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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08. 2022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은 영광스러울 수 없는가?

평범한 인생 - 카렐 차페크

나는 복잡한 존재다. 무엇이다!라고 정의하기 곤란할 정도로 어떻게 보면 이도 저도 없거나 여기저기 속하는 모호하고 색채 없는 존재라고 가정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단연코 주장할 수 있는 몇 가지 대표적인 특성들은 이런 것들이다.


뜬금없이 우울해지는 자아, 활기가 매우 넘치지만 이유 없이 침울해지기도 하는 자아, 적극적이면서도 동시에 내향적이고 소극적인 자아, 새로운 분야를 두려워하면서도 도전하고 싶어 하는 역설적인 자아, 단호하면서도 무른 자아,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하고 두려워하지만 갑자기 낙관론을 펼치는 자아, 이타적이면서도 이기적인 자아, 분석적이면서도 즉흥적인 결정을 선호하는 자아, 지혜롭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은 자아, 선하면서도 사악한 변태적인 속성을 가진 자아, 악착같이 절약하면서도 물건(책) 구입하는 데는 펑펑(?) 돈을 쓰는 자아, 희망하면서도 미리 좌절해버려 쉽게 포기하는 자아, 겸손하면서도 교만해서 나보다 잘난 인간은 없다고 생각하는 자아, 어제의 선택을 후회하면서도 내일을 대비하지 못하는 자아, 뭐든지 분석하려고 이리저리 헤집어 보지만 어떤 것들은 흐리멍덩하게 흘려보내는 자아, 예민해서 사소한 자극에도 반응하지만 어떤 사건에는 한없이 무덤덤해지는 자아,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맹렬하게 원하지만 때로 현재에 안주하려는 자아, 시, 에세이, 소설, 평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글을 쓸 수 있다고 착각하는 나는 뭔가 재능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해!라고 착각하는 자아.


내 안엔 이런 복합적인 자아가 수두룩하다. 저 중에서 나라는 인간을 대표하는 자아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마도 저 자아들은 저마다 득세하려고 지금도 몸부림을 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마치 지휘자처럼 자아들을 여러 곳에 분산시키고 필요할 때마다 무대 위에 주인공으로 내세우려 한다. 말하자면 조율이 필요하다. 각색이 필요하다.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배역에 적절하게 투입시키는 전략도 필요하다.


하지만, 저것들은 분열하고 분화한다. 무한히 확장하는데 그것의 형태는 우주적으로 광폭하고 무서운 속도로 돌진한다. 그래서 한 인간은 우주야,라고 비유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주보다 더 넓을지도…


내가 이렇게 나의 복잡한 자아들을 자랑삼아 떠벌려봤지만 이렇게 저것들을 나열한 이유는 한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지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당신도 저러한 존재, 자아, 인격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 저 인격은 지금도 새롭게 생성되고 있으며 필요 없으면 금세 사멸하고 만다. 어떤 존재를 부각하고 퇴보시킬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판단에 달려 있다.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



이런 장광설을 늘어놓은 이유는 오늘 완독 한 책 《평범한 인생》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평범한 인생》은 체코의 국민 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소설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나의 자아들을 소개한 것일까? 이 책이 바로 한 인간에 내포된 수없이 많은 자아들, 다중적인 내면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평범한 인생》은 정원을 손질하고 있는 의사에게 포펠이라는 노신사가 방문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노신사는 자신의 친구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의사는 친구가 남긴 자서전 한 권을 받게 되는데, 자서전에 남긴 노인의 삶이 액자식 구성으로 전개된다.


책의 주인공은 자서전 쓰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마치 철도 선로 위의 열차가 굴러가는 것처럼 한 바퀴 순회한다. 어린 시절부터 현재 죽음의 순간에 이르기까지 주인공이 선택한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죽음이 가까워지기 전에, 인생이 어땠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대답은 대화로써 펼쳐진다. 그때 주인공의 자아들이 발현하게 된다. 평범한 자아, 악착같은 자아, 우울한 자아, 시인, 용감한 자아들과 설전을 벌이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은 심각한 내상을 입는다. 자신도 모르던 내적 자아와 만나게 되고 그 자아와 충돌하게 되면서, 인정하고 싶지 않던, 감당할 수 없는 자아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한 인간은 죽음을 앞두게 되면 자서전 따위는 누구나 쓰게 될지도 모른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삶을 보낸 자만이 선택 가능한 게 아니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온 자도 권리를 누릴 수 있다. 그 인간은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며 과거에 선택해서 후회했을 순간을, 선택하지 못해서 실현되지 못한 미래를 마주한다. 그런 경험은 특별한 사람에게 주어진 특권은 아니다. 특권이 아니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도 인생의 개별적인 순간들을 찾고 그릇된 판단을 때로 변호하고 어느 순간마다 득세했던 자기 인격들에게 치열한 대화를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을 단 하나의 인격으로 살아가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런 단순한 삶을 살아가는 자는 단 하나의 신념, 절대 변하지 않을 그것을 진리라고 착각할 것이다. 가장 어리석은 인간이 단 한 권의 책만 읽고 모두 다 안다고 잘난 체하는 인간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인간의 내면, 자아 역시 단 하나만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오직 단 하나의 자아의 결정을 따르는 자야말로 가장 어리석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되는 거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복잡하다. 내면은 외면보다 더 복잡하다. 정의하기 곤란한 수백 만개의 존재들, 자아들, 인격들, 품성들은 개별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의미를 가진다. 그 인격들 덕분에 우리는 진정한 나가 없어도 나라는 인간을 세상에 진출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소설은 한 인간을 재발견하게 만든다. 주인공의 삶을 이해하면서 우린 마치 이 소설 안에 거울이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나라는 인간을 대입시켜 보고 맞춰 본다. 그리하여 나라는 단 한 명의 인간은 존재적으로 거의 무한에 가까운 숫자로 살아있다는 사실, 그 광대한 우주적인 생명의 공간으로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까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곳으로 사유가 확장되는 것이다.


역자가 붙인 해설의 제목처럼 ‘세상은 내가 아닌 우리가 있어 좀 더 따듯하다.’ - 따뜻이 아니라 따듯이다. - 즉 나는 존재론적으로도 하나가 아닌 다수에 해당되고 그 다수는 다른 우리의 다수로 합일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책 속의 문장들


죽음의 느낌이 야기하던 놀라움은 익숙함과 친근함에서 느껴지는 안도감으로 옮겨 갔다. 이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잠이나 휴식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대상으로 이름 붙이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이미 그 길을 지나간 친구들을 만나길 희망하면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감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가 보다.


어쩌면 누구에게나 자신의 삶 속에서 뭔가 특이하고, 중요하고, 아주 극적인 면을 보고 싶어 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자신이 경험한 사건에 주목해 주기를 바라고, 그로써 더 많은 관심과 경탄의 대상이 되기를 기대하는가 보다.


결국 인생의 항로는 크게 보아 두 개의 힘으로 진행되며, 습관과 우연이 그것이다.


더 고상한 식탁에 앉는 더 높은 신사들이 우리 위에 있음을 알게 되었지. 우리는 다시 작고 평범한 인간이자 뛰어날 수 없는 팔자가 되는 거야.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며, 그중에서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는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서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실들에서 여러 가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 각자는 세대에서 세대를 통해 불어나는 사람들의 총합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끝없는 자아의 분화가 두려워 우리는 분화에서 벗어나길 원하고, 우리를 단순하게 해줄 어떤 집단 자아를 받아들이는 건지도 모른다.




노션 책 리뷰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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