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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아르 May 10. 2017

이제 그만 부활해주시겠습니까?

2017년 4월 16일 부활절 단상

2017년 4월 16일 부활절이 지났습니다. 의미 있는 날입니다. 교회들은 루터가 95개 반박문을 슐로스 교회 문에 내건 지 500년이 되었음을 기념합니다. 또한 세월호 사건이 있은 후 3주년이 되었고, 마침 물에 잠겨 있던 세월호는 뭍에 올라왔습니다.

부활절은 기독교인에게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제게 부활절은 과거의 일을 기념하는 날보다 미래에 다가올 일을 희망하는 날로 바뀌었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이 긍휼 하심으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예수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살리시어 산 소망을 얻게 하셨다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에 쌓아 둔 변하지 않는 유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영원한 천국 소망의 약속이 됨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아직 우리의 것이 되지 않은듯 합니다. 3년 전 허무하게 죽음을 당한 304명의 가족들은 아직도 '왜'라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독가스로 거품을 물며 죽어간 백여 명의 시리아인들도 같은 질문을 했을 겁니다. 오랜 노동에 시달려도 백여만 원의 월급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고 싶지만 살 수 없어 일찍 떠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오늘도 차별과 혐오에 힘들어하는 소수자들과, 마실 물과 먹을 것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은 언제 올지 모르는 천국의 약속에 오히려 분노로 답할지도 모릅니다.

부활은 인간을 억누르는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신 승리의 선언입니다. 부활하심으로 이미 이기셨음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승리하신 주님을 갈망하는 사람들은 계속 패배의 그늘에 머물러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왜 아직도 죄를 저지르고도 평안을 누리는 자들이 이리도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압니다. 우리가 눈물 흘릴 때 주님이 우리와 같이 울어주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 [그] 아이들이 살려달라고 당신께 기도할 때 그 기도 좀 들어주시지... 왜 [그] 아이들이 없어진 지금" 세상 속에 당신의 따뜻함을 보여주고 계시는 건가요.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주시고 주의 백성들의 수치를 온 땅에서 씻어 내신다 당신은 약속하셨습니다. 약속을 이루는 하나님임을 우리는 믿습니다. 그런데 그 약속이 언제 이루어질지 솔직히 기다리기 힘듭니다. 애급 땅 이스라엘 민족의 신음 소리에 하나님은 이 땅에 내려오셨다고 하셨는데, 지금 고통받는 사람들의 신음 소리는 너무 작기 때문에 내려오시지 않는 건가요. 

우리의 삶에서 부활을 경험하는 것이 필요함을 압니다. 당신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과 같이 우리도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해야 하겠지요. 매일 죽고 매일 살아나야 하겠지요. 그것만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제 안에 천국의 기쁨을 경험할 때 부활의 약속을 조금씩 엿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기쁨은 눈을 들어 세상을 둘러보면 너무나 쉽게 사라집니다. 저만 기쁘면 뭐 하나요. 꽃 한 송이 핀다고 봄이 오는 건 아니잖아요. 다 함께 피어야 봄이지요. 

당신이 낮은 곳에 임하심을 믿습니다. 당신이 아파하는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심도 믿습니다. 하지만 주님, 아예 눈물이 사라지면 안 될까요. 언제까지 선한 이들이 악한 이들에게 고통당해야 하나요. 

주님. 한 번 부활하셨던 것처럼, 처참하게 부서진 세월호에게, 내전으로 고통받는 나라들에게, 힘들어하는 비정규직들에게, 소외당하는 소수자들에게, 이 땅의 모든 낮은 곳에게 이제 그만 부활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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