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벗겨진 성경에 새로운 옷 입히기
"지적인 정직성을 견지하다 보면 종교는 더 이상 인류에게 필요 없는 밈(meme: 문화 전달의 단위) 같아 보입니다. 유효 기간이 지나 버린 밈인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뭐가 더 있을 줄 알고 계속 그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종교는 과학에 의해 대체되거나 아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 유물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종교전쟁>에서 무신론 과학자인 장대익 교수는 '종교의 유통 기한은 이제 끝나지 않았을까요?'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편지에서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에게 종교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 말합니다. 종교에 대한 이러한 도전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갑니다.
성경이 하나님이 불러준 말씀을 받아 적은 거라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였기에 무오 하다 생각하지도 않는다면 기독교 신앙에 무엇이 남을까요? 그런 고민을 나누는 모임이 보스턴 지역에 만들어져 참석했습니다. 이름은 "세속 수도자 모임 (Secular Friar Society)"입니다. 구약을 전공하는 강사를 포함 9명이 하버드 사이언스 센터에서 일요일 저녁에 모여, 고대 근동의 역사와 문화, 신화 문헌을 보며 성경을 분해하기 시작했습니다.
강의는 창세기 1장~2장 3절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1장 1절의 히브리어 원문을 보며 이 구절을 여러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고, 1장 2절을 참조할 때 성경이 '무로부터의 창조'를 말하지 않을 수도 있음이 설명되었습니다. 성경의 다른 본문, 다른 고대 문헌, 그리고 1:1~2:3을 기록한 저자를 생각할 때, 이 부분의 목적은 2:1~2:3의 안식일을 강조하기 위한 '미괄식' 문단일 수 있음도 이야기되었습니다. 6일 창조가 초점이 아니라는 거죠.
바빌론의 에뮤나 엘리시(Enûma Eliš)와 시리아 북쪽에서 발견된 바알 사이클(Baal Cycle)이 성경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을까도 생각했습니다. 부정하기 힘든 동일한 표현의 사용을 볼 때 영향이 없었다 말하기는 힘듭니다. 최고신의 명칭으로 사용된 '엘'과 기타 구절들을 봤을 때, 창세기를 통해 본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 이외에 다른 신도 일부 인정하는 사고를 하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이야기했습니다.
강의와 연관하여 자유롭게 진행된 질문과 답변에선 다양한 여러 이야기들이 오갔습니다. 신학자들 사이에는 문서설이 정설로 여겨짐에도 왜 교회에선 전혀 이야기되지 않는지, 이렇게 성경을 잘게 쪼개고 분석하고 나면 결국 남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컸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입혔던 거룩한 옷이 모두 벗겨지고 난 성경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입니다. 더불어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기독교에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 서성이는 것은 아닐가 하는 질문도 해봤습니다.
아브라함이 실존인물이 아니라고 거의 확신하지만, 매일 하는 큐티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보고 은혜를 받는다는 강사님의 고백이 하나의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모임을 준비한, 성경은 신화라 생각하는, 김영배 집사님도 사실 신앙 좋은 분이라는 ^^ 증언도 힘이 되고요. 최소한 모였던 사람들은 도그마가 깨어지는 두려움에 사실을 부정하며 거짓 증거 위에 방어막을 만드는 실수는 하지 않아 보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였기에 무오 하다는 믿음은 제게 더 이상 없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그리고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의 신앙 고백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류가 있고, 해석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진리임을 믿습니다. 신에 대한 인간의 고백 속에 담긴 진리의 파편, 이를 찾아가는 과정이 신앙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이제 첫 모임입니다. 다음 모임에는 본격적으로 문서설을 알아본다고 하네요. 사람들이 입혀놓은 도그마의 옷을 하나씩 벗기고 난 후 남아있는 그곳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