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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14. 2020

어느 작가의 문제적 생각(팩션) #1

도대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나에게는 단 한 문장도, 아니 한 글자라도 허용되지 않는다. 허락을 받아야 써질까? 허락은 어떤 존재에게 가닿게 될까. 나는 불기둥 속으로 던져졌고 활활 태워졌다. 그렇지만 다행히 사라지진 않았다. 불붙기 전부터 나에게 속했을 테지만 소진된 이후에도 나는 역시 나의 범주에 속하게 될까? 태어나기 전부터 나는 나라는 존재로 증명되었으니, 나는 과거 어느 시점부터 미래에 이르기까지 나로서 계속 살아가게 될까.


바람은 원인 모를 지점에서 시작되어서 어떤 지점을 향해 질주한다. 그 지점이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질주하는 모든 것들의 마지막엔 언제나 폐허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마치 고속도로 위에서 자동차를 훔치고 질주하는 범법자처럼 바람은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 마감을 지키지 못하는 나 역시 현재 악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바람과 같은 처지가 아닌가. 그러니, 나는 바람과 타협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건네고 다시 바람의 광란을 구경한다. 아니 동참한다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나는 바람처럼 질주할 수 없으니 내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달려가겠다는 말을 공중에 살포하고 문장 하나라도 던지려 노력한다. 그래야 내 진정성이 받아들여질 것 같으므로.


차라리 물처럼 흘러가는 건 어떨까. 물은 자신에게 젖어들 수 없다면 시작하지 말라고 나에게 다정한 말을 남긴다. 그 세계도 나와 상관없다면 바람에게 잠시라도 의탁된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될까. 나는 쓰러질 것 같다. 나뭇가지에 걸린 마지막 잎처럼 나는 흔들리고 곧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것 같다. 바람에 기댔으므로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의지했으므로 나는 긴장을 잃고 힘없이 허물어질 것이다. 어쩌면 쓰지 못하는 이유는 바람이 남긴 폭정 탓은 아닐까. 바람은 왜 생겨나서 나에게 고통을 안길까. 어디로 향하는지 모른 채 떠도는 바람의 운명처럼, 나도 이 작가라는 신분에게 내 던져진 노동의 되돌이표를 받아들이면 되는 걸까.


"바람의 옆구리를 슬쩍 건드려봐, 아니 살살 간지럼을 태우는 것도 좋을지 몰라. 괴롭히는 건 절대 도움이 안 돼. 달래 보는 게 좋아. 강요는 금물이야. 그렇게 하면 마음을 닫아버릴 거야.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좋아. 침묵에 영혼을 조금 묻혀서, 고독이 진술을 대신할 수 있게끔 하는 거야. 어차피 넌 말할 수 없을 테니까. 너에겐 고독이 지금 요긴할 거야"


글쓰기는 노동이다. 생각을 착취하면 할수록 더욱더 진부한 말 따위들만 토해낼 뿐이지만, 나는 그래도 난처한 표정을 짓는 나에게 폭력성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될 때까지 써내" 아무런 문장이라도 좋으니까 단 한 줄이라도 써 보는 것이다. 그것이 늘 써먹던 교활한 수법이라 할지라도 어차피 사람들은 내 문장의 다름을 구분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 찍어내듯 여과되지 못한, 엄밀히 말한다면 과거에 써먹던 문장을 남발하고 마치 위대한 행위를 펼치려는 마법사의 거짓 술수처럼 사람들에게 환상을 안기면 된다.


첫 줄만 쓰면, 그다음은 문제도 아니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 거짓말 같은 신화, 벽장 속에 감춰진 오래된 이야기 같은 것을 다시 꺼내면 되는 것이다. 세상은 돌고 돈다. 같은 자리에 우리는 언젠가 다시 도착하게 되고, 과거에 이용하던 낡은 수법을 자랑삼아 활용하게 될 테니까, 아무도 내 문장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 그러니 나는 여전히 구식이다.


나는 마감을 앞두고 나 자신의 가치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하늘이며 공기며 흙이며 물이며 동시에 돌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 무엇도 될 수 있다면 그중에서 내가 최종적으로 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궁리한다. 나는 위태롭게 한 문장을 겨우 다듬어내고 내일은 그럭저럭 간단하게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라고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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