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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증기 Oct 14. 2024

나는 우울증 여행 중 5

서로 다른 짐승이어도 눈빛으로 알 수 있어요



쿡쿡 찌르던 배 통증 원인은 역류성 식도염이었다.

난생처음으로 수면마취를 해봤고 밖에 기다리는 보호자가 있는 경험도 처음이었다. 돈 걱정 없이 내 걱정만으로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조부모님과 살았을 땐 그 흔한 치과, 산부인과를 가지 않아 중간에 엄마가 남매를 치과에 데려가 치료해 준 적이 있다. 고등학생 때 이가 너무 아파 할아버지와 병원에 간 적이 있는데 당시에 100만 원이 넘는다는 말에 치료해주지 않았다.




그러나 동생 대학비는 내주셨다.





산부인과는 성인 되고 혼자 갔다.

내가 다낭성증후군이 있다는 것과 다른 도움을 통해 생리를 할 수 있고 임신하기는 힘든 몸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러나 동생은 지금 결혼해서 애 낳고 잘 지내고 있다.




정신과 가서는 내가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다는 것도 ADHD 인 것도 발작하면 자살하려고 쇼를 하는 사람이 될 줄 몰랐다. 그리고 10년 넘게 약을 먹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러나 동생은 모두 과거일 뿐인데 사과하면 그만 아니냐고 소리 질렀다.







한 번은 할머니에게 화가 나 단식투쟁 한 적이 있는데 이틀 동안 정말 관심을 주지 않으셨다.

오히려 더 맛있는 음식을 하며 나를 약 올렸다.

그때 몰래 가방에 숨겨둔 과자를 먹으며 울었다.





동생에게 고기반찬 주려고 너는 고기 싫어한다고 주지 않으려 하셨다. 줘도 살코기는 얼마 없고 비게만 가득한 차별함을 주셨고 치킨 닭다리는 뜯어보지도 못했다. 동생이 안 먹는 과일, 맛없는 것들은 다 내 몫이었다.






아무리 내가 버려진 자식이라도

죽기보다 미운 엄마를 닮은 손녀라도

동생에게 신경 써주는 것만큼

조금만이라도

나를 봐주었더라면 내 인생은 바뀌지 않았을까?










마취에 깼을 땐 엄마와 나뿐이었다.

데칼코마니가 하나가 되는 순간



나를 놓은 사람에게 누군가를 버리고 다시 찾아갔다.

나를 놓고 간 사람이 나를 다시 찾아왔다.



그런 엄마가 나를 위해 기다려주고 있다.












엄마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를 처음 봤다.

듬직한 진돗개와 작고 귀엽지만 사나운 요크셔테리어

처음 보는 사람이면 무조건 짖는 진돗개가 나를 보고 그저 꼬리만 흔드는 모습을 보고 엄마는 깜짝 놀랐다.




우연이었을까?

자식이라는 걸 알아본 걸까.





아님 불쌍하게 여긴 걸까?

짐승만도 못하게 자랐다는 것을 알아서.






초롱초롱

아무것도 모를 것 같은 투명한 눈동자로 나를 반기는 순간 절대적인 사랑을 받은 두 동물이 부러웠다.

나는 그 당시에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으로 이뤄진 결과물이지만 너희는 선택받고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으로 이뤄진 결과물이라서.





엄마의 집은 엄마 같았다.

고요하고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그때 그 냄새가 나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바디로션향





대신 숨냄새가 났다.

방에 큰 어항이 있었는데 많은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물이 아주 깨끗하고 건강해 보였다.

그리고 나와 같이 작은 바다를 바라보는 작은 온기를 가진 강아지가 내는 숨소리.

뒤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엄마의 숨소리.






그 숨소리엔 나에 대한 악의가 없었다.

그제야 들이킬 수 있었다.





나는 이제 행복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싸우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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