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쉐아르 Sep 07. 2017

다시 미니디스크로

느림의 미학

미니디스크(Minidisc) 혹은 엠디(MD)를 처음 사용한 게 2007년입니다. 엠디 아시나요? 한 면이 7cm 정도 되는 거의 정사각형 모양의 디스크에 음악을 담아 듣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생겼지요.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귀여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60분의 음악을 담을 수 있었는데 이후 74분 80분으로 늘어나고 녹음 방식도 LP(Long Play)가 생기면서 두 배 혹은 네 배의 음악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그만큼 음질은 떨어지지만요. SP(Standard Play)라고 하더라도 292 kbps의 해상도를 가지기에 CD에 비하면 5분의 1 정도 크기입니다. 무손실은 아닙니다. 이후 Hi-MD 방식으로 352 kpbs 혹은 무손실 녹음도 가능해졌지만, 초기 SP 모드만으로도 음악을 감상하기에 충분히 좋습니다.    


소니가 미니디스크를 발표한 해가 1992년이고 90년대 말 2000년대 초를 전성기로 이야기하니, 제가 처음 엠디를 사용한 2007년이면 이미 미니디스크는 MP3 플레이어에 자리를 물러주고 나서였습니다. 아이팟 6세대가 2007년에 나왔으니까요.  엠디를 모르지는 않았습니다. 관심이 없었던 거죠. 그러다 우연히 얻게 된 N505라는 투박한 모양의 플레이어가 엠디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넷엠디라는 컴퓨터와 연결해서 음악을 전송받을 수 있기도 하고, 광케이블을 이용해 시디플레이어에 연결해 음악을 녹음할 수도 있었던 모델입니다. 


이후 몇 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팟캐스트를 듣게 되면서 아이팟 터치로 옮겼습니다. 그러다 몇 년 후 다시 엠디로 돌아가서 열심히 사용했습니다. 이번에는 고해상도 음원 플레이어에 마음이 뺏겨 엠디를 떠났습니다. 다시는 엠디를 쓸 일 없겠지 하고 디스크 하나만 남기고 다 처분했습니다. 


스마트폰이나 아이팟 같은 DAP(Digital Audio Player)에 비하면 엠디는 불편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가진 AK120의 저장공간은 240GB 정도 됩니다. 무손실 음원으로도 천 장 넘게 음반을 담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엠디 미디어 하나에는 (음반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 장 반 정도 담을 수 있습니다. 엠디를 몇 십장 들고 다니지 않는 이상 들을 수 있는 음악이 제한됩니다. 게다가 엠디에 음악을 담는데도 시간이 걸립니다. 가장 빠른 방식이 넷엠디인데 한 장 옮기는데 십 분 이상 걸립니다. 아래 사진과 같은 CD/MD 콤보덱을 쓴다면 음반 플레이 시간만큼 걸립니다. 2배속이 지원되는 모델이라면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그래도 몇십 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불편함으로 돌아왔습니다. MP3 초기에야 엠디 소리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었지만, 디지털 음원의 음질이 엠디를 추월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해 엠디도 디지털입니다. 하지막 작동방식이 상당히 아날로그스럽습니다.) 엠디가 가지고 있는 장점은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불편함이 좋습니다. 참 이상하죠? 


엠디 미디어의 개수에 한계가 있다 보니 어떤 음악을 담을지부터 선택을 해야 합니다. CD/MD 덱을 사용할 때는 음악을 들으면서 복사를 합니다. 혹은 피시와 연결해 음악을 복사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미디어 중 세네 장을 골라서 들고 다닙니다. 지금 사용하는 플레이어인 MZ-E510에는 디스플레이 장치가 없습니다. 리모트가 있으면 제목을 볼 수 있지만, 제가 구입한 중고에는 리모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곡이 플레이되는지 제목을 보고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마치 LP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어느 곡을 플레이하는지 들어서 알 수밖에 없는 상황과 같습니다. 그런데 추가 정보 없이 음악에만 집중해야 하는 이 상황이 맘에 듭니다. 저는 이를 '느림의 미학'이라 부릅니다. 

데이비드 색스의 <아날로그의 반격>을 얼마 전에 읽었습니다. 엠디로 다시 돌아오게 만든 결정적 계기였죠. 색스는 사람들이 아날로그로 회귀하는 중요한 이유가 진짜에 대한 그리움이라 말합니다. 물리적으로 손에 만져지는 느낌을 디지털이 대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아날로그가 정답이라는 건 아닙니다. 


언제까지 될지 모르지만 엠디를 계속 쓸 생각입니다. LP를 들고 다닐 수는 없고 CD도 부담스럽습니다. 미니디스크가 딱 적당하지요. 아쉬운 건 가장 마지막 모델인 RH1이 2013년에 나왔는데 비정상적으로 비싸게 거래됩니다. 예전 모델들은 수명이 다 되어가고요. 간단한 수리는 직접 하거나 계속 구입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요. 그래서 튼튼하면서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모델(사진에 보이는 E510입니다. 중고가가 $20~30 정도입니다)에 집중할 생각입니다. 고장 나면 부품 교환 정도는 직접 해야겠지요. 


편하게 음악 들을 수 있는 방법이 널렸는데 왜 이 고생을 하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그런데 꼭 이유가 필요한가요? 좋으니까 하는 거죠 ^^ 


 


 

매거진의 이전글 JCS - Story & Songs [Part II]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