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가 꿈에 다시 나타났다. 꿈에서 아버지는 죽은 사람이 아니라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 나에게 지속적으로 어떤 말을 건넬 듯 입술을 실룩거렸고 심지어는 이부자리에 누워 한숨을 공중에 내뱉기도 했다. 나는 꿈속에서 한 가지 명확한 사실, 아버지가 이미 오래전에 고인이 됐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아니 인정하지 못했다.
아버진 젊은 시절 출판사를 운영했다. 어린 나는 당시 출판사의 규모를 알지 못했지만 꿈에서야 아버지가 벌인 사업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 그 순간을 통해 나는 과거의 어떤 지점을 유추해냈다. 어쩌면 그것은 꿈이 아니라, 실제로 들은 그러니까 축소된 기억에서 확장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빚이 2천에서 4천까지 늘어나고 말았어……"
아버지는 자신의 늘어난 빚에 대해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다며 오래된 이야기를 비밀이라도 된 마냥 가족에게 털어놨다. 가족이래 봤자 단칸방에 평행하게 누운 네 식구에 불과했지만. 어쨌든 숨쉬기도 곤란하며, 귀를 막아도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아버지는 검사에게 진술하듯, 늘어난 적자와 감당해야 할 빚에 대해 털어놨다.
그 빚이라는 것은 그러니까 9살에 불과한 내가 충분히 가늠이 가능한 커다란 암덩어리 같은 구조였다.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출판의 사업구조는 이러한 방식이었다. 그 사업은 아마도 작은 출판사보다 훨씬 규모가 큰, 어떤 출판사로부터 책을 먼저 사입받아 판매하는 구조였는데, 그 책이란 것은 단행본이 아닌 전집이었으며 책의 부피보다 책에 담긴 내용이 워낙 전문적인 탓에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말하자면 80년대 초반, 전집으로는 당시 금액으로 몇 십만 원(지금으로 환산하면 전집당 수백, 수천만 원?) 빚을 지고 먼저 떠안아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출판사보다 더 큰, 갑 출판사는 그다지 손해 볼 일이 없었다. 을인 아버지에게 어차피 책임이 돌아갔기 때문에…… 아버지의 판매 실적이 좋지 않다면 그 비용은 고스란히 아버지 회사의 빚이 될 테니, 어차피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고리대금업자처럼 돈을 수금해 갔을 것이다. 물론 아버지의 사업 수완이 대체로 괜찮았기 때문에(말발이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 책은 비교적 잘 팔려나갔으므로 우리 가정이 추락하는 불상사는 잘 일어나지 않았다. 적어도 당분간은.
하지만 추락은 언제든 찾아오게 마련, 사업이란 것도 운이 맞아야 잘 굴러가지 않겠나. 사업은 언제든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그 출판 호황도 결국 나락의 길을 밟을 수밖에 없었다. 그 이야기가 바로 꿈에서 목격한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눈 대화의 핵심이었다. 그 대화는 현실처럼 생생했고, 죄책감에 휩싸여 살았던,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버지의 잊고 싶은 기억 하나를 억지로 되살린 것이리라. 어떤 왜소한 기억, 감추고 싶은 치부 같은 것들과 함께.
나는 현재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것도 자정 무렵이면 하이드 박사처럼 낮과는 다른 모습이 된다. 나는 왜 글을 쓰려고 애쓰는 걸까? 이런 질문에 대해 답을 내려본다면 결국 과거와 화해를 나누고 싶은, 과거 속의 아버지의 환영과 이별하고 싶은 이유가 꽤 큰 자리를 차지하는 게 아닐까. 또한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에 존재하는 오직 단 하나인 내 생각과 사유만으로, 나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고 싶은 이유가 크지 않을까. 아버지가 아닌, 말하자면 내가 만든 고유의 틀 안에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꿈속의 아버지처럼 자주 왜소해진다. 내 목소리가 담길, 세상의 그릇이 점점 작아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점점 사라질 듯 희미해져 가는 나의 존재를 위해 애써 용기를 내고 글을 쓰는 것이다.
내가 지쳤고 왜소해졌고 보잘것없는 존재가 되어갈 때, 그리하여 도저히 그것을 감당할 자신이 없을 때, 나는 글로써 노래를 부른다. 사이먼과 가펑클의 Bridge Over Troubled Water의 가사처럼, 내 눈에 고인 눈물을 이해하려고.
아버진 꿈을 떠난 현실에서도 늘 왜소했다. 왜소한 체구만큼이나 포부도 자신감도 역시 작았다. 나는 아버지가 가진 왜소함으로부터 멀어지려고 아버지와는 다른 인생을 살기 위해 삶의 모든 방면에서 커지려고 노력한다. 아버지로부터 독립한 그날 이후로, 나는 계속 성장하고 있을까? 그래서 왜소함과는 완벽하게 격리되었을까?
이 세상은 험난하다. 성나고 험악하며 폭군처럼 나를 파도 밑으로 거세게 몰아붙인다. 파도 더미 속에서도 삶을 버텨내기 위해서라면 나에겐 험한 세상을 버티게 해 줄, 단단한 다리가 필요하다. 내 글은 그러니 나에게 향한다. 나를 위한 든든한 다리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