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빚어가기 두 번째 이야기
"삶은 고해다. 이것은 삶의 진리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진리다." M. 스캇 펙은 이 문장으로 그의 명저 '아직도 가야 할 길'을 시작합니다. 삶은 그 자체가 고통스럽습니다. 문제없는 삶은 무덤에나 가서 찾으라고 하지요. 누구나 작든 크든 문제를 안고 삶이라는 길을 걸어갑니다. 부인하고 싶은 현실이지요. 좀 쉽게 살고 싶은데 산다는 것 자체가 고해라니요.
꿈을 가져야 한다. 시간을 잘 활용해라. 성숙한 인간이 되라. 자극도 되지만, 짜증 나는 말이기도 합니다. 좀 편하게 살면 안되나. 인생 뭐 있나 적당히 게으름도 피우고 즐기면서 사는 게 행복이지. 그렇게 생각하고도 싶습니다. '아몰랑' 그냥 대충 생긴 데로 살아갈래. 그런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회피하고 싶지만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살아가는 한 우리는 성장을 위해 스스로를 계발해야 합니다.
왜 성장해야 할까? 왜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계발해야 할까?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봅니다.
첫째, 성장은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삶은 원래 힘들다는 이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은 모릅니다. 하지만 "삶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래서 이를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면" 우리는 삶을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더 쉽게 삶의 문제에 대해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스캇 펙은 말합니다. 끝없이 닥치는 삶의 문제를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신을 단련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회피하면 문제를 떠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동기 부여 전문가 웨인 다이어는 말합니다. "불쌍하게 살던가, 스스로 동기부여를 하라. 무엇을 하든, 결국 너의 선택이다." 잔인하죠.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아등바등 살지 않는다고 다 불쌍한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합니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음에야 애쓰며 살 수밖에 없지요.
그렇기에 스스로 재촉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모습을 정확히 인식하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자족과 감사는 미덕이지만, 포기와 타협은 스스로에 대한 범죄입니다. 목표를 정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다른 이가 해줄 수 없습니다.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스캇 펙은 처한 고충을 극복하기 위해 요구되는 노력보다 불만스러운 현실에 안주하려 하는 게으름은 죄라 말합니다.
둘째,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려면 성장해야 합니다. 배기량이 큰 엔진이 (효율이 같다면) 더 힘센 것이 당연합니다. 같은 무게의 차체라면 더 빠르게 이동시킬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단순 계산으로 결과를 예측할 수 없지만, 대체적으로 성숙할수록 삶의 결과물도 더 좋습니다. 내면의 성품이 외면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스티븐 코비의 책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원제는 "대단히 효과적인 사람의 7가지 습관"입니다. 코비는 삶의 효과성이 생산/생산능력이라 부르는 두 가지 요소 사이의 균형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틀이 필요합니다. 황금알(생산)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생산능력)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자녀와 좋은 관계를 바란다면 평소에 시간을 같이 보내야 하고, 사람을 움직이는 글을 쓰고 싶다면 평소에 읽고 써야 합니다.
물론 지식이 지혜를 가져다 주지 않습니다. 자기계발에 애를 쓴다 해서 모두 탁월한 삶의 결과를 만들어 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지식이나 노력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지요. 공부가 좋은 성적을 보장하지 않지만 공부하지 않으면 성적이 좋을 리가 없습니다. 공부(노력)를 통해 지식(생산능력)이 축적되어야 좋은 성적(생산)이 나올 수 있습니다. 성장은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생산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셋째, 성장할수록 멀리 볼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질투가 심합니다. 성공한 사람을 보며 운이 좋아 그랬다느니 성공한다고 행복이 보장되냐느니 평가 절하합니다.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자위일 뿐입니다. 한번이라도 치열한 노력을 통해 한계를 극복하고 성장을 이루어낸 사람은 다른 차원으로 삶을 바라보게 됩니다. 최선을 다해 본 사람만이, 그래서 이전보다 더 나은 자신을 만들어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습니다.
불타는 장작을 보며 처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저 나무들이 왜 탁탁 소리를 내는지 안다. 나는 완전히 소모되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 근육이 파괴되고 다시 복구되는 과정을 통해 근력이 늘어납니다. 그렇게 자기를 파괴하며 성장합니다. 어제의 나를 극복해 한발 다음 단계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성장할수록 더 멀리 보게 됩니다. 가진 모든 것을 던져 끝까지 질주한, 다시 하더라도 더 열심히 못할 것 같은, 그런 완전 소모를 경험한 사람은 자만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평가 절하하지도 않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때문입니다.
대충 생긴 데로 살면 안되냐는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달음질만 하는 삶은 피곤합니다.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자족이라는 말로 게으름을 정당화하면 안됩니다. 만족하지도 않으면서 노력하기 싫어 성장을 거부한다면 그 삶이야 말로 "불쌍한" 삶입니다.
맞습니다. 살아가는 것은 어렵습니다. '잘' 살아가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그 삶의 고해를 의도적으로 떠나지 않는한 선택의 여지는 없습니다. 미래를 원하는 방향으로 빚어가려면 피하지 않고 마주칠 수밖에 없습니다. 성장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것을 인정할 때 오히려 인생은 살아갈 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