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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19. 2020

아빠 꽉 잡아야 돼

"아빠 꽉 잡아야 돼"

"아빠가 꽉 붙들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가봐"


아이의 고개가 앞쪽으로 계속 쏠렸습니다. 아이는 손잡이를 꽉 잡았습니다. 바퀴를 조심조심 굴려가며 달려갑니다. 10미터쯤 굴러가는 듯하더니 그만 왼쪽으로 엎어지고 말았습니다. 아스팔트 바닥에 온몸을 찧었으니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런데 고개를 돌아보니 아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아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신기해서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잠시 후 미끄럼틀 뒤에서 지켜보던 아빠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아이를 번쩍 들어 안았습니다. 그리고 몸에 붙은 먼지 같은 것들을 툴툴 떼어내며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친 데 없지? 괜찮아. 또 해보자" 


아빠의 나직하고도 따뜻한 물음, 그리고 아빠 품에 쏙 안기는 씩씩한 아들입니다. 밤 산책 중에 마주친 아주 사소한 풍경이었습니다. ‘그래, 나도 저런 아빠가 있었어.’라고 혼잣말을 하며 한참 흘러버린 시간을 가늠해봤습니다. 내 시간은 모두 어디로 흘러갔을까요? 글을 쓰는 지금 이 시점도, 지난여름 마주쳤던 아빠와 아이도 과거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갑니다만 결국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우리는 시간의 전리품이 된 셈이로군요.


8살쯤 됐을까요. 아마도 저 아이보다 한두 살은 더 먹었겠습니다. 저 역시도 자전거를 잘 타고 싶은, 동네에서 가끔 눈에 띄는, 하지만 결국 넘어지고야 마는 그런 평범한 아이였더랬습니다. 그 시절 어린 저에게도 꿈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언덕이 높은 윗동네에서 아랫동네로 쉼 없이 내려가 보고 싶은 꿈 말입니다. 겁이 유달리 많은 저에게 보조 바퀴가 달린 자전거는 언제나 필수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조 바퀴 덕분에 늘 자신감이 충만했던 것이죠. 겁 많은 아이였지만, 그깟 언덕쯤이야 ‘단숨에 내려갈 수 있다고’라며 허세를 부리는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아버진 늘 뒤에 말없이 서 있었습니다. 보조 바퀴를 떼어내며 오늘은 아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보겠다고 어깃장을 부리던 그 날, 기어코 안전장치로부터 독립을 해보겠다고 결심한 그날도 아버진 뒤에 나무처럼 우뚝 서 있었습니다. 자전거 뒤를 두 손으로 단단히 붙든 채, 제가 앞으로 계속 나아가길 묵묵히 기다리며 말입니다.

아버지의 두 손은 제가 늘 기댈 수 있는, 그러니까 언제든 뒤에 꼭 있어야만 하는 그런 소나무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는 나무에게 단단하게 붙들리며 너무 앞으로 쏠리거나 옆으로도 넘어지지 않도록 보조하는, 절대 배신 없는 영원한 믿음 같은 것들에게 의탁됐습니다.


저는 그런 믿음에 늘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것입니다.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 계속 가면 돼’,라고 말하던 어느 오후 시간 그리고 아버지의 말, 그 말은 시간에게 전리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사이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오후의 햇살, 그리고 두려움을 거둬들이지 못한 비명, 저는 그런 걸 무심하게 아주 느리게 먹고살았습니다. 아주 당연한 듯이. 하지만 그 믿음에도 유효기간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시간은 그때도 지금도 흐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빠르게 시간은 팽창하고 급격하게 기울어집니다.


며칠이 지나고 저는 신나게 달리는 아이가 됐습니다. 보조바퀴도 없이 심지어는 아버지의 두 손도 놓은 채, 어디든 쌩쌩 달렸습니다. 저는 가끔 윗동네까지 버스 몇 정거장을 훌쩍 지나쳐서도 낯선 동네에서도 잘 달리는 아이가 됐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그때처럼 달릴 수 있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왠지 저는 저 아이처럼 아버지 품에 안기고 싶어만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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