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스토리지 업계의 에어비앤비
물건을 보관할 공간을 빌려주는 셀프스토리지(self-storage) 산업이 미국은 상당히 발달했는데요. 2019년 발표된 한 보고서에 의하면, 셀프스토리지 시장규모가 2018년 373억 달러에서 2024년 492억 달러로 더욱 커질 것이라고 합니다(Market Reports World, ‘Self Storage Market-Growth, Trend and Forecast 2019-2024’).
도시 유입 인구 증가로 도시의 생활 공간이 점점 줄어들면서 임대료는 더 비싸지고 임차인은 더 자주 이사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셀프스토리지 산업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고 이 보고서는 설명합니다.
미국 셀프스토리지 업계는 Public Storage, Extra Space Storage, Cube Smart 등 부동산투자신탁으로 운영되는 대형 업체들이 이미 자리잡았는데요. 그들과의 경쟁을 뚫고 눈길을 끄는 스타트업이 등장했습니다.
2017년 미국 유타(Utah)에서 세 명의 대학생이 설립한 스타트업 Neighbor.com은 셀프스토리지에 공유경제 개념을 도입해 신개념 셀프스토리지 서비스를 창안했습니다. 자타공인 ‘스토리지업계의 우버(Uber)’ 혹은 ‘스토리지업계의 에어비앤비(AirBnB)’로 불리는 이 회사는 집에 빈 공간이 있는 사람과 짐을 맡길 곳이 필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을 만들었습니다.
누구나 살고 있는 집에 한 귀퉁이라도 안쓰는 공간이 있을 텐데요. 옷장, 빈 창고, 다락방, 지하실, 주차장 등 사용하지 않는 빈 공간에 물품을 보관해주고 돈을 벌 수 있는 구조입니다. 박스 몇 개부터 자동차, 트럭, 보트까지 다양한 물건을 단기 혹은 장기로 보관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고객 중에는 한 달에 20달러를 내고 이웃집 옷장에 상자를 보관하는 대학생도 있고, 고가의 클래식 자동차를 보관하기 위해 이웃의 안전한 차고를 월 400달러에 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간을 빌려주고 짐을 보관해주는 임대인 중 일부는 연간 25,000달러(약 3천만원)라는 큰 돈을 벌기도 하는데요. 설령 많은 돈을 벌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노동을 하지 않고도 꾸준히 돈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중산층의 소득을 쉽게 올릴 수 있는 좋은 사업 아이템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18년 Neighbor.com은 에릭 슈미트(Eric Schmidt 구글 모회사 알파벳의 전 회장)가 설립한 재단(Schmidt Futures)이 후원하고 유타대학(University of Utah)이 주최하는 American Dream Ideas Challenge에 도전해 top3에 들어 자금을 지원받았는데요. 이 대회는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강력한 중산층이 필요하다는 전제하에, 중산층 가구의 소득을 10% 증가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해 자금을 지원하여 구체적으로 실현시킬 수 있도록 지원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거주하는 집 공간의 일부를 대여해준다는 측면에서 에어비앤비와 유사한 공유경제 서비스지만, 에어비앤비처럼 낯선 사람을 집에 초대할 필요도 없고 침대 시트를 갈고 청소할 필요도 없다는 점에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일입니다.
Neighbor.com의 가장 큰 장점은 가격 경쟁력인데요, 월 10달러부터 시작해 기존 셀프스토리지 업체들보다 50% 저렴한 비용으로 물건을 맡길 수 있습니다. 다른 업체들은 토지를 확보하고, 창고를 짓고, 관리인을 두는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이 가격에 맞추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물건 맡길 공간을 빌리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근거리에 위치한 이웃에게 짐을 맡길 수 있는 것 역시 큰 장점입니다. 접근성이 편리하면 보관한 물품을 언제든 사용할 수 있고, 이동거리 단축으로 비용도 더 아낄 수 있기 때문이죠.
이용 방법도 간단합니다. 임대인은 임대할 빈 공간을 사진 찍어 Neighbor.com에 무료로 올리고 자체적으로 보관 비용을 설정합니다. 물품을 보관하려는 임차인이 사이트에서 적합한 공간을 발견하면 맡길 물품을 사진 찍어 사이트에 올려 물품보관을 신청합니다. 마지막으로 임대인이 그 내용을 검토한 후 수락 여부를 결정합니다.
Neighbor.com은 2020년 1월 시리즈 A단계의 투자로 1,000만 달러(약 120억 원)를 유치했는데요, 우버의 첫 번째 CEO였던 Ryan Graves도 투자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Neighbor.com은 임대인에게 경제적 이득을 주고, 임차인에게 필요한 가치를 제공하고,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는 점에서 ‘스토리지업계의 에어비앤비’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2008년 경기 불황에도 셀프스토리지 산업은 오히려 수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경기가 침체되면 사람들은 집을 축소하기 마련인데, 작은 집에 들어가지 못하는 물건을 셀프스토리지에 보관했기 때문이라고 하죠. 이번 코로나19에도 셀프스토리지 산업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는데요. 대학생들이 학교 폐쇄로 기숙사를 떠나면서, 그리고 직장인들이 재택근무로 비싼 임대료를 내야 하는 도심을 떠나면서 짐을 맡길 곳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19에서 회복되더라도 밀레니얼 세대는 복잡한 도심의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 때문에, 베이비 붐 세대는 은퇴 후 작은 집으로 이사하기 때문에, 그리고 중소기업은 재고를 보관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셀프스토리지 산업은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