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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11. 2020

넌 이과를 가는 게 좋겠다

‘넌 이과를 가는 게 좋겠다’


전 수학을 끔찍하게 싫어했습니다. 아니,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혐오했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음, 가만히 기억해보니 그럴만한 몇 가지 사건이 있네요. 그중에서도 문제 못 풀었다고 따귀 세대를 날린, 수학 선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아무튼, 그런 사람에게 이과라니 얼토당토않은 말 아닌가요? 하지만 저는 그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습니다. 싫어하는 것은 분명해도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라는 말을 부정할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어디로 갈지 모르는 사람에게 그 말은 구원의 빛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삶은 무수한 길들이 겹치고 겹쳐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우리는 길을 밟으면서도 지나온 길을 차츰 잃어갑니다. 그 길은 물론 문과적이고 간혹 이과적입니다. 길은 대체로 한 방향에서 두 방향으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길은 우리에게 선택을 강요합니다. 우리는 선택을 앞두고 권한을 타인에게 이양합니다. 18살의 저처럼 말이죠. 내가 선택한다는 일이 낯섭니다. 주체적으로 선택해본 적이 없으므로 답은 내려지기 난처한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저는 이상한 삶을 줄곧 살아왔습니다. 18살이라는 나이에 이과적인 길을 선택받고서 지금까지 30년 넘게 이과적인 길이 최선이라 믿고 살아왔으니까요. 그렇지만 내가 걸어왔던 길을 의심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는 시점이 언젠가 찾아오고야 맙니다. ‘나는 왜 이 길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지오디의 ‘길’ 가사처럼 우리는 현재에게 묻습니다. '이 길이 진정 네가 원한 것이었냐고.'


길은 이렇게 우리에게 예측 못한 질문을 던집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아주 낮고 엄숙한 목소리로, 잘 알고 있었다는 목소리로 부인합니다. ‘잘 알고 있었어. 내가 걸어온 길인데, 설마 그걸 모르고 살았겠어?’라고 속임수를 툭 던지고 맙니다. 이 말은 꽤 숙명적입니다. 스스로를 보호하려는 수단에 불과할지라도요.


저는 그래서 매 순간 조금씩 어긋나고 맙니다. 18살의 제가 내린 이과적인 결정을 번복하기 위해, 과거로 조금씩 삶을 환원시키고자 문과적인 생각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내 중심엔 동그란 원 하나가 있다고 말입니다. 원의 둘레에서 길이 출발하여 바깥으로 뻗어가는 것입니다. 그 길엔 문과적인 것도 이과적인 길도 있습니다. 나로부터 출발하여 세상으로 뻗어가니 그 길은 나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 선처럼 생긴 길은 제각각 듬성듬성 외곽을 향해 있습니다. 문과처럼 생긴 선과 이과처럼 생긴 선은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서로 반대 방향을 가리킬지도 모르겠습니다. 서로 연결할 수도 없으니 제각각의 길로 영원히 멀어지겠지요.


그러니까 이과적인 길은 체념 또는 청산의 대상인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품고 저는 원의 둘레에서 다시 길을 만듭니다. 그 길은 꽤 문과처럼 생겼습니다. 저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판정을 내립니다. 하지만, 그 길 하나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나가 출발하면 바로 옆에서 또 하나의 선이 뒤를 따라야 합니다. 그 선은 서로 꽤 근접해 있습니다. 너무 가까워서 두 선은 하나의 선처럼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선은 서로를 이웃처럼 포근하게 감쌉니다.


무심히 걷다, 이 길이 아니라면 슬쩍 옆으로 옮겨 타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피곤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 선들이 저에겐 너무나 많이 있으니까요. 저는 모든 선을, 아니 길을 하나처럼 연결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물어도, 자신 있게 대답은 못할지라도 하나의 목표로 향하고 있다고 대답이라도 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 목표란 것은 꿈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요? 꿈은 마치 18살의 진로 선택처럼 문과적이라는 사실이 위안을 줍니다. 저는 그 시절의 부조리를 이렇게 정의 내립니다. 그때의 무책임한 선생님도 길을 모르는 18살의 저도 모두 부조리한 삶에 잠시 취했을 뿐. 그 어느 누구에게도 죄를 물을 수밖에 없다는 걸 지금 서 있는 길에서 깨닫습니다. 삶은 앞으로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테죠. 얼마나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할지 예측할 수 없겠지만, 우리는 각자의 길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처럼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그 길 끝엔 서로가 바라고 보고 싶은 세계가 놓여있겠죠. 그러니 우리는 백일몽을 꾸듯 몽환적으로 발걸음을 옮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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