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시련은 인간을 빛나게 만든다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어느 날 시련에게 초대를 받았다. 거부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으므로 나는 그의 테이블 앞에 앉아야 했다. 부름을 거부하면서도 그에게 자석처럼 이끌리고 마는 이유는 뭘까. 문을 열고 그의 세상으로 미끄러진다는 것, 그의 안방에 초대되었으나 나는 그의 전체도 일부분도 될 수 없다는 사실, 그저 이방인이라는 사실만 더 분명 해지는.


시련의 정원에서 피어난 온갖 모양의 가시들이 날카롭게 빛났다. 나는 정원을 에워싼, 차디찬 담장 주변을 돌아다녔다. 그럴 때마다 불쑥 “내가 혹시 가혹하게 당신을 몰아붙였나요?”라고 시련이 냉정하게 물었다. 가혹하다는 말의 정의, 얼마나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건지, 그 밑바닥의 깊이도 너비도 가늠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오직 짐작만으로 가혹의 정도를 공상해야 했다.


“적당한 시련이야말로 인간을 빛나게 만들죠?”라고 시련이 다시 나지막하게 말했다.


“적당함은 어디까지 얼마나 길게 뻗어있을까요?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과 우리가 의식하는 거리만큼 시련은 막연하게 다가옵니다. 밤마다 저 너머의 세상을 동경하며 그 막막한 세계가 전하는, 이곳엔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이야기, 어리석은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규명하기 힘든 가혹함을 번역하는 일이란 얼마나 우리에게 어려운 숙제인가요. 차라리 당신의 가시로 제 살갗을 찔러주는 건 어떻습니까. 문장만으로 상상하라고 주문하지 말고, 아프게 생살에 상처를 내달란 말이에요. 그렇게 해주면 시련의 의미는 더 이상 관념적인, 그러니까 지구 바깥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영역 안으로 초대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지금 내가 고통을 느낄 수 있게 해 달란 말이에요. 저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요.”


시련에 좌절하지 않는다는 말은 시련에 지지 않는다는 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럼에도 시련은 여전히 어젯밤 찬 서리에 고개를 숙이고만 야생화가 남기고 떠난 편지, 그 속에 담긴 마지막 카운트다운 같았다. 여전히 추상적인 문장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시련, 그 글자를 무성한 버드나무 가지 끝에 매달아 놓곤, 나는 시련이란 얼마나 나를 아프게 할까, 생각했다. 나는 좌절하지 않을 자신도 아프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게다가 그것이 과연 미래에서 얼마나 쓸모가 있을지 확신할 수도 없었다. 구경꾼처럼 가지 위에 흔들리는 시련의 형상이 어떤 씨앗을 만들지 바닥에 밑그림을 그리다, 그만두고 말았다.


알약을 털어 넣었다. 찬물과 더운물이 반쯤 섞인?, 아니 1/3쯤 섞인 미지근한 물과 함께 루테인인지 비타민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것을. 목구멍 바로 밑이던가 아니면 위 어디쯤이던가 알약이 공중 부양하는 듯 역류했다. 이렇게 당장 무언가를 삼기면 잠시 시련이 치유되는 것 같기도, 그래서 가라앉았던 마음이 얼마간 고양되는 기분이 들기도.


삶이란 알약 같은 것에 융해되는 것인가. 약 없이 버틸 수 없는 삶, 나도 그렇게 아버지처럼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처럼, 나는 아버지가 절대 될 수 없겠지만 어쨌든 내 아버지가 거쳐갔을, 그 시련의 시기를 지금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언제나처럼 시간을 잃고 시간을 얻어 가지만, 이제는 잃는 것이 더 많아지게 되는 나이로 진입해간다.


나는 시련에 강하게 저항하고 싶다. 그동안 겪은 시련으로도 충분한데 얼마나 더 그것을 겪어야 한단 말인가. 삶이 호수처럼 유순하게 흐르는 것이면 좋겠다. 그 물결을 고정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는 정체되어 있을까, 의식을 의식하지 않아도 무참하게 삶은 이상한 모양으로 변해가는 걸까. 내가 두려운 것은 시련을 반복하려는 어떤 관성적인 흐름 때문이다.


어제의 시련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기만 한다면 과연 미래의 나에게 어떤 새로운 기회가 주어지겠는가. 아침마다 새로운 기회가 눈을 뜬다는 이론 앞에서도 내가 시간에 무릎을 꿇고야 마는 그런 관성적인 행태를 반복한다면 나는 살아있다고 볼 수 있을까. 살아 있어도 이 모순적인 행동을 반복한다면 어찌 나는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05:30, 알람 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게 집안에서 울려 퍼졌을 때, 나는 그 규칙적이면서도 반복적인 소음들이 더 이상 시련이 아닌 평화로운 안식을 전해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가라앉은 풍경 속에서 마치 어둠의 세계들이 하나씩 환기되듯이 어떤 불길함들도 하나둘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내 불안한 촉수들, 하늘에서 검은 구름이 일시에 세상을 뒤덮듯 찾아오는 낯설면서도 익숙한 감각들, 어제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오늘 새롭게 태어나는 시련의 새싹 같은 것들.


서서히 깨어나는 새로운 시련에 대한 자각, 나는 불만과 희망이 뒤섞인 존재들에게 위안을 몇 마디 내밀곤, 희미해져 가는 영혼에게 삶이 다시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나는 한없이 작은 그릇이고 꿈속에서도 과거를 더듬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시련과 회복 사이에서 방황한다는 사실, 어젯밤 잠들기 전 무수하게 찾아왔던 친애하는 과거의 시련들에게 영원한 이별을 고해야 한다는 사실에 수긍했던 나는 보잘것없는 이 마음이 얼마나 더 많은 시련을 미래에도 겪어야 할지 알 수 없었으므로 나는 시련을 조금 더 담대하게 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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