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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11. 2021

오늘 밤도 그 밤처럼 환하게 빛날까?

오징어잡이 배

아주 오래된 군 시절의 이야기다. 대부분의 군 생활을 강원도 철책선 뒤에서 보냈다. 몇 년을 보낸 기나긴 밤중에서도 향로봉에서 보낸 짧은 겨울밤은 아직 사진처럼 기억에 남아있다.


늦은 밤이었다. 그날도 몇 겹의 외투와 장갑, 장화, 복면, 귀마개까지, 온몸의 살을 완전히 감춘 채 근무지로 향했다. 옷이 무거웠을까, 마음이 무거웠을까, 아무튼 묵직하게 걷다 보면, 나는 사람이 아니라 녹색 옷을 입은 펭귄이 된 것 같았다. 아니, 옆에서 본다면 달 표면을 거닐던 닐 암스트롱의 발걸음과 비슷했을 것이다. 졸림 때문에 뒤뚱거렸는지 두터운 외투 때문에 그랬는지 난 좀 이상한 녀석처럼 걸어야 했다.


힘들게 땅을 튕기며 걷는 건지 굴러다니는 건지, 시간과 사투를 벌이다 보면 통일 전망대처럼 생긴 근무지가 봉오리 끝에서 도드라졌다. 그곳은 참 휑한 기운이 역설적으로 매력적인 장소였다. 두 사람이 서 있기엔 다소 공간을 낭비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그곳은 펭귄 수백 마리는 거뜬히 설 정도의 너비였다. 하지만 오직 두 사람만 그곳은 허락했다. 넓음은 안정보다 빈 공간을 깨닫게 해 줬다. 그 너비는 물론 달갑지 않았다. 물론 외로움으로도 메꿀 수 없는 추위가 여백을 곧 잊게 해 줬지만... 벽난로 같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큰 착각이다. 군대는 그런 자비가 없는 곳이니까.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정상에 서면 피부 한 꺼풀이 쓸려나가는 고통과 대면해야 한다. 눈, 코, 입을 빼놓고 모든 피부를 감싸도 칼바람은 언제든 피부를 세차게 훑었다. 2시간 동안 동동 발을 구르고 나서 봉화직염 직전 단계까지 진입하고 나서야 겨우 다음 근무자와 교대를 할 수 있었으니, 2시간은 늘 20시간처럼 느껴지게 마련이었다.


우린 각자 어정쩡한 위치에 서서 어색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말을 꺼내기도 주워 담기도 쉽지 않았다. 사람이든 말이든 무조건 얼어버리게 만들 것 같았으니까. 우린 칼바람과 정면충돌하기 싫어서 몸을 배배 꼬았고 흐리멍덩한 그러니까 썩은 동태눈으로 바깥세상을 동경하기도 했다. 어쨌든 향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남달랐다. 세상의 모든 비밀을 한눈에 조망하는 기분이 들었다고 할까? 넓고 깊은 산맥이 끝도 없이 펼쳐진 나머지 저 경계 너머까지 닿을 수만 있다면 세상의 끝을 구경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상상이 가끔 추위를 압도하기도 했으니까.


멀리 알프스 스키장이 보였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리프트는 작동을 멈추지 않았다. 하얀 눈보라가 칠 때마다 사람들의 즐거운 표정이 멀리서도 빛났다. 수백 미터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행복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표정들, 점점 굳어져 가는 내 눈, 코 입과 비교되는 표정들이었다. 눈길을 돌리면 바다도 나타났다. 이병률 시인의 말처럼 바다는 잘 있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누워있는 것처럼 비교적 편안해 보였다.



수평선 끝엔 별자리 같은 것들이 반짝였다. 장엄하고도 엄숙한 장면이었다. 왼쪽에서 시작된 불빛이 오른쪽 끝까지, 수평선 너머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이어졌으니까. 동료는 그 불빛이 오징어잡이 배라고 했다. 오징어? 아 강원도 하면 오징어라는 말을 듣긴 했다. 왠지 질긴 오징어라도 뜯으면 동료의 이야기에 더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오징어잡이 배까지 손이 닿을 리는 만무했다.


나는 불빛이 몇 개인지 세어보고 싶었다. 하나, 둘, 셋…으로 이어지다 귀찮은 생각이 들었다. 대충 10개씩 군집을 지어 세어보기로 했다. 어림잡아도 수백 척은 되어 보였다. 불규칙한 행렬이었지만 어떤 규칙적인 삶의 양식이 보이는 듯했다. 나도 그들도 잘 살아내기 위해 밤에 움직여야 하는 인생이구나, 오징어잡이 배도, 나에게도 빛은 일정하게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몇십 년을 오징어를 뜯었지만 오징어잡이 배들의 장관은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가 회의 시간에 오징어잡이 배 사진을 스크린에 투사했다. 한참을 졸던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설마 이곳이 향로봉은 아니겠지. 시간을 되돌린 건 아니겠지'하며 말이다. 대표는 신문 기사 하나를 스크린에 투척하며 소리쳤다. '판교의 오징어잡이 배를 들어봤어? 그곳은 24시간 동안 불도 꺼지지 않는데 대체 너희들은 6시만 되면 바퀴벌레처럼 사라지냐고!' 고함을 지르며.


향로봉에서 본 오징어잡이 배의 행렬은 아직도 나에겐 빛의 향연으로만 기억되는데, 그걸 야근과 철야 근무로 결부시키는 대표의 비유가 참으로 야속했다. 십수 년 전 강원도 바다에서 오징어잡이 하느라 열중이던 어부들은 나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조업을 했을까. 당장 오징어잡이 배에서 조업이라도 해야 되는 건지 난 불 꺼진 회의실에 앉아 내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건지 고뇌에 빠져야 했다.


나는 오징어잡이 배가 연출한 별빛을 본 것뿐이다. 온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은 극한의 추위를 앞두고서도 나는 낭만적인 상상을 놓지 않았다. 향로 봉에서 바라본 오징어잡이 배는 영원히 아름다운 별빛으로 남아야 할 테니까. 그래야 내 기억들을 낭만적인 것들로 영원히 마음속에 보존될 테니까. 대표는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 도 낭만을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 무엇이든 자신이 펼치는 사업, 그러니까 돈과 연관시켜야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대표와 교감을 주고받을 생각도 그의 의견에 동조할 생각도 없었다. 나의 추억을 일로 덧칠할 생각이 없다. 나는 조직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 밤늦도록 일을 해야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으니까. 나도 아닌 남을 위해 더욱 그러고 싶진 않았으니까.


가끔 눈을 감고 20대 시절의 향로봉으로 돌아가곤 한다. 사는 게 왜 이리 힘든지, 온몸이 방전되는 느낌이 들 때마다 몸서리치는 추위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것은 가슴 언저리를 저리게도 하지만 검고 푸른 바닷가와 그곳에 떠 있는 오징어잡이 배의 불빛을 별들의 세상이라 상상하며 잠시 미소를 짓게 만들기도 한다. 별들은 밤마다 저마다의 물결로 빛날 것이다. 수평선 가까이에서도 구름이 뒤덮인 하늘길에서도 우리가 일하는 일터에서도 별은 저마다의 빛깔로 빛난다. 오늘 밤도 나는 별들을 찾아 떠난다. 오늘 밤도 그때의 오징어잡이 배처럼 곱게 빛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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