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이 극대화된 순간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죽음은 예고 없이 닥친다. 산 사람은 죽음이 예고 없이 찾아온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맞서고 싶지만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 해법을 찾지 못한다. 궁금해도 찾을 수 없다.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 같은 것이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그래서 더 무섭다. 선전 포고 없이 맞서는 싸움이 바로 죽음이다.


2013년 7월, 난폭하게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장례식장에 도착했다. 그곳엔 아버지가 흰 천에 덮인 채 누워 있었다. 원래의 얼굴을 잃고 차디찬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궁금했다. 아버지는 따뜻한 집이 아닌 왜 장례식장의 싸늘한 냉동창고, 비좁은 관 속에 딱딱하게 굳어있어야 했을까. 이 선고는 누가 내렸을까. 아버지였을까, 신이었을까. 왜 그런 가혹한 심판을 내린 걸까. 이해하지 못할 세상 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예측하지 못한 어쩌면 거대한 파국과 비슷한 형상이었다. 안방에서 편안하게 잠을 자다, 갑자기 밀어닥친 산사태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 같은 그런 상황을 겪고 말았다. 그러니 내가 어떤 대비를 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 건지 마음도 몸도 판단할 수 없었다. 온몸의 세포들이 모두 얼어붙은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그 순간 어린아이로 돌아가 얼어버렸다. 아무런 결정도 할 수 없는 모든 체계가 정지된 상태로 장례식장에 향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일어난 첫 번째 죽음이었다. 물론 죽음은 수없이 자주 목격해왔다. 죽음이란 것은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교묘한 의미를 지닌 양면의 거울이었달까. 하지만,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나는 비교적 빠르게 냉정을 되찾아갔다. 아니 되찾을 것도 없었다. 처음부터 나는 차분하게 그리고 지극히 냉정하게 그곳을 찾아갔다. 내가 그렇게 된 것이 기묘하고 이상했다. 언제부터 잘못된 건지 알 수 없었다.


장례식장에서 나는 아버지의 관을 표정 없이 내려다봤다. 나는 그 어떠한 연민도 서글픔도 모두 바깥세상의 빗속에 내버려 두고 왔다. 나와 아버지 사이에는 무서운 강이 흐르고 또 흘렀다. 아무리 손을 뻗어도 절대 닿을 수 없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무의식의 강이 그곳에서는 무참하게 흘렀다.


나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그런 못돼먹은 자식이었다. ‘왜 울어야 하는데? 내 안에 쌓인 미움은 단 한 개도 풀어지지 않았는데? 난 아직 사과 한 마디 받지도 못했는데, 더군다나 용서한 적도 없는데, 이렇게 떠나가면 남은 자식들에겐 그저 영원한 미움만이 남을 뿐인데, 이 엉킨 실타래는 대체 어떻게 풀 건데?’ 이런 질문, 절대 살아서는 듣지 못할, 완벽하게 단절된 언어만이 폭풍처럼 소용돌이칠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침착했다. 적어도 겉모습으론 그랬다. 그 때문에 나는 내 멱살을 시종일관 붙들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강하게 흔들어댔다. ‘왜 울지 않는 건데? 자식이라면 당연히 바닥에 엎어져서 장례식장에 어울릴 법한 큰 소리를 내어야 하는 거 아냐?’라고 어디선가 소리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미동도 하지 않았다. 눈물은커녕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대답을 듣고 싶었으므로,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사실조차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어찌 눈물을 흘릴 수 있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었다. 내 자존심은 그렇게 지켜졌다.


슬픔은 슬픔이 극대화된 어떤 순간, 최고조의 순간에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슬픔은 오직 슬픔의 형체로서 그저 잠시 그곳에 맺혀 있을 뿐이다. 슬픔이 슬픔으로서의 자격을 취득하려면 공중으로 솟구쳐 올랐다 다시 중력에 따라 바닥으로 떨어져 흘러야 한다. 그러니 슬픔에겐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슬픔이 숙성될, 그러니까 슬픔이 온전히 보존되다, 슬픔이 슬픔을 밖으로 분출할 시간이 찾아왔을 때, 슬픔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에겐 시간이 필요했다. 받아들일 용기도 필요했다. 그러나 그런 것은 얼마나 걸리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은 것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아들이라는 자격도 상실됐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들로서의 역할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못한다. 나 역시 사멸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내 존재의 일부분이 사라진 결과 앞에서도 나는 의연해야 했다. 나의 대부분은 아직 이 세상에 속해있고 맡은 역할이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이후 내 삶은 철저히 반쪽짜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는 아버지 잃은 아들이라는 명찰을 불편해도 가슴 한구석에 달고 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