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아버지 기일이었다. 제사 시간에 맞추려면 회사에서 일찍 퇴근해야 했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10시에서 7시까지 근무하는 것으로 업무 시간을 변경한 탓이었다. 원칙이란 것은 세워졌으면 웬만하면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부터 그런 틀을 깨버린다면 원칙이란 것이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일이 되고, 애초에 원칙을 만들 이유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에는 융통성을 발휘해도 괜찮다고 마음 한쪽에서 반대 의견을 펼쳤지만 그것에 수긍하지 않았다.
근무 시간을 완벽히 준수하고 나서 퇴근길에 나섰다. 낮 동안 34도 부근까지 올라갔다고 동료들과 떠들썩 말 한마디씩을 주고받았다. 새장에 갇혀있다가 세상으로 탈출하는 기분이 들었다. 너무 오랫동안 찬 바람에 노출되었던 탓이었을까. 세상과 나는 서로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다. 내가 바라보는 세상과 꿈꾸는 세상이 격리되어있다고, 이 세상은 어쩌면 가상현실이 아닌가, 라는 기묘한 생각과 함께.
모처럼 버스를 타고 한강을 건넜다. 미세먼지 앱에 따르면 하늘에 먼지뿐이라더니 그렇지는 않았다. 멀리, 한강변 아파트 건너편에서는 금빛의 마지막 식탁이 펼쳐졌다. 놓친다면 후회가 찾아올 것 같아,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렀지만 둔탁한 소리가 풍경을 깨뜨렸다. 탈주하듯 질주하는 좌석버스, 잿빛에 물든 콘크리트의 음영들, 금빛 무늬의 부챗살, 옅은 파란색 하늘, 고요하게 그리고 무구하게 흐르는 투명한 물결, 몇 장의 컷을 채팅방에 공개하고 싶었지만 특정한 순간, 말 못 할 풍경에서 느낀 감정까지 어찌 그대로 전할 수 있을까 싶어, 그만두었다. 단지 사진 한 장만 진열할 뿐인데.
제사상에는 여러 음식이 올라갔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신분이 명확해지는 자리에서 누구를 위하여 명복을 빌어야 하는 것인지,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은 사람을 기리기 위해서, 미래의 나를 위해서 혹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서 복을 바라고 추억을 기념하는 자리인지 불분명했다. 배가 고파왔다. 굉장한 허기와 주체할 수 없는 더위, 모멸감, 피로감이 한꺼번에 몰려와 잠시 현기증을 일으켰다. 샘이 말라 눈물은 흐르지도 솟구치지도 않았고 슬픈 감정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주 잠깐 먹먹함이 찾아왔지만 그것은 내 것이 아닌 듯 금세 증발되어 버렸다.
내일이면 또다시 세상이 시작될 것이고 새로운 여정도 열릴 것이다. 어떤 옷으로 갈아입고 나서야 할지 생각은 복잡하게 틀어질 게 뻔하니, 옷에 대한 고민은 이제 그만해도 되려나. 그런데 이런 제사는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까. 그런 의미 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자꾸만 낡은 옷에 집착한다. 새로운 옷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불평까지 해댄다. 마치 제사상에 오른 아버지가 좋아하던 육전처럼 삶은 특정한 시점에 고정되어 있다.
어쩌면 나는 아주 긴 가교를 건너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끝없이 이어진 가교 옆 아슬아슬한 난간을 타고 묘기를 부리는 것이다. 떨어지면 모든 것이 끝나지만, 무사히 건널 수 있다는 도박을 하며. 믿음을 잃지 않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