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15. 2020

당신과의 거리 두기는 이제 3단계로

마음에도 3단계가 있다면 믿으시겠어요?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리워하는 것, 그 마음이란 것도 1단계에서 출발하여 3단계까지 상승한다는 가설이에요. 아, 그 가설은 물론 제가 세웠어요. 그러니 아무런 신빙성도 학설도 존재하지 않는 셈이죠.


1단계는 그냥 아무 곳에서나 가끔 스치는 그렇고 그런 사이에 불과할 겁니다. 자주 만나다 보면 1.5 단계, 아니 2단계까지는 진척될지도 모르죠. 어느 날, 당신을 생각하는 시간이 유행처럼 닥쳐오는 거예요. 설렘이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서 마음 구석구석 퍼져가는 거예요. 그러다 진보하는 거죠. 3단계로 진입하면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됩니다. 아무도 말리지 못하게 되는 거죠. 약효가 온 마음으로 번지는 바람에 환자가 되는 겁니다.


물론 마음을 숫자로 센다는 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잘 알아요.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수치로 서로의 마음을 개량하게 됩니다.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은 너무나 무거워요. 그러니 이 감당 못할 내 마음을 입양해 주세요.'

'저울로도 내 마음을 잴 수 없어요. 당신을 생각하는 내 마음의 부피를 어떻게 숫자로 환산할 수 있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그 막연하고도 추상적인 느낌을 숫자에 맡기는 편입니다. 마음을 숨겨두기 위해서, 들키고 싶지 않아서...


당신은 혹시 3단계까지 가본 적이 있나요? 그 가본 적 없는, 근본 없는 나라에서 헤엄치듯 흘러가본 적이 있나요? 우주에 홀로 버려진 비행사처럼 목적지도 없이 무한하게 떠돌아 본 적이 있나요? 마음이란 건 그런가 봐요. 어디로 도착할지 모르는 공기방울 같은 비행사의 무작위성처럼, 계속 흐르고 또 흐르다, 언젠가 당신에게 당도하게 될지도 모르는 그 무엇이 아닐까요? 당신에게 비유될 수밖에 없는 어떤 숙명적인 흐름 같은 것.


마음은 어쩌면 풍선 같을지도 몰라요. 1단계에서 3단계까지 천천히 부풀어 오르다, 갑자기 어느 순간 바람 빠지듯 바깥으로 새어 나오는 거죠. 내 마음에도 그런 풍선이 있어요. 그 풍선은 하나일까요? 여러 개일까요? 그걸 꺼내서 당신에게 보여줬으면 좋겠군요.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제 마음속에서는 풍선이 부풀었다가 꺼지기를 반복해요.


아무튼 저는 체계가 무너진 사람이 됐어요. 마음이 급격하게 허물어졌거든요. 당신에게 말이죠. 어쩌면 붕괴 직전일지도 모르겠어요. 더 이상 이 마음을 수용할 수 없을 지경인데요. 어떡해야 할까요.








매거진의 이전글 넌 이과를 가는 게 좋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