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에 둥지를 틀며
2002년 혹은 2003년이었을 거다. 쉐아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 아니 어쩌면 더 오래되었을지도 모르겠다. 90년대에 피시통신도 했고 개인 홈페이지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때 어떤 닉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쨋든 2000년대 초반 한국 팜 유저 그룹(KPUG)에서 활동을 했고, 이때 쉐아르라는 닉을 썼던 기억이 난다.
2004년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니콘클럽과 롤라이클럽을 거쳐 포익클럽에 정착했다. 그리고 3년여 쉐아르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을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만났다. 2007년에 티스토리로 블로깅을 시작하며 또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 이때도 내 온라인 아이덴티티는 쉐아르였다. 한때는 쉐아르로 검색하면 처음 몇 페이지는 내 글로만 채워졌다.
'쉐아르'는 히브리어다. '쉐어리트'로도 표기되는데, 쉐아르가 더 많이 쓰인다. 쉐아르 소극장과 쉐아르 워십이 생긴 걸 보면. 또 나 말고 쉐아르라는 닉을 사용한 사람들이 몇명 더 있는 것 같다.
뜻은 '남은 자'. 나무를 잘라도 남는 그루터기를 뜻하는 말로,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신앙을 지킨 사람들을 말한다. 다분히 기독교적인 용어이고 그래서 선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내 나름대로 뜻을 확장시키고 있다. 세상은 변해 가고 옳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지언정 마땅히 지켜야할 가치를 지켜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독교 교리 같은 좁은 의미가 아니다.
페이스북이 소셜 미디어의 대표주자가 되고 내가 알던 많은 사람들이 페이스북으로 헤쳐 모였다. 그리고 페이스북의 실명 사용 원칙 때문에 몇년 동안 쉐아르가 아닌 본명 '이재호'로 불렸다. 그래서인가 브런치에서 다시 쉐아르라는 닉을 사용하니 참 반갑다. 잊고 지냈던 분신을 만난 느낌이랄까?
돌아보면 온라인의 쉐아르는 오프라인의 이재호와 비슷하면서 또 다른 부분도 있다. 아무래도 온라인에서는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있다보니 현실보다 더 똑똑하고 현명해 보인다. 날 선 소리도 더 자주 하고, 더 비판적이다. 어쩌면 쉐아르는 내가 되고 싶은 인물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쉐아르라는 이름을 가지고 글을 쓰고 있다. 오랜 만이다. '또 다른 나'인 쉐아르로서의 정체성을 통해 어떤 글이 나올지 아직 모르겠다. 최소한 글을 쓰고 싶어 잠을 줄여가며 꾸역 꾸역 쓰던 그 모습이 다시 나타나길 바란다. 쓰다 보면 뭐라도 나올테니 말이다.
쉐아르. 다시 만나 반갑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