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가 기독교 기업인가?
요즘 이랜드가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네요. 예전보다 더 추한 모습으로요. 한 때는 선망했던 박성수를 기억하며 2007년 8월에 블로그에 썼던 글을 먼저 브런치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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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인 걸로 기억이 된다.
내가 가입해 있던 IVF라는 대학생 선교단체의 목요일 모임에 참석을 했다. 그날따라 매주 말씀을 전하던 고직한 간사님이 아닌 조금 마른듯한 남자가 앞에 나왔다. 박성수라고 자신을 소개한 후, 자신이 이랜드의 사장이라고 이야기를 했다. 그 당시 이랜드는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회사를 운영하는 윤리적인 그룹이라고 소문이 나며 특히 기독청년들에게 인기가 좋았던 회사이다. 그날 처음으로 박성수가 같은 학교 공대 선배라는 것을 알았다.
처음에 어렵게 이대 앞에 옷가게를 만든 사연, 별 밑천도 없이 겁도 없이 옷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업이 번창했고 마침내 이랜드라는 회사로 성장한 이야기, 후진국에서는 뇌물을 안 주면 일이 성사가 안될 때가 많은데 끝까지 정직하게만 사업을 해왔다는 이야기 등. 당시 나에게는 참 좋은 인상으로 남았던 이야기들이다. 이미 상당한 크기의 중견회사임에도 자신의 수입은 따로 직접 운영하는 한 매장에서 얻는다는 말에 존경스러운 마음까지 생겼다. 당시 나를 포함해서 IVF의 대부분이 원하던 것이 복음의 원리에 입각한 사회 변혁이었기에, 그것을 실제적으로 보여주는 박성수 선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 적이 있다.
1999년이었나? 큰 누나가 살던 동네에 2001 아웃렛이 생겼다.
목사와 사모님인 누나 내외의 차를 타고 2001 아웃렛을 지나면서 매형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랜드가 문제다. 엉뚱한 데에 신앙을 갖다 붙여서 노동력 착취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옆에서 누나가 이런 이야기도 한다. "2001 아웃렛에 가면 음식들이 순 중국산이다. 기독교 기업이라고 하면서 국산품은 하나도 없고 무조건 싼 거만 들여다가 팔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봐도 2001 아웃렛의 분위기는 80년대 중반의 산뜻했던 잉글랜드 매장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기독교 기업으로 사람들을 더 즐겁게 만들고자 하는 그런 아름다운 모습과는 거리가 먼, 적당한 상권에 싸구려 상품을 가져다가 파는 도떼기시장의 모습이었다. 물건을 사는 사람도 물건을 파는 사람도, 여유나 즐거움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2007년 이랜드는 악덕기업의 대표주자가 되었다.
이랜드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더 나쁜 일을 저지르는 회사도 많을 텐데, 왜 이랜드만 갖고 그러는지. 몇천 명씩 정리하는 기업들도 있을 텐데 고작 700명 그것도 비정규직을 임용직으로 바꾼 걸 가지고 이 난리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나름대로 뭔가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사탄의 유혹에 빠진 조합원들이 난리를 치고" "잘못된 언론 보도에 휘둘리는 기독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달란트에 불만 있는 불성실한 종"의 편을 들고 있다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편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법대로 했다지만, 협약서를 회사 편의에 맞추어 위조한 게 드러났다. 회사는 계속 성장해 박성수 본인은 83억, 부인은 100억의 주식배당을 받았지만, 노조원은 성과가 좋다고 볼 수 없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2004년부터 3년간 1원도 연봉이 오르지 않은 직원도 있다.
얼마 전 고속터미널 앞의 뉴코어를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 있는 노조원들의 천막이 있었다. 그 천막 위에 전날 방송에서 본 농성 중 끌려가던 아줌마의 모습이 겹쳐졌다. 지난해 130억 십일조를 사회에 환원해 주위로부터 복 받았다고 인정받는 박성수 장로의 (훈장 같은 게 달린 이상한 옷을 입고) 웃는 모습은, 200만 원만 받았으면 좋겠다며 회사를 떠난 이랜드 직원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주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리 독하게 군다고 해봐야, 매장에서 물건 팔던 아저씨 아줌마들이다. 옷장사로 시작한 박성수가 그들 앞에 나서서 이야기로 풀지 못할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이 무서워서 외국에 머물며 나서지 않는 것인가? 이렇게 대신 불러온 용역업체 직원들과 싸움을 붙여야 하는 걸까? 따지고 보면 그네들도 해고당한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게 없을 텐데 말이다.
1987년 어느 목요일 밤에 봤던 박성수와 지금 언론을 통해 소개되는 박성수가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도대체 박성수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자신에 대한 교만, 세상 권력에 대한 욕심, 아니면 돈맛이 그를 변하게 만들었나?
분명한 건 그가 기독교적 기업이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를 한 것 같다. 기독교적 기업이란 일주일에 한 번 쉰다고 성취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도 M&A 과정에서 없어졌지만.) 직원들이 일주일에 한 번 QT를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매장의 성공을 기도제목이라 벽에 붙여놓고 같이 기도한다면 이랜드의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인가? 노조는 성경에 없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면, 재고 상품을 신상품으로 속여 파는 것은 성경에서 배운 것일까? 회사의 이익의 10%를 사회에 돌려준다면 그건 잘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랜드가 운영하는 세 개의 재단은 12명의 직원이 운영하는데, 6개월 인건비 포함 사무비가 2억 5천만 원이었다고 한다. 정말 제대로 사회에 환원하고 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다.
알면 알수록, 이랜드는 기독교 기업이 아니라, 자신이 독실한 기독교인이라 착각하는 박성수 개인의 사교집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랜드 윤리경영(www.elandethic.com)이라는 사이트가 있다. 윤리경영이란 "사회가 기업에 가진 윤리적, 법적, 상업적, 공공의 기대를 초월하여 기업을 운영하는 방식"이라 소개한다. "공공의 기대를 초월하는 그 무엇"이 바로 기독교적 가치관이라 주장하고 싶은 듯하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2005년 9월 20일 이후 회사는 이 사이트를 업데이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이랜드는 윤리경영을 포기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요즘 이랜드가 하는 일을 보면 딱 그런 생각이다.
"노조간부들을 체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박성수가 무릎 꿇고 농성하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이랜드는 이대 앞의 작은 가게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그랬다면 박성수는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으로 남았을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