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의 씨앗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아버지는 기억 저편에 누워있다. 지금 나는 오랫동안 외면해둔 기억들을 꺼내려하고 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거의 10년이라는 시간이 호흡을 고르고 골랐다. 이제 묻어둔 장면들을 꺼내와 잠자코 재생할 예정이다. 장면이 하나씩 재생될 때마다 내 몸의 세포들은 그때 그 순간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기억들에 대해 의미를 새기게 될 것이다. 그런 기억들은 전적으로 나에게만 쓸모가 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그것까지 고려하지는 못한다.


글을 쓰면서 나는 아버지와 얽힌 기억들을 하나씩 들춰보려 한다. 어떤 기억은 왜곡됐고 어떤 기억은 복원조차 힘들다. 기억 속에는 사건의 작은 발단, 희미한 잔상 같은 것만 남아있지만 어떤 기억은 아직까지 대체로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런 기억은 대부분 치명적인 통증 같은 것이다. 건드릴수록 통증이 몸 한쪽에서 시작되어 전체로 번져간다. 그럼에도 쓰지 않을 수 없다. 써야만 아버지도 잠들고 나도 온전하게 잠들 수 있을 테니까.


아버지와 얽힌 기억들을 꺼내려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버지를 기리기 위함도 추억을 그럴싸하게 포장하려는 의도도 아니다. 오직 내 영혼이 자유로워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된다면 아버지도 맺힌 숙제를 풀게 되지 않을까? 그게 전부다. 끊임없이 생산되는 그러니까 아버지와 나 사이에 해결되지 못한 원망과 회한과 같은 감정들을 풀어야 하는 게 전부다. 물론 그 방법은 전적으로 단방향이다. 아버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쓴 이야기들을 들을 수도 읽을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글은 오직 나를 향한다. 상처 받은 유년 시절의 나를 돌보기 위해서이며, 현재의 내가 제대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쓰는 것이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첫 번째 떠오르는 장면은 어머니와의 오래된 불화다. 어릴 적부터 우리 집에서는 싸움이 그치질 않았다. 물론 나는 7살 정도였기 때문에, 싸움이 최초로 시작된 불씨 같은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아마도 경제적인 원인이 대부분이었을 거라 짐작은 하지만, 그런 측면은 어린아이어도 눈치로 알 수 있다. 가난한 집 아이는 보통 눈치를 재능으로 타고나는 편이니까. 어쨌든 나 역시 눈치를 활용하는 재주가 그때부터 생긴 것 같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버지는 내가 기억하는 시절부터 뚜렷한 직업이 없었다. 그러니까 실업자 상태로 몇 개월 아니 몇 년을 지속했던 것 같다. 문제는 남자가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남편으로서의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데 있다. 아내에게도 자식에게도 은근 무시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린 내가 아버지를 무시했던 것은 아니다. 추호도 그럴 생각도 그럴만한 이유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직업 없이 단 한 푼도 벌어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를 자식에게 풀었다. 장남이라는 타이틀은 아버지가 화를 풀 만한 적당한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그때는 가정이나 학교나 비슷한 풍조가 존재했다. 부모는 자신의 스트레스를 힘없는 자식에게 풀고 선생은 아이들에게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는 그런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곤 했다. 아이는 결국 가정과 학교 모두에서 피해자가 되고 만 것이었다. 아버지가 가장으로서 제 역할을 해내지 못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질타를 받을 만한 상황인데, 더 큰 문제는 아버지의 도박이었다.


나는 기억한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붙들려 끌어 나오던 기원의 풍경을,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찌들며 홀아비 냄새만이 가득한 기원의 바둑판과 시끄러운 야유와 질책이 섞인 소음들을. 어머니의 잔혹한 아우성을, 비탄에 가득 찬 아버지의 울분을, 그런 장면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나의 태연함을 나는 기억한다. 충격적인 장면이 연이어 반복되고 눈앞에서 계속 펼쳐지면 인간은 결국 그런 것에도 둔감해진다. 충격적인 것이 더 이상 그렇게 느껴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게 적응이라는 놀라운 능력이다. 인간만이 타고난, 내가 지나치게 조숙하게 성장할 수밖에 없었던 단 하나의 이유다. 난 그렇게 아이지만 어른이 일찍 되어버렸다.


이전 01화슬픔이 극대화된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