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pr 27. 2021

노코드 앱 플랫폼의 등장과 우뇌형 인간의 고뇌

So far, so good

생각엔 잠기는 편이 좋을까? 빠져나오는 편이 좋을까? 미니멀리즘이 유행이라는데 이번 기회에 머릿속에서 생각을 조금이나마 절감해볼까나. 역시 선택은 그 무엇이든 어렵다. 보이지 않는 생각이라는 것은 더욱더.


4차 산업혁명의 유행과 더불어 점점 생각할 이유가 사라진다. 기계적으로 출근하고 기계적으로 코딩하는 나의 일상을 관찰하자니, 확실히 생각하지 않아도 문제는 없다. 개발자인 나로서는 생각을 깊이 하지 않아도 원하는 프로그램을 뚝딱 만들어준다는 똑똑한 ‘노코드 앱 개발 플랫폼’의 등장이 낯설면서도 반갑기만 하다. 정말 생각하지 않아도, 그러니까 구체적으로 표현하거나 기술을 쓰지 않아도, 내가 그토록 고대하던 세계를 ‘노코드’가 도깨비방망이 후려치면 끝나듯 뚝딱 창조해 주려나. ‘이러다 인간의 역할이 점점 축소되는 건 아냐? 아예 개발자라는 타이틀이 영영 사라지게 되지는 않을까? 나 이제 뭐 먹고살라고?’


그래서 나는 요즘 생각하지 않으려 애쓴다. 하지만, 생각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필요한 생각만 선택적으로 고르면 된다는 얘기로 결론을 내는 편이지만…… 그런데 필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내려야 하려나. 그것조차도 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닌, 스마트한 기계에게 맡기만 그만이려나? 생각이 말살 취급을 당하는 시대, 생각할 필요가 사라졌으니 피곤하게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무엇이든 기계에게 편하게 맡기면 그만 아니겠나. 기계든, 인공지능이든,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말하자면 나보다 우월한 존재에게.


‘노코드 앱’ 개발 플랫폼이 출시되자마자 나는 반색하며 그 소식을 최신형 노트북인 맥북 에어 M1에서 받았으면 참 좋았겠지만, 10년 된 5킬로그램을 자랑하는 구형 아수스 노트북 화면으로 접하고 말았다. ‘이제 커뮤니케이션이 더 간소해지겠구나. 개발자와 디자이너 간, 개발자와 기획자 간의 높은 장벽이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곧 그런 낙관적인 전망은 공포로 변질되어 간다. ‘나처럼 기술을 잘? 이해하는 사람은 문제없겠지만, 깊이 익히지 못한 그러니까 4차 산업혁명에서 낙후된 인간들은 더 급속도로 도태되거나 멸종되고 말겠구나, 이 세계에도 이제 유행병이 더 깊어지겠구나, 가진  사람 그러니까 툴을 다룰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의 간극은 더 벌어질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무서운 생각. 그게 나에게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당신에게는 더 무서운 생각.


나는 직업병에 걸린 사람처럼 ‘노코드’ 개발 플랫폼을 뒤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그랬듯 남들보다 반 박자 빠르게 동향을 접하려고 몇 가지 툴을 재빠르게 선별한 후, 바로 다운로드했다. 역시 실행력이 사느냐 죽느냐를 가른다. 생각은 짧게, 그러니까 고민 따위에 흡착하려는 과거의 패턴에 기울어지지 말고, 축적된 결정 프로세스에게 역할을 맡기는 것이 현명하다. 


몇 가지 툴을 다운로드하고 나서 바로 테스트에 돌입했다. 제품의 장단점, 시장성, 편의성 등을 종합적으로 체험해보고 바로 판단까지 이른다. 이럴 때 좌뇌가 큰 역할을 담당한다. 몇 차례의 프로세스가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비교적 생각하는 시간, 즉 판단은 짧았다. 동물적인 결정력이라고 봐야 할까, 경험이라는 측면으로 해석해야 할까. 아무튼 빠르게 테스트해보고 빠르게 계속 사용해야 할 것인지, 그 여부를 판단하기에 이른다.


그래,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버텨온 나만의 생존 방식이다. 구태의연하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관습처럼 굳어진, 프로그램화된 나만의 방식에 따라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So far, so good’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괜찮다. 지금까지 잘 해냈던 것처럼, 앞으로도 지금처럼 살아가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안심해도 될 것인지, 여전히 주위엔 공포가 숨어있다. 안심할 때마다 옆구리를 쿡 찌른다.


또, 생각이 앞을 가로막는다. 불쑥불쑥 안개처럼 밀려드는 어떤 흐릿한 존재, 불안하고 두렵기만 한, 막연하며 실체는 불분명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불길한 기운에게 나는 위협을 느낀다. 생각 속에 분포된 대다수의 부정적인 기운, 그것을 감지하는데 능한 나는 비교적 메타인지가 높은 사람일까, 그저 부정적인 기운에 휩쓸리고 마는 나약해지려는 생각을 인증하는 것에 불과할까. 여유가 찾아올 때마다 말하자면 빈틈이 무럭무럭 자라날 때마다, 슬금슬금 고개를 쳐드는 잡초 같은 생각을 뿌리째 뽑아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일은 살아가는 동안 목격하지 못할 듯하다. 


나는 지금 고민 중이다. 어떻게 하면 기계적으로 학습하고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인간으로 나를 변모시킬 수 있을지. 물론 그 가능성은 고민보다는 실행에 달려있겠지만.



주간 공심 뉴스레터 구독하기

지금 구독하지 않으시면 분명 후회하실 겁니다.

https://maily.so/gsletter


매거진의 이전글 합리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