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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May 02. 2016

읽고, 듣고, 보고, 배우고, 말하다.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글 다운 글을 본격적으로 써보겠다고 공식적인 선포를 가족과 지인들에게 공표한지, 찰나의 시간이 흐른 후, 친분이 두터운 후배가 나에게 책 몇 권을 선물했다. 그 친구는 독서량에 있어서 나보다 한참 선배이자, 나이는 나보다 어려도 인생의 숱한 경험들을 가슴속에 한가득 새긴 내공의 소유자였다. 내가 그 친구에게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지, 어떤 맥락으로 나의 경험들을  펼쳐나갈 것인지 자문을 구했을 때, 그가 건넨 책들엔 내가 꿈꾸는 이상을 향한 내일의 비기(祕記) 같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어떤 글을 쓸 것인지, 방향이 명확하게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저것 머릿속에 생각들만 복잡하게 쌓여갔고, 어깨는 들썩거렸고, 마음은 출렁거렸으며 심장은 덜 영글었다. 밝은 미래만을 기대한 나의 내면에는 다른 사람의 말을 깊이 새겨들을 여유가 없었다.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주어진 숙제를 '정해진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인가'라는 결과만에 매달렸다. 그렇게 후배로부터 이어받은 책들은 책장에서 한자리를 번듯하게 차지한 채, 시야에서 멀리 소외됐다.


글쓰기를 주제로 한, 첫 번째 관문에서 나는 쓰라린 실패를 경험했다. 지나간 과거를 회고하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어떤 것이 부족한지, 후배와 나는 짧은 온라인 대화를 나눴다. 후배는 나에게 그 책을 읽어봤는지, 후배에게 근황을 묻는 질문을 지나쳐 무심한 반문을 건넸다. 후배와 내가 나눈 짧은 대화의 기억은 아래와 같다.

후배 : 형님! 혹시 제가 드린 책 읽어 보셨어요?
나 : 어? 어떤 책 말이지?
후배 : 제가 드린 책 중에, <모든 요일의 기록>이라고 있었잖아요. 그 책 읽어보셨는지 궁금해서요.
나 : 아... 그 책 내가 바빠서 못 읽어봤네. 대신 박웅현 작가의 <책은 도끼다>는 조금 읽었지
후배 : 아.. 아직 못 읽어보셨군요. 그 책 형님 글쓰기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드린 건데...
후배 : 형님이 첫 번째 책을 출간하신다면, 그 책이 분명 참고가 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나 : 아 그랬구나... 난 그 책의 저자가 '김민철'이라고 해서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라고 해서 좀 놀라기만 했지.. ㅋㅋ
후배 : 나중에 꼭 보세요... 분명 형님만의 글을 쓸 때, 큰 도움이 될 거예요. 특히 구성을 짜거나 틀을 잡을 때 도움이 될 겁니다.
나 : 알았어! 내 오늘 당장 집에서 다 읽어버려야겠다.!


나는 물론 그날 저녁, 후배가 언급한 책 전부를 읽지는 못 했다. 아니 조금 읽기는 했다. 표지와 프롤로그 정도? 나는 공수표를 남발한 것 같은, 겸연쩍은 미안함이 남아있긴 했지만, 밀린 업무를 제쳐두고 책에게 우선순위를 먼저 부여할 수는 없었다. 대신 다가오는 주말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끝장을 내리라는 다짐을 했다. 결전의 주말이 바로 오늘이었고, 문제의 그 책은 김민철 작가의 <모든 요일의 기록>이었다. 처음에 김민철이라는 이름을 듣고 당연히 남자일 줄 알았다. 이름에 대한 선입견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남자이건, 여자이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나에게 중요한 것은 이 책을 통하여 터득할 글쓰기의 요령과 나아가 감동과 만족이었다.




김민철 작가는 <책은 도끼다><여덟 단어>로 유명한 박웅현 작가와 함께 10년을 같이 일한, 전문 카피라이터다. 카피라이터는 기본적으로 글 쓰는 기본기를 갖춘 사람이다. 김민철 작가는 자신의 기억력이 모자라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록한 것들을 저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을 썼고 책까지 이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김민철 작가는 자연스러운 글쓰기를 위해서 "몸에 기록한다."라고 이야기한다. 몸에 기록하는 방법으로 그녀는 읽고(책), 듣고(음악), 찍고(카메라, 사진, 여행), 배우고(몸), 말하는 것(언어)을 강조한다. 


이 책은 카피라이터의 삶, 그리고 그 직업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인간이 살아온 삶, 그녀가 지극히 개인적으로 버텼던 삶의 굴곡들을 독자와 진솔하게 나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누군가의 삶이 궁금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녀가 업계에서 유명한 박웅현 작가와 한 팀이기에 이 책이 주목을 받은 것일까? 그 연유도 부인하지는 못하겠지만, 책을 세심하게 읽어보면 그녀가 얼마나 다방면에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글쓰기에 진득한 훈련을 받았고, 얼마나 삶에 대한 철학적인 내공이 깊은지 알 수가 있다. 내가 그녀에게 관심의 시선을 건네는 것은 담담히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걸었던 그녀의 매력에 반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성공한 사람일까? 아니면 성공하기 위해서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고 있는 사람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즐거움, 자기만족,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미래를 개척하며 살고 있는 사람일까? 


어느 날 아침, 출근길 버스 창에 걸친 쑥색 커튼을 보고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결심을 하고, 김화영의 <행복의 충격>을 읽고 프랑스로 떠나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을 읽고 회사를 떠나 프랑스로 가겠다는 결심을 버렸다. 그녀는 직장을 때려치우겠다는 결심을, 책을 읽으면서 변화시켰고, 출근이 아무렇지도 않은 평범한 아침을 맞았다.




나의 의무는, 지금, 이곳이다. 내 일상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이 일상을 무력화시켜버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의무이다. - P.75



행복은 지금 이 순간에 얻어지는 것이며, 남에게 배우는 것도 아니며,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 지중해는 허락되지 않음을 책을 통하여 깨닫게 된다.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터전에서 만족과 매력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외부에서도 절망할 뿐임을 경험한다. 그녀는 김화영과 카뮈의 책을 읽고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포기하고 싶었던 일이 갑자기 괜찮아졌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책을 통하여 정신적인 지중해를 접했고 그녀의 마음은 평온해졌다.


중요한 것은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한 한 그곳에 살아남아 버티면서 
멀고 구석진 고장에 서식하는 괴이한 식물들을 가까이에서 관찰"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 P.85



이 책은 성공한 사람에 대한 자서전이자 삶의 기록 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읽은 고전들, 그녀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한 음악들, 카메라에 담은 여행지의 살아있는 순간들, 그녀가 누비고 다녔던 도시의 골목들, 끊임없이 배우고자 했던 그녀의 열정들, 그리고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낸 카피라이터의 삶. 그녀는 자신의 일생의 전반전을 책 한 권에 기록했다. 그리고 그녀가 살았던 삶의 기록을 독자에게 소개한다. 나는 그녀가 역시 프로답다고 말하고 싶다. 내공은 가진 사람은 자신을 낮춰 겸손하게 말한다. 자신의 기억이 짧아서, 자신이 모자라서 배우고 익힌다고 강조하는 그녀의 글을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밴 내공이 무엇인지 나는 공감할 수 있었다. 나는 그녀와 다른 삶을 살았지만, 그녀가 밟은 길과 세계가 궁금했고, 그녀가 책에 기록한 이야기들을 통해 나의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나도 글을 쓰며, 책을 출간하고 싶다며 현실을 떠나며 회피하려 했던, 그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순간에 충실하며 꿈을 잃지 않으며 앞으로 꾸준하게 나아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란 것도 깨달았다. 왜 후배가 나에게 이 책을 선물했는지 어떤 영감이 떠오르는 듯한 벅찬 환희의 감정을 느꼈다. 나만의 아이디어가 떠올라 그것들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고민스러운 밤이다. 김민철 작가님의 개인적인 기록이었지만, 나에게도 기록을 남기고 그 저장된 기억이 누군가에게 밑거름이 될 수 있는 날을 꿈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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