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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아르 Nov 06. 2015

국정화 사태에 대한 단상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브런치에 쓰는 정치글

그동안 여러 경로로 제 생각을 피력했습니다. 국정화 공시를 기념(?)하여 국정화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개인적으로 국정화에 대해 쓰는 마지막 글입니다.


1. 교과서는 정말 좌편향되었는가?


정부/여당(앞으로 “현 정권”)의 프레임에 따라 교과서의 좌편향이 이번 문제의 쟁점이 되었다. 그런데 검인정 교과서에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는 쟁점이 아니어야 했다. 나는 현 교과서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왜 국정화인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계속 검인정 교과서의 좌편향이 쟁점이 되는 모습이 안타깝다.


먼저 어떤 사안에 대해 판단할 때, 개별 사실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전체적인 패턴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정화 국면에서 발생했던 패턴은 이렇다. 먼저 현 정권에서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다는 주장을 던졌다. 예를 들어 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친다고. 이에 대해 반대 측에서 실제 교과서의 내용을 사용해 반론을 제시했다. 제대로 된 논쟁이라면 이때 재반론이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찬성 측에서 또 다른 주장을 던진다. 유관순이 검인정 교과서에서 빠졌다고. 이에 대한 구체적인 반론이 나온다. 역시 재반론은 없다. 추가로 현 교과서 집필진을 비롯 이전 국사교과서 편찬위원장(“우파로 분류되는”)까지 나서서 교과서가 좌편향되지 않았다고 증언하지만, 찬성하는 사람들에게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가 보다. 현 정권의 주장만 따르고 있다.


반박이 불가능한 주장도 있다. 예를 들어 역사학자의 90%가 좌편향되었다는 주장. 사용되는 교과서의 99.9%가 좌편향이라는 주장. 이걸 어떻게 반박하나. 교학사 교과서의 시각에서야 좌편향 맞다. 김구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이고, 일본이 수탈한 게 아니라 우리가 쌀을 수출한 거고, 위안부는 일본군을 따라 다녔고, 이승만과 박정희는 독재자가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이 봤을 때 좌편향이 아닌 교과서가 있다면 오히려 문제 아닌가 싶다. 이런 식의 종북 낙인은 국정화 국면에서 계속 사용되어 왔다. 예를 들어 집필진의 반 이상이 종북이라는 리스트가 있다. 그 리스트를 살펴보면 전교조이거나 역사학회 회원이면 종북이라 낙인 찍은 것을 알 수 있다. 전교조=종북. 이런 유치한 시각에 동의하지 않지만, 백번 양보해 전교조 교사가 우려스럽다고 하자. 그런데 역사 공부한 사람이 역사학회 가입한 게 도대체 왜 문제인가? 역사학회 가입했으면 종북이라고 하는 건 역사학자 90%가 좌편향이라는 종북몰이와 같다. 그럼에도 이런 세세한 사항에 관심 두지 않는다. ‘집필진의 반 이상이 종북’이라는 주장만이 반가울 뿐이다.


장신대 김철홍 교수가 찬성 측의 스타 플레이어로 뜨는 것 같다. 그의 두 번의 글을 찬찬히 읽어봤다. 정말 교과서가 좌편향되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게 글을 썼다. 김 교수의 주장은 이렇다. 좌파 사학에서 사용하는 용어들이 사용되었다. 기본적으로 일본 지배 시절 계급사회와 농민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좌파의 시각과 동일하다라는 것이다. 난 그의 글에서 우선 레드 콤플렉스가 느껴졌다. 좌파> 좌빨> 종북으로 이어지는 레드 콤플렉스. 왜 좌파의 방법론을 사용해 사회를 분석하면 무조건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생각할까? 경제와 사회를 분석할 때 우파적  관점뿐 아니라 좌파적 관점도 많이 쓰인다. 그런데 좌파=종북이라고 단정 짓고 시작한다. 난 이런 레드 콤플렉스가 딱하다. 김 교수의 글을 읽어보면 자신이 정말 옳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의 순수성은 믿는다. 하지만 학자라면 레드 콤플렉스에 빠져 지엽적인 것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을 봐야 한다. 그는 ‘왜 국정화인가’라는 질문을 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자세에 대해 실망했다. 주장이 던져지면 반론이나 재반론까지 살펴보고 판단해야 할 텐데 그런 노력이 별로 안 보인다. 모든 사람이 교과서를 직접 읽어보고 판단할 수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황을 보고 판단할 수 있다. 재판도 마찬가지다. 직접증거가 있으면 좋겠지만, 아닌 경우가 많다. 그럴 경우 상황 증거로 판단해야 한다. 주장에 일관성이 있는지, 믿을 만 한지, 반대 증거는 있는지, 숨겨진 의도는 없는지 등등. 논리적인 추론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훈련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래도 요즘 돌아가는 모습은 좀 심하다. 종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생각을 멈추는 바이러스에라도 걸린 것 같다.


2. 왜 국정화인가?


이 문제의 핵심이다.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있다고 해도 왜 국정화인가? 검인정 교과서는 교육부에서 주어진 가이드라인에 맞추어 국가에서 공인된 출판사가 교과서를 만들어낸 것이다. 각 학교는 검인정 교과서 중에 선택할 수 있다.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시정을 명령할 수 있다. 그리고 가이드라인은 필요에 따라 수정된다. (참고로 아웅산 테러나 대한항공 858기 폭파 사건이 교과서에서 빠졌다고 좌편향이라 주장하는데, 이 내용은 가이드라인에서 빠졌기 때문에 교과서에서 빠진 것이다.) 그렇기에 교과서에 문제가 있다면 시정명령 혹은 가이드라인의 수정에 의해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 왜 검인정으로 안된다고 하는 걸까? 왜 거짓말을 거듭하며 국정화를 이루려고 했을까? 교학사 교과서의 실패가 큰 역할을 했을 거다. 뉴라이트가 만들어낸 교학사 교과서는 친일과 독재  미화뿐 아니라 많은 오류를 가지고 있다. 2013년 8개 교과서에 대한 시정명령 중 30%가 교학사 교과서에 집중되었다. 그래서 결국 실패했다. 그러고 나니 다양성이라는 게 싫어진 거다. 통제하기 좋게 하나만 남겨놓겠다는 거다.


귀한 세금으로 만든 교육부 국정화 홍보 만화는 국정화의 목적을 잘 설명한다. 그 목적은 현실이 어떻든, 진실과는  상관없이,  우리나라 만세를 외치는 국민을 만드는 것이다. 정권에 불만 없이 새 아침이 밝으면 너도 나도 일어나 새 나라를 만들 일꾼을 만들겠다는 거다. 의식의 통제다. 역사는 이런 시도를 한 정권은 좌우 상관없이 독재 정권이었다고 가르친다. 대부분 실패했지만, 성공한 경우도 있다. 2차 대전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 그리고 현 정권이 벤치 마킹하는 북한이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찬성 측에서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었다. 왜 반대쪽만 옳다고 하느냐. 찬성하는 사람은 국민 아니냐. 왜 교학사 교과서 채택을 반대하느냐. 다양성에 위배되는 것 아니냐. 김철홍 교수도 그런 말을 했다. 국정화 반대하는 같은 학교의 교수들이 “사고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오히려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는’ 독단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쉽게 의견을 주장할 권리가 나에게도 있다라는 말이다. 그럴 듯하다. 그런데 이 주장이 바로 ‘사고의 다양성을 통제하려는’ 국정화를 찬성하면서 나왔다는 게 아이러니다. 김철홍 교수가 사고의 다양성을 그렇게 존중한다면 국정화를 반대했어야지, 왜 찬성하나. 이런 모순은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예를 들어 자유경제원. 자유주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자유경제원은 국사  교과서뿐 아니라 모든 교과서를 국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자유는 극우 사상에 동의하는 한에서의 자유인 것 같다.


나는 미국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아이들 둘 다 고등학교에서 국사(미국사)와 세계사를 배웠다. 같은 학교다. 그런데 교과서가 달랐다. 사실 교과서라고 할 수도 없다. 과목별로 세 권에서 네 권의 책을 선택해서 읽게 한다. 개론서 하나와 중요 시기를 다룬 책 몇 권 이런 식이다. 교과서라기 보다 교양서 같은 느낌이다. 가이드라인이야 있겠지만, 교재 선택은 교사의 재량에 있다. (한때 미국도 역사 교육과정을 재점검했다며 국정화 지지 논리로 쓰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택도 없는 헛소리다.) 이렇게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공부했던 아이들과 모든 학생이 하나의 교과서로 공부한 아이들이 만나 경쟁을 해야 한다. 대단히 창조적인 발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성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니까. 다수결로 정하면 된다. 그런데 10월 13일 이후 열 번 가까운 여론조사에서 모두 반대가 더 우세했다. 교육부에 접수된 의견도 찬성이 15만, 반대가 32만이었다. 마지막 날에는 의견 접수 팩스를 꺼놨음에도 반대가 훨씬 많다. 그런데 정부는 국정화를 강행했다. 이를 보고도 현 정부가 민주적인 정부라 생각하는 사람은 민주주의의 정의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3. 어떤 교과서가 나올까?


그럼 어떤 교과서가 나올까? 많이들 이야기한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은 교과서를 두고 왜 ‘친일 독재 미화’라고 비판을 하는가라고. 맞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앗, 근데 “우연히도” 박근혜나 김무성 모두 친일 경력의 부친을 두고 있다. 덤으로 박정희는 독재 경력까지 있다. 비밀 독립군이니 뭐니 하는 주장도 있었지만, 자기들도 너무하다 싶었는지 쑥 들어갔다. (비밀 독립군이 일본군 복장으로 청와대에서 말을 타고 다니나.)


올바른 교과서를 예측하기 위한 참고자료가 있다. 유신 시절 교과서와 교학사 교과서가 있다. 교학사 교과서의 문제점이야 여러 번 지적되었다. 유신 교과서는 어땠을까? 국정화는 유신 직후 74년에 이루어졌다. (그러고 보면 박근혜는 정말 효녀다. 내 자식들이 이렇게 나를 따르려 할지…) 처음 국정교과서는 5.16을 혁명이라 표현하며 박정희 치적을 여러 쪽에 적었다고 한다. 이후 전두환 시절 국정 교과서는 전두환이 ‘정의사회를 구현했다’고 적었다. 유신 교과서와 교학사 교과서를 고려하면 올바른 교과서가 썩 ‘올바른’ 교과서가 아닐 것 같다. 그냥 전체적으로 그런 기운이 느껴진다. 아니 솔직히 말해 박근혜 정부의 교과서에서 박정희와 친일파를 객관적으로 기술할 거라 믿는 사람이 있을지 의심스럽다.


어쩌면 처음 국정교과서는 의외로 멀쩡할지도 모른다. (그 정도로 머리가 좋은 지 모르겠지만) 나름 머리 써서 ‘친일 독재 미화’라는 비판을 비껴가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정화를 통해서 통제를 하기 시작한 이상 갈수록 자기들 입맛에 맞추어 바꿔나갈 거다. 그러다 정권이 바뀌면 확 반대로 바뀔 수도 있겠지. 그러면 그때도 비판해야 한다. 국정화 교과서가 어떤 내용을 담느냐보다도 국정화 자체가  비판받아 마땅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4. 마지막으로


야당은 국정화 철회하라 시위하지만, 철회 안 할 거다. 요즘 야당을 누가 무서워하나. 뭔 짓을 해도 새누리 찍어주는 유권자들도 있고.


그래도 별로 걱정 안 한다. 어차피 몇 년 안 갈 교과서다. (개헌을 통한 연임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건 정말 일어나서는 안 되는 시나리오다.) 국사 교과서 하나 바꾼다고 역사를 덮을 수는 없다. 전 세계의 자료를 다 바꾸지 않는 이상 눈 가리고 아웅도 안 되는 일이다. 학생들이야 당장 점수 따기 위해 ‘구국의 결단’ 이런 거 외우더라도, 자라면서 진실을 알아갈 거다. 오히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더 커지길 기대한다. 그들이 알려고만 들면 진실은 널려 있다.


독재는 독재고 친일은 친일이다. 박정희의 친일과 독재는  두고두고 기억될 거다. 박근혜가 아무리 용을 써도 안 되는 건 안된다. 다만 아쉽고 창피하다.


재밌는 건 집필진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려는 거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 안다는 신호로 받아들인다. 아니면 몇십 명 있다 말해놓고 정부에서 맘대로 작문을 할 수도 있겠지. 유신 교과서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정권이 뭔들 못하겠나.


추가: 이 글은 국정화가 공시된 11월 3일에 썼습니다. 그런데 5일 현재 처음 국정교과서가 의외로 멀쩡할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틀린  듯합니다. 군인까지 집필진에 들어오고, 1948년을 대한민국 건국으로 하겠다는 소식을 들으니 교학사 교과서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진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대표 집필인 몇 명 세워놓고 정부에서 맘대로 작문할 지도 모른다는 예상은 맞을  듯합니다. 정말 예상한 것보다 (나쁜 쪽으로) 한 발씩 더 나가는 정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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