에 무서웠지만 삼각형 집에서 탈출해야 했기에 꾹 참았다.
그리고 두세 달쯤 됐을 땐 내가 에이스가 돼있었다.
내가 맡았던 곳이 제일 어렵고 많이 퇴사하는 곳이었는데 드디어 복덩이가 굴러왔다며 좋아했다.
힘든 기색을 보이거나 퇴사하고 싶다고 하면 조장이 첫 번째로 달려와 야간에 배달까지 시켜주며 달래줬다.
첫 직장 시작은 좋았지만 첫 독립은 힘들었다.
조부모님이 너무 보고 싶었다. 혼자가 무섭고 두려웠다.
삼각형이었던 원형도 가족이 필요했다.
나를 반기지 않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고 쫓겨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짐이 많아서 동생에게 와달라고 했지만 철저히 무시했다.
돈 준다고 하면 왔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보러 오지 않았다.
울면서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님은 눈물로 젖어있는 이유를 듣곤 집 앞까지 짐을 옮겨주셨다.
기사님도 선생님처럼 다정하셨다.
집 밖에는 이유 없이 다정한 사람이 가득한데 왜 다시 들어가려고 하는 걸까?
이미 잘려버려 진 모형인데 대체 왜
문을 열자마자 할머니는 소리 질렀다.
할머니, 저도 한때는 삼각형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