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다시 읽으며 예전 서평을 불러오다
이 책을 기반으로 청년들과의 나눔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읽으려고 하는데, 2008년에 썼던 서평 생각이 났습니다. 여기에도 나눕니다.
저는 이 책을 세 권 가지고 있습니다. 왼 쪽부터 2000년에 구입한 초판, 2013년에 구입한 개정증보판, 그리고 2018년에 구입한 확대개정판입니다. 마지막에 구입한 확대 개정판은 아직 읽지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이번에는 확대개정판으로 읽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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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에 IVF(한국 기독 학생회) 활동을 했다. 지금은 달라졌는지 모르지만, 당시 IVF내의 필독도서 중 첫 번째로 꼽히던 책이 (줄여서 '내면세계'라 부르던) 이 책이었다. 학생 때 한번 읽기는 했지만 제대로 이 책을 읽었던 것은 졸업하고 몇 년 지나서인 듯하다. 그때의 나는 생각의 중심이 굳게 서있지 않았다. 여러 번 혼란을 겪었고, 나아지는 것은 없으면서도 생각의 겉멋만 든 그런 모습이었다. 그때 접한 이 책은 나를 얼마나 부끄럽게 만들었던지. 열매 없이 지내버린 시간이 너무나 아쉬웠다. 미국으로 옮긴 후 고든 맥도널드 목사가 담임하고 있던 그레이스 채플에 출석할 만큼 이 책의 영향은 컸다.
처음 접한 지 2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후 이 책을 다시 읽었다. 반갑게도 개정판이 있었고, 책 속의 고든은 지나간 시간만큼 더 성장한 듯하다. 그가 겪었던 실패와 회복이 그를 더 성숙하게 만든 것일까? 그 답은 모르지만, 별로 나아진 것이 없는 내 내면세계에 비해, 그의 마음속 정원은 너무나 깔끔해 때로는 질투가 나기도 한다.
번역판의 제목도 좋지만 나는 이 책의 영어 제목을 더 좋아한다. "Ordering Your Private World." 개인의 영역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겉모습을 잘 가꾸는 사람은 많으나, 남이 보지 않을 때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은 성숙함을 필요로 한다. 신앙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성품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분명히 목사가 기독교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다. 하지만 기독교 서적이라는 틀로 제한하기에는 이 책이 너무 아깝다. 고든이 제시하는 보편적 교훈은 비기독교인에게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 고든은 '함몰 웅덩이' 증상을 소개한다. 지하수가 고갈되어 지표를 지탱할 힘이 없을 때, 그 땅은 겉보기에는 단단해 보여도 속은 텅 비어 있고, 언젠가는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내면에 질서가 없다면 사람은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하게 된다.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느낌. 손대고 있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든다면 이미 내면세계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살아가며 이렇게 무너져 내리는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고든이 표현한 '벽에 부딪히는 순간'이었다. 그런 나에게 고든은 묻는다. "내면 생활을 정돈하는 시간을 규칙적으로 가지고 있습니까?"
내면세계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고든은 다섯 가지 영역에 대해 이야기한다. 동기, 시간사용, 지적 성장, 영적성장, 그리고 쉼이다.
우선 내 삶의 동기가 무엇인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지 이 책은 질문한다.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쫓기는 삶 (driven life)'이 있고 '부름 받은 삶 (called life)'이 있다. 쫓기는 삶은 외형적인 성공을 바라고 사는 삶이다. 무엇이든 더 크게, 더 잘하기를 원한다. 그 욕심은 소중한 것이되, 그것뿐이라면 곤란하다. 고든은 세례 요한의 삶을 통해 부름 받은 삶의 특징을 설명한다. 자신의 위치와 목적을 알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삶. 그런 삶이 부름 받은 삶이다.
무질서함은 시간의 무분별함으로 나타난다. 흘러서 새 버리는 시간을 잡기 위해, 고든은 시간예산 세우기를 제안한다. 중요한 항목에 사용할 금액을 미리 정해놓듯, 시간에도 미리 정해놓는 예산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 방치된 시간은 중요한 일보다는 약점을 보충하기 위해 쓰이고, 외부의 지배를 쉽게 받으며, 급한 일에 소모되고, 겉으로 드러나는 일에 주로 사용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 사용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미리 계획 세움을 통해 시간을 통제해야 한다.
지성을 훈련시키는 것은 하나의 의무다. 카터 전 대통령의 '왜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가?'라는 책을 쓴 계기를 소개하며, 우리도 지성을 훈련시키기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고든은 강조한다. 훈련되지 않은 지성은 읽히지 않은 책과 같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거나 책을 읽으며 지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또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투자하는 '공격적인 공부'를 통해 성장할 수 있다.
영적인 질서는 고난의 시기를 극복하게 해 준다. 마음속 정원이 한없이 고요하고 평온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중심을 찾을 수 있다. 마음속이 혼란스러우면 정말 중요한 것을 못 듣는다. 침묵과 고독, 일기 쓰기, 묵상 등을 통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소음을 없애고 마음 깊숙이 침잠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회복이 필요하다. 시간이 남아서 쉬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한순간에 마침표를 찍는 '회로 닫기'로서의 쉼을 가질 때 참다운 회복이 있다. 이전한 일의 의미를 생각하고, 지금 삶의 원칙을 검토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삶의 목표, 즉 사명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든처럼 "죄책감 없이 안식일의 쉼을 추구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그런 쉼을 가질 때, 분주함에 혼란스러워진 내면세계에 다시 질서를 가져올 수 있다.
열네 개의 장과 서문과 후기로 이루어진 책은 꽉 차서 군더더기가 없다. 이전판도 좋았지만, 개정판은 오랜 세월 보살핀 잘 정돈된 정원을 보는 듯하다. 각 장별로 제시되는 질문들에 답해보는 것도 스스로의 내면질서를 체크하는 좋은 수단이다.
20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책에서 말하는 질서 있는 내면세계를 못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난감하긴 하나, 책을 통해 얻은 교훈으로 최소한 내 마음밭의 바위들은 발견하지 않았나 싶다. 그 바위들을 제거하고 나서 이 책을 다시 펼칠 생각이다. 그때는 바위에 가려져 있던 작은 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