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모르면 바이닐 시작하지 마세요
1. 요즘 LP바도 많고 새로 음반을 낼 때 LP도 같이 제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이닐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늘어났죠. 소수만 즐기던 바이닐이 다시 대중화가 되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 LP 판매액이 CD 판매액을 넘어섰고, LP 찍어내는 공장도 다시 늘어났습니다.
2. 그런데 바이닐은 쉽게 시작할 취미는 아닙니다. 남들이 하기에 따라 들어가면 저렴한 턴테이블(스피커 일체형 같은)에 음반 한 두장 구입하고 그만두거나 비싸게 구입한 장비를 낭비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바이닐을 시작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사항들이 있습니다.
3. 첫째, 바이닐은 손이 많이 가는 취미입니다. 일단 음반을 사야죠. 무한대로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과는 다릅니다. 게다가 음반도 그렇고 카트리지의 바늘(정확히는 스타일러스)의 관리가 중요합니다. 새 음반을 사도 꼭 청소를 해줘야 하고, 중고인 경우는 더 중요합니다. 음반 청소의 방법도 여러 가지입니다. 턴테이블과 같이 오는 솔만으로는 제대로 청소가 안됩니다. 플레이할 때마다 먼지 및 정전기 제거를 해줘야 하고, 스타일러스도 틈틈이 청소해줘야 합니다. 안 그러면 스타일러스에 먼지가 쌓여 소리가 둔해지거나 귀한 스타일러스를 망가뜨리게 합니다.
4. 둘째, 장비에 대한 지식도 필요합니다. 침압(트래킹 포스)도 맞춰야 하고, 카트리지 방향도 살펴야 하고, 톤암의 수평도 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턴테이블이 수평이 되어야 하죠. 진동의 차단도 중요합니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참 많습니다. 이런 지식이 없이 들으면 음반에 담긴 소리를 제대로 즐길 수도 없고, 장비의 성능을 충분히 끌어낼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면으로 보면 알아가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5. 셋째, 바이닐은 다른 매체에 비해 비용이 더 듭니다. 구독료만 내면 무한대로 들을 수 있는 스트리밍과 달리 우선 음반을 사야 하죠. 음반 하나면 몇 달 구독료입니다. CD도 구입은 해야 하지만, LP 가격이 두세 배합니다. 또 상대적으로 구입이 쉬운 CD에 비해 바이닐은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올라가기 쉽습니다. 찾는 사람이 적은 클래식 음반인 경우 더 그렇습니다. 존 필드의 녹턴 음반이 $37이라 좀 비싸네 하고 망설였다가 이제 사려고 하니 $50이 넘어갔더군요. 중고 음반도 상태가 괜찮으면 신품의 6~70% 정도는 받습니다. 바이닐은 상태가 중요하거든요. 2~5불에 살 수 있는 중고 CD와는 다릅니다.
6. 넷째, 장비에 들어가는 비용도 상대적으로 큽니다. 같은 수준의 소리를 들으려면 CD에 비해 두세 배 비용을 들일 각오를 해야 합니다. 좋은 턴테이블, 좋은 카트리지, 좋은 포노 앰프... 이렇게 가면 비용이 꽤 들지요.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방법도 다양하기에 유혹도 큽니다. 전원장치를 따로 달면 더 일정한 회전 속도를 얻을 수 있고, 플래터나 매트를 바꾸어 다른 소리를 얻을 수도 있습니다. 큰 뭉치로 바꾸는 다른 매체에 비해 자잘한 업그레이드에 빠지면 끝이 없습니다.
7. 다섯째, 그럼에도 바이닐은 음질적으로 뛰어나지 않습니다. 정성스레 세척을 해도 노이즈가 생길 수 있습니다. (셋업이 잘되어있다면 최소화할 수 있지만) 플레이할 때마다 음반의 마모는 생깁니다. 디지털과 달리 손상도 쉽게 됩니다. 녹음과 음반 생산, 신호를 읽고 재생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여지도 디지털보다 훨씬 큽니다. 그런데 정확도도 떨어집니다. 신호대잡음비로 따지면 LP에 저장되는 정보의 양은 CD의 60% 정도밖에 안됩니다. 바이닐이 CD보다 음질이 좋다는 느낌은 느낌일 뿐입니다.
8. 여섯째, 음반을 선택해서 듣는 작업은 일종의 예식과 같이 조심스러워야 합니다. 소리골 부분에 손을 대지 않게 주의하고, 카트리지를 정확히 옮기고 내려야 합니다. 톤암을 올리지 않고 움직이다가 음반에 스크래치를 낼 수도 있고, 보호캡을 씌우지 않고 청소하다 스타일러스를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조심성도 필요하고 참을성도 필요합니다. 듣는 곡만 찾아서 듣다 싫증나면 다른 곡으로 넘길 수도 없습니다. 최소한 한 면이라도 다 듣겠다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9. 이런 문제들을 각오하고 바이닐을 시작하면, 바이닐은 다른 매체가 줄 수 없는 즐거움을 줍니다. 바늘이 소리골을 따라가며 재생하는 방식으로 인해 약간의 지연과 왜곡으로 사람 귀에 듣기 좋은 2차 배음이 만들어집니다. 더 풍성하고 따듯하게 느껴지는 소리가 나오죠. 진공관 앰프가 따듯한 소리를 낸다 생각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무엇보다 음반을 손으로 꺼내어 턴테이블에 걸고, 톤암을 내리는 모든 과정이 주는 참가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약간의 불편함이 주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죠. 그렇기에 위에 나열한 많은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바이닐의 즐거움을 느껴 보길 강력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