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09. 2020

저는 아싸(아웃사이더)입니다.

글은 아래 오디오북으로 시청하시거나 청취하실 수 있습니다.



가을이 막바지로 접어드는 어느 일상적인 금요일 오후, 갑자기 어디론가 이동해야 한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난데없이 체육대회라니 비보가 아닌가. 금요일 오후, 편안함과 집중력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소식이지만 선택권은 나에게 없다. 원하지 않는 스케줄이 별안간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경기도 곤지암쯤이라고 한다. 나 이외에 사람들은 기대에 들떠 있다. 돼지 바비큐, 야채, 과일을 비롯한 온갖 음식 파티가 준비 중이다. 다이어트 중인 나에게 파티라니 달갑지 않다. 직원들은 잔디가 깔린 넓은 운동장에서 오랜만에 실컷 뛰어볼 예정이란다. 젊은 영혼들은 축구공과 함께 유쾌하게 여기저기로 튕겨 다니기를 희망한다. 그러나 나는 직장에서 꽤 늙은(?) 축에 속한다. 몸을 사려야 하는 나이로 진입한 것이다.


겨우 모아 놓은 에너지를 몸으로 소모하고 싶진 않다. 그런 것은 예전부터 영 서투르다. 지도를 펼쳐놓고 집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궁리하지만, 실행할 수 없다. 집단의 원칙이 있으니까, 주최 측의 배려를 무시할 수 없으니까. 돌아갈 방법이 수만 가지 존재하더라도 그런 바람은 오직 생각으로 남겨져야 할 뿐이다.


나는 그들과 생긴 모양도 생각의 형태도, 즉 겉과 속이 완벽하게 다르다. 그들은 점점 멀리 달아나고 빠르게 질주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반대 방향을 향해 더 천천히 걷는다. 이를테면, 나는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며, 게다가 그런 무리에 억지로 속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무리는 오직 직장만을 위해서, 오직 일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기에 그에 대한 보상으로 짧은 운동과 대량의 음식으로 몸과 마음을 보충하려는 행위를 추종하는 사람들) 그러한 희생이 싫어서, 목적 없이 일만 하는 게 싫은 이유 때문에 나는 작년에 퇴사를 결정했고 일주일에 3회만 출근하는 직장을 차선으로 선택했다.


아무리 노력해봤자, 나는 그들과 영원히 좁혀질 수 없는 거리를 두고 사는 셈이다. 글을 쓰면 쓸수록 그런 마음은 더 굳어져간다. 나는 이방인이다. 평범하다고 정의할 수 있는, 말하자면 매일 출근하는 여느 직장인들과 다른 하루를 보내며 살아간다. 이를테면 그들의 영역은 토목, 나는 IT로 정의할 수 있으리라. 그러니 우리는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다. IT 용어든 알고리즘이든 디지털 트랜스 포메이션이든 그 무엇으로도 좁혀질 수 없는 우리의 관계를 어떤 용어로 설명하랴.


어쩌면 그들은 남몰래 나를 아싸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나는 그럼에도 그들의 삶으로 예속되어 아싸의 누명을 벗고 싶지 않다. 나는 나만의 길이 주어진 것이다. 그 길이 험난하더라도 고단하더라도 외로울지라도. 내가 선택한 삶이 아닌가.


나는 내성적인 데다가 예민하며 떠오르는 생각 때문에 늘 정신적으로 고양된 상태에 놓여 있다. 나는 그들과의 격차를 굳이 줄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내가 사는 세계에 그들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나도 그들의 세계를 두드리고 싶지 않다. 나는 나, 그들은 그들. 우린 서로의 세계에서 각자를 이방인 취급하며 살면 된다. 서로의 삶에서 손님처럼 살아가면 그만이다.



원한 건 아닌데 어쩌다 보니 나는 아싸로 살아가고 있다. 아싸가 ’아웃사이더’의 줄임말임은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비유한다면 지구를 사랑하지만 감정을 대놓고 드러내긴 싫은, 그렇다고 딱히 감추기도 싫어서 주변만 배회하는 달이야말로 아싸로 정의할 수 있겠다. 왜 그리 달에게 감정이 이입되는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내가 아싸로 살아가겠다고 의도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아싸가 된 것이다. 아싸는 내 역사를 여러 단어로 설명한다. 소심, 예민, 비혼, 딩크, 고독, 독학, 독서, 글쓰기, 시 이런 내향적인 상징들이 담겼다. 주로 사람들이 따분하게 여기는 것들이다.


아싸의 반대말은 인싸라고. 인간을 두 가지 진영으로 나누는 것이 불편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아싸아니면 인싸로 나뉜다고 책상을 세게 두드려본다. 굳이 증거하지 않아도 당신이 어느 축에 속하는지는 이미 꿰차고 있으리라. 요즘은 제멋대로 살아가는 게 대세라니 글도 이렇게 자유롭게 쓰며 내가 아싸라는 사실을 뽐내본다.


나는 혼자 보내는 시간을 중요하게 여긴다. 아니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극도로 사랑한다. 네다섯 명의 사람들과 같이 있으면 현기증을 느끼고 수십 명의 사람들과는 단 5분만 있어도 온몸에서 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커피도 테이크아웃을 선호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과 어울려야 할 때라면 곤혹스러움이 찾아온다. 그럴 땐, 빨리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혼자만의 시간에 빠져야 한다고 내 안에 숨은 아싸들이 아우성을 친다.


어차피 이번 생은 틀렸다고, 인싸가 되는 건 글렀으니까. 차라리 마음대로 살아가겠노라며 아싸로서의 자유를 외치는 게 아니겠나. 아싸는 배고프다. 영원히 관계를 굶주린 채 살아가야 하니까. 역설적으로 사랑이 고프며 사랑을 품은 인간이 고플 때도 있다. 그 이유가 글을 쓰게 만든다. 고립되고 싶지만 가끔 필요할 때만 연결되고 싶은 욕구, 이기적이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욕망. 사람에 대한 알 수 없는 굶주림.


어쨌든 아싸인 나는 인싸인과의 악연, 그 엇갈린 사슬에서 풀려나고 싶지 않다. 남들이 나를 밀어서 바깥으로 내쫓은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내가 남들을 안으로 밀어 넣는 삶, 그것이 아싸인인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거다. 나는 오늘도 나만의 외딴섬, 가로 세로 1미터 내외, 낮고 컴컴한 동굴, 책상 앞에서 시간을 보내련다.


나는 넓은 운동장 한쪽 모퉁이에서 아주 큰 사각형을 그리듯 느리게 느리게 외곽을 따라 걷는다. 무릎과 정강이 끝에서 뒤꿈치로, 다시 뒤꿈치에서 마른 잔디까지의 맨 감각이 신경에까지 흐른다. 그러니까 나는 흐르듯 걸어간 셈인데, 걷다 보면 명상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도를 깨달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마치 깨우침을 얻은 사람의 시늉을 하며 걷는다. 그러다 보면 옆길로 새듯, 도시의 삶이 나를 깨운다. 몇 시간 전에 걷던, 도시의 삭막함이 어깨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말이 하고 싶지 않을 때는 걷는다. 무리에 속하고 싶지 않을 때도 걷는다. 할 일이 없을 때도 걷는다. 물론, 할 일이 많을 때도 걷는다. 무심하고 쓸쓸한 사람처럼 어깨의 힘을 빼고 무작정 걷는 것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나이를 먹을수록 외곽을 돌고 돌아서 회전력이 강해진다 해도, 내 심장이 그리 예전만큼 가볍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돌면 나는 그만 지쳐버려서 제자리에 선다. 그리고 움직이는 걸 상상하며 내가 돌아온 트랙을 관망한다. 걷는 일, 무한히 나의 길을 찾아가는 일이란 고되고 외롭지만, 멈출 수는 없다. 심장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 걷는 일임을 알기 때문이다.


젊은 직원들은 힘차게 심장이 터지도록 뛰어다닌다. 나는 그들을 경계 안쪽으로 밀어 넣으며 바깥쪽을 사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언젠가 열심히 뛰어다닌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생각한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나와 직원들의 사이를 명확하게 규정짓지만, 그래도 마음속에서는 심장이 세차게 뛰고 있다. 하지만 우린 서로 이방인이다. 일주일에 세 번만 일하는 사람과 매일 일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책을 읽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우린 다른 우주에서 서로 평행하게 살아간다. 나는 내가 가끔 파수꾼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쓰기와 독서에 관한 정보 교류 & 소통하기

글 공유 책에서 읽은 문장 공유

커뮤니티에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 소식 공지

- 특강 소식 공지

- 글쓰기 및 독서 모임 할인 코드 제공



참가 → https://open.kakao.com/o/g0KsCKkc



매일 쓰는 것이 목적

- 자주 쓰는 습관 기르기

- 홍보에 제한 없음

- 누구나 자신의 글 바닥 홍보 가능

- 내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 실컷 자랑질 하기



참가 → https://open.kakao.com/o/g6pnVqoc


공대생의 심야서재 커뮤니티 카페

https://cafe.naver.com/wordmastre


매거진의 이전글 결정적인 순간에 머무른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