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산에 오를 때마다 등산 배낭에 '휘발유 버너'를 넣어 다녔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군데군데 퍼렇게 녹이 슬어서 본래의 빛깔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낡은 딱지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던 버너의 기억은 아직 선명하게 남아있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산에서 취사가 가능했으니, 아버진 그 도구를 사용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해볼 작정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아마도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었을 테지만, 미완성으로 남게 될 무명작가의 마지막 혼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적어도 내 세상 안에서는 말이다.
고개를 땅바닥에 푹 숙이고 한참을 오르고 오르다, 적당하게 앉을 만한 자리 그러니까 길에서 조금 비켜난 계곡 아래 어디쯤, 바람도 볕도 없고 물조차 말라버린 황무지 같은 곳을 발견해내는 능력을 아버지는 지녔다. 인적이 사라진 곳, 두 사람이 겨우 앉을 만한 다소 평평한 거처에 자리를 잡고서는, 아버진 배낭 속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엉거주춤한 시간이 어색하게 지나면 돗자리가 튀어나오고 그 뒤를 이어 녹이 잔뜩 슨 버너가 짠 하고 나오고 또다시 코펠이 튀어나오고 온갖 신기한 도구들이 즐비하게 튀어나왔다. 물론 간식이나 한 끼를 때울 먹거리들도 같이 옆에 차려졌다.
아버지는 "넌 옆에 앉아서 구경이나 잘해"라고 말하곤 바늘구멍보다 더 작은 입구를 가진 구식 버너에 휘발유를 주입하곤 길쭉하게 생긴, 말하자면 너무 가늘어서 잘못하다간 부러질 것 같은 피스톤을 양손을 이용해서 압력을 가했다. 휘발유를 넣는다고 바로 불이 붙지 않는다는 사실, 라이터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 그 짜증 나는 사실 때문에 나는 버너가 폭발할까 싶어 커다란 바위 뒤로 달아났지만… 마치 모든 일에는 준비 작업이 정성스러워해야 하고 예열이 필요하다는 것을 실전 교육이라도 시켜주는 것처럼 나는 아버지의 행동을 조심스러우면서도 불안한 자세로 구경했다.
그 낡고 닳아빠진 버너는 절대 회생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지만,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의 걸친 아버지의 집념으로 결국 살아나긴 했다. 되살아난 버너 덕분에 우린 얼큰한 김치찌개 국물에 숟가락을 얹힐 수 있었다. 계곡을 타고 날아오르는 5월의 서늘한 바람이 간혹 바람막이를 툭툭 건드리며 불씨를 꺼뜨리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뒤늦게 타오른 불빛도 김치찌개의 매운맛도 절대 꺼지지 않을 만큼 강렬했다.
먼 기억이란 그때 타오른 버너의 파란 불빛처럼 나직하지만 꽤 오래가는 편인 것 같다. 어떤 기억은 지우려 억지로 노력해도, 등지려고 발악해도 절대 돌아설 수 없겠다고 나에게 저항한다. 기억은 그때마다 심연 어딘가에서 인출이 되지만 어떤 취급을 당하게 될지 현재의 나로서는 쓰기 전에는 도통 알 수 없다. 유통기한이 만료되어버린 상한 음식들처럼 기억은 그런 하찮은 취급을 당하기 싫은 걸까. 기억이란 본래 그런 성질을 가진 걸까.
난 아버지의 낡아빠진 버너가 너무 창피했다. 누군가 아슬아슬한 그 광경을 볼까, 내 작은 등으로 감추고 싶었지만 그건 힘든 일이었다. 등산로가 됐건, 커다란 바위 뒤쯤이 됐건, 되살아날 기미도 보여주지 않는 버너에게 집착하는 아버지의 안간힘을 오래도록 바라보는 거 자체가 너무 지루하고 힘들었다. 왜 싫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견디기 싫은 내 성격 탓일지도, 낡은 물건에 집착하는 아버지가 초라해 보여서일지도. 부르스타와 같은 신문물을 가진 이모네와 비교되는 게 싫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는 아버지의 낡은 버너가 우리 집의 가난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런 이물감에도 버너는 오래도록 제 임무를 해냈다. 돼지고기와 김치의 조합은 썩 잘 어울렸고, 여간해서 김치에 손대지 않던 나조차 최고의 콤비네이션이라고 선언할 정도였으니까. 그걸 만들어 준 것도 결국 낡은 버너의 마지막 승리였을지도.
그 버너는 붉은 노을이 뜨는 직전까지 서서히 타오르다, 태양의 몰락과 함께 빛을 잃어갔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왔다는 신호, 그만큼의 휘발유가 소모됐으니 집으로 돌아가야 했겠지, 아버지와 난 어쩌면 짧게나마 활활 타오르는 순간을 함께 보냈던 것 같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 절대로 휘발되지 않을 지점을 그곳에 묻어놓고 돌아왔지만, 난 아직도 그 위치를 찾아내고 판독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