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여백이 가득한 흰 종이처럼 몸을 얇게 뉘었다
누군가 건드리면 바람에 훅 날아갈 듯이
창가로, 방 한쪽 구석으로
간혹 침대 밑으로 그림자도 없이 스러지기만 했다
나는 왜 이리 가볍고 납작한지
날아가지도 못하면서도
내가 생각하는 무게감이란 이미
먼 곳에 있으니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걸까
대답도, 아니 설령 슬쩍 답을 내놓는다고 해도
그저 공허에 그칠 뿐인 대답
어쩌면 이웃 행성에 존재할지도 모를,
거짓 단세포쯤은 될 수 있을지도
아니 어떠한 변명도 통하지 않겠지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만지작거리다,
손때만 묻은 표면을 거칠게 다스렸다
그리고 그 더러운 지면을 한 손에 걸쳐 두곤,
흰 봉투 속을 들여다보았다
보이지 않는, 그렇다고 까맣지도 않은
터널처럼 생긴 입구에서
손때 묻은 것들은 출구까지
고요히 가을 낙엽처럼 혼자서 지쳐갔다
아직 겨울인데 왜 당신은
여름처럼 그 속에서만 살아가는가
죽을 만큼, 우리가
웅크리고 숨도 못 쉬고 버텨야 한다면,
고통을 매일 겪는 일상적인 사건처럼 넘어가야 한다면
전생에 쌓아 놓은 이름 모를 업적들은
누가 어찌 환생시킨단 말인가
아직 봉투는 봉인하지도 않았는데 나는
여전히 이 어둡고 비좁은 빈집에 계속 머무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