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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Nov 07. 2022

오늘부터 고독사를 시작하시겠습니까?

고독사 워크숍 - 박지영



짧은 평(고독사 워크숍, 박지영, 민음사)


‘고독사’. 공중에 농약을 분사하듯, 하지만 내 손이 아닌 손 모양처럼 생긴 어느 부위에서 갑자기.


어쩌면 목에 걸려버린 작지만 뾰족한 가시, 나는 그 미세하며 별것 아닌 가시가 내 온몸 혈관 어딘가를 들쑤시고 파헤치고 다니는 광경을 몽상했다. 순전히 고독사라는 단어가 멀쩡하고도 하릴없는 삶을 어이없는 절단의 과정으로 몰아간 것이다. 허무하고 비참한 죽음을 연상하게 만드는 그러니까 묵직하고도 원래의 고독보다 더 낮고 깐깐한 비중을 자랑하는 고독이라는 단어가 공기를 묵직하게 잠식해나갔다. 마치 죽음의 그림자처럼 서서히 모든 순간을 깊이 잠재워버릴 듯이. 영원한 무의 세계로.


고독사, 다시 한번 금지어 같은 단어를 공기 중에 몰래 살포했다. 나는 그 작고도 포괄적인 의미를 담은 단어에 급속도로 융해되어 갔다. 나는 사라져갈 듯했다.


고독사 워크숍은 은밀한 이벤트다. 소리 없이 전파되는 바이러스처럼 그것은 내밀하게 사람에게서 다시 사람으로 소문처럼 퍼져나간다. 고독사 워크숍은 ‘심야코인세탁소’라는 곳에서 보내온 의문의 초대장으로부터 시작된다. 어쩌면 모두가 장난처럼 들린다. 심야코인세탁소도 그곳에서 펼쳐지는 죽음이 지향하는 마지막쇼도 모두 농담 같다. 하지만 농담 같은 죽음은 우리에게 기이하지만 현실이다. 하지만 조금은 먼, 아니 아주 멀고도 먼 현실이다. 그 현실은 하지만 상대적이다. 당신에게는 어쩌면 50년 후가 되겠지만 또 다른 당신에겐 내일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죽음이 가진 냉혹한 이미지다.


고독사 워크숍은 필연적인 죽음을 혼자 맞게 될 외로운 인간들, 고독사 예비군들에게 근거 없는 희망보다는 죽음을 겸허하게 받아들이자는 취지로, 죽음에 고요히 맞설 사람들에게 고독한 죽음이 아닌 함께 하는 죽음을 위해 마련되었다고 한다. 개인에게 최적화된 고독사의 형태를 찾아준다고 박지영 작가는 책에서 안내한다. 하지만 그 죽음은 개인적인 것이 아닌 공동체와 함께 함으로써 연대하는 힘을 갖는다. 그렇게 되면 죽음은 외롭지 않게 될까? 고독사는 고독하지 않은 죽음이 되려나. 아예 죽음이 사라지게 되려나, 죽음이 죽음의 의미를 잃게 되려나.


고독사 워크숍은 죽음을 추구하지 않는다. 죽음을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시키지도 않는다. 죽음은 죽음의 흐물흐물한 모양으로써 애도하지 않고 애써 거부할 대상도 아니다. 죽음은 모두에게 공통적이며 치명적이니까. 어차피 죽음은 고독하건 그렇지 않건 모두에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에. 그럼에도 나는 고독할 여유가 없어, 난 치열하고 오늘처럼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잖아, 그런 고독사 워크숍 따위에는 관심조차 없다고,라고 말할지도.


그러나 죽음은 엄연히 옆에서 내 어깨에 손을 거친다. 그리고 흔들어댄다. 좌우로 앞뒤로 반복해서 강렬한 자극을 태클을 걸어온다. 그래, 삶은 흔들거린다. 시간의 오르락내리락, 성공과 실패, 모든 순간의 밀물과 썰물, 감정의 낙차, 기대와 절망, 생과 사, 삶은 언제나 위태롭게 죽음에게 흔들려왔다. 나는 그 어디엔가 서 있다. 그리고 계속 쏠려있다. 하루가 지나가고 그렇게 24시간이 흘러서, 야심한 자정이 찾아오면 죽음은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잔인한 얼굴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고독사 워크숍》은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서 등단한 박지영 작가가 썼다. 3쇄가 인쇄된 시점에서 이 책을 구입했다. 어쩌면 제목에 이끌려서, 자석 같은 죽음의 속성에 강하게 유혹당해서 이 책을 선택했다. 죽음이란 것은 언제나 숙명적인 의미를 지녔다. 외면한다고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나는 침착하게 죽음을 잠시나마 체험하기 위해 - 그렇다고 임사체험을 하겠다거나, 오늘을 기일로 삼겠다는 거는 아니고 - 호기심 탓에 이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정이현 소설가의 말처럼 나는 한 번에,라고 쓰고 싶지만 두 번에 나눠서 이 책을 띄엄띄엄 하지만 짧은 시간에 읽었다. 그리고 책을 차분하게 덮고 죽어있는 죽음의 맛인지, 살아있는 죽음의 맛인지, 아무튼 그 달고도 쓰기도 한 맛을 봤다. 


죽음이란? 노란 포스트잇에 쓰여 있다. 이건 비밀이다.




책 속의 한 문장


내게만 주어지는 행운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평한 불행과 재난에 안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강제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아주 작은 비겁함과 다정함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멈추지 않게 도와준다면 우리는 더 비겁해지고 더 다정해져야 합니다. 그래서 고독사 워크숍이 필요한 겁니다.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할 때조차도 1인칭으로 쓰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으로부터도 그렇게 소외된 사람들이 고독사하게 된다는 증거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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