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삶이 공허하다고 말했다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어둠만 한가득뿐인, 어둠 이외에는 그 어떠한 물질도 영혼도 허락하지 않는 공간에 나 홀로 존재하고 싶었다. 흔들의자에 불편하게 몸을 뉘었다. 앞뒤로 삐거덕거리는 소리를 내며 심오한 무언가가 안정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반대로 다시 돌아왔다. 나는 그 흐름에 내 몸을 온전히 맡기며 의자와 내가 어느 순간 하나가 됐다고 상상했다.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야마하 리시버에 전원을 불어넣었다. 소스는 Hdtracks에서 구입한 하이 퀄리티 음원으로 골랐다. 알반 베르크 콰르텟이 맡은 하이든의 ‘황제’ 현악 4중주 2악장이었다. JBL 30킬로그램의 거구와는 어울리지 않는 어떤 영향력이 미드레인지와 트위터 부근에서 산들바람처럼 새어 나왔다.


삶이 공허해질 때는 환경을 바꾸는 게 중요하다. 바꾼다는 것, 그러니까 개선한다는 문장에는 기존에 나라는 인간을 위해 곤고하게 세워진 성역 같은 틀을 무너뜨리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나를 쓰러뜨리고 그 무너진 자리에 새로운 기틀을 닦는다는 것, 원망 섞인 과거 따위와는 이별해 버리고 새로운 관념들로 내일을 채워야 한다는 이론만 남는 것이다.


2악장이 끝나갈 무렵 오래된 물건들을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변화가 필요했기 때문에, 환경을 바꾼다는 결정엔 다소 충격적인 행동이 포괄되어야 할 것 같아서 내린 생각이었다. 나는 현재 텅 빈 공간에 집착 중이다. 그래서 안방에 가득 찬 물건들을 거의 버리다시피 했다. 가격은 물론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물건들이 집에서 치워진다는 측면이 더 중요했으니까. 닥치는 대로 거치적거리는 물건들을 버리거나 팔아치웠다. 그다음 대상은 바로 서랍 속에 남몰래 숨겨둔 아버지를 향한 오래된 원망의 목소리들이었다.


아무리 견고하게 세워진 세상일지라도 결국엔 무너지고 만다. 영원할 거라 믿은 질긴 생명력도 생일 케이크 조각에 꽂힌 촛불처럼 언젠가 사그라들고 만다. 그러니 기억에 집착할 필요도 그 몹쓸 기억에 괴로워할 필요도 없다. 과거는 현재 내 존재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모든 기억은 지극히 순간적인 것이다.


버리기 시작하자, 빈틈이 곧 찾아왔다. 틈은 틈 그 자체로 보존되어야 한다. 무엇을 채울 것인가, 그 측면보다 얼마나 더 많은 틈을 찾아낼 것인가, 그 측면에 집중할 때다. 그것이 나이를 먹어가는 사람이, 오래도록 화해하지 못한 사람이 과거와 빠르게 화해하는 방법이 아닐까


환경을 바꾸겠다는 목적은 희생을 따르게 만든다. 정든 물건이 나 대신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결정은 앞으로 어떤 대가를 감당하게 만들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이 흐름이라면 그 질서에 무방비하더라도 따라가면 그만이다. 몇 번의 노력 끝에 내 삶엔 변화가 찾아왔다. 오래된 타성 같은 것들이 자리를 물러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타협이 필요했다. 모두 팔아 치워 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고민 끝에 아버지와 쌓은 몇 가지 교감은 기억에 남겨 두기로 했다. 이렇게 글로 적어 내려가며. 그 기억들은 제물 의식에서 다행히 제외된 것이다. 원망이 담긴 대부분의 기억들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치워졌다.


어떤 기억에는 치유라는 딱지가 붙었고 어떤 기억들은 공간을 재편성하며 이별의 스티커가 붙었다. 잠시 후 어둠이 어김없이 내 공간으로 스며들어와 공허라는 타입의 밤이 다시 시작됐음을 알렸다. 어젯밤과 마찬가지로 나는 하이든의 현악 4중주에 몸을 기댔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밤이었지만 어떤 표층을 하나 제거해버린 청량함이 공간을 독차지했다.


공허는 언제는 다시 열린다. 그것은 저 아래에서 우러나는 새벽의 안개와 같은 존재다. 공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과연 존재할까. 삶은 언제든 공허해질 수 있다. 빠져나온다고 한들 다시 그 속에 진입될 확률이 크다. 하지만 내가 시도하는 이런 작은 화해의 제스처가 삶에 어떤 긍정적인 작용을 미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심지어 오래된 이 지독한 무력감마저 가져가 줄지도 모른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여기저기를 쓸고 닦기 시작했다. 어둠 한가운데서 보이지도 않는 먼지 따위를 쓸어버리겠다고 이곳저곳을 쓱쓱 문질러 댔다. 손바닥과 책상이 마찰을 일으킬 때마다 나는 더 매끄러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 공허하다면 계속해서 무언가를 시도하는 것이다. 정든 물건을 내다 파는 일이건, 방안의 모든 먼지를 제거하는 일이건, 아버지에게 받은 모든 상처들을 떼어내는 일이건, 마치 가구들을 이곳저곳으로 옮겨가며 변화를 시도하는 일처럼 나는 그 활동이 신통치 않더라도 나선다. 지금은 버리고 움직여야 할 때다. 물건이든 원망이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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