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대생의 심야서재 Dec 31. 2022

공대생의 심야서재의 2022년 결산

2023년의 새로운 캐릭터 : 다 정한 책식선생

2022년 12월에 들인 슬라이딩 책장


2022년이 끝나가고 있다. 저물어가고 있다. 막을 내리고 있다. 비슷한 뜻을 함유한 문장들이지만 겉보기에는 다소 다르다. 하지만 2022년이 끝난다는 사실은 완벽하게 분명하다. 이제 몇 시간 채 남지 않았다. 4시간? 어쩌면 3시간? 남은 시간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2022년이 곧 사라진다는 게 더 중요하니까.


한 해의 커다란 마감을 앞두고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왜 글을 써? 그래 2022년이라는 항해가 끝나가고 있으니까, 뭔가 쓰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딱히 쓸 거리는 없어서 아무 의미도 없는 그저 문단의 형태만 갖춘, 분량만 확보한 그런 글을 쓴다.


올해를 돌아보면 무엇을 열심히 하고 살았단 것 같긴 하다. 한때는 두려움에 빠졌고 어떤 때는 조마조마했지만 언제나 거의 항상 나는 바빴다. 이유 없이 바빴고 목적이 있는 상태에서 바쁘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직장이 아닌 곳에서도 늘 어딘가에 존재해야 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아마도 지구 한 바퀴는 돌았을지도 모른다. 물론 비유적으로 그렇다는 거다. 내추럴하게 운동이란 지독하게도 혐오하는 내가 뛰어다녔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냥 늘 뛰어다니는 사람처럼 심장이 바삐 뛰었다는 걸로 받아들이자.


왜 2022년이 채, 네 시간을 남겨두지 않은 이런 시점에 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털썩 주저앉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그 이유조차 글을 쓰며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차근차근 생각과 쓰기를 동시에 병행하면서 지나쳐버린 일정이라는 걸 왼쪽 창에 띄워놓고 더듬어보면 무엇이든 발굴되지 않을까.


2022년에는 뜻하지 않게, 우연하게 책을 출간했다. 일생 동안 총 세 번의 기획 출간이라는 기회를 얻었으니 나에겐 거의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 책이란 게 사실 내가 원하는 형태의 글쓰기가 아니었다는 사실에 불만족스러움은 있었지만, 어느 일에나 불만족과 불충분은 늘 따라다니는 일이니 실망할 필요도, 무가치한 것으로 판단할 이유는 없다.


출간 덕분에 나는 여러 곳에서 강의할 자격을 취득했고 이러닝 플랫폼(커넥트 밸류, MKYU, 휴넷)에 영상이 론칭되기도 했다. 수익적으로도 나쁘지 않았다. 책의 인세, 강의 인세와 강의료로 적잖은 돈이 입금됐다. 적잖은,이라는 형용사에 포함된 금액은 물론 상대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직장 외에 어딘가에서 수익을 거둔다는 것, 직장인 몇 달 치의 월급을 벌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워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다고 자랑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는 2022년에 큰 깨달음을 얻은 건 아니지만, 변곡점을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물론 인생을 100세라는 기준에 맞춰서 현재 중간쯤에 해당하는 반환점을 지난다는, 말하자면 나이 측면을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여기서 의미하는 변곡점이란 심적인 변화를 뜻한다. 그 변화는 문학에 대한 나의 태도다. 그래, 문학이다. 나는 문학을 이야기하려고 2022년의 막을 이야기했고, 이런저런 서론을 여러 문단에 걸쳐 장황하게 할애했다.


2022년의 변화, 그 변화의 골자는 바로 문학에서 찾고 싶다. 나는 올여름까지 주로 자기 계발서를 읽었다. 생산성, 툴, 혁신, 아이디어, 생각, 이런 주제를 두고 닥치는 대로, 그렇다고 한 달에 수십 권씩 그런 분야의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노션 책 출간과 더불어 자기 계발 관련 주제를 내 인생의 주요 방향으로 설정해두고 거의 6개월 이상을 오직 그 길만을 생각하며 미친 듯이 달렸다. 그 무리한 강행군 탓에 몸과 마음에 이상하고 불쾌하고 내 것이 아닌 듯한 기묘한 감정이 찾아왔고, 그것은 번아웃? 지겨움, 허무함, 무력함, 이런 다양한 형태의 것들로 나타났는데, 결국 나는 자의반, 타의 반 자기 계발에 지독하게 탐닉하는 마약 중독 같은 증세를 버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나는 문학의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마도 나는 나로부터 나 자신이라는 주제로부터 멀리멀리 달아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곳엔 내가 있지 않았고 오직 나와 현격히 다른 타인들만이 존재할 뿐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바다에 깊이 뛰어들었다. 아무것도 없이, 오직 책 한 권을 가슴에 품고,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의심을 버리고, 믿음은 책 한 권의 가름끈이라는 것에 매달아 두고, 정처 없이, 어디론가 유영하듯이 나를 바다 가운데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그 시점이 7월이었고 시작점엔 《앵무새 죽이기》가 있었다.


그 책을 시작으로 한 달에 거의 30권 이상의 문학서를 읽었다. 대부분 고전 소설이었고 가끔은 최근에 출간된 소설도 읽었다. 물론 자기 계발서는 다 버려버렸다. 그딴 책들은 절대 읽지 않기로, 비슷한 분야의 책을 한 권만 읽으면 됐지, 비슷한 말들을 반복하는 트렌디한 책들은 끊어버리기로 결심한 것이다. 7월부터 읽은 책들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 《인간실격》, 《픽션들》, 《장미의 이름(상, 하)》, 《무진기행》, 《악의 꽃》, 《여름밤 열시 반》,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올리버 트위스트》, 《호밀밭의 파수꾼》,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태양의 황금 사과》, 《너무 시끄러운 고독》, 《내 이름은 빨강 1,2》, 《좀머 씨 이야기》, 《연애 소설 읽는 노인》, 《마틴 에덴》, 《울분》, 《클로드의 개》, 《올랜도》, 《월터 미티의 은밀한 생활》, 《플래너리 오코너》, 《포트노이의 불평》, 《사라지지 않는다》, 《시월의 저택》 (중략) ... 《아주 편안한 죽음》 뭐 대충 이런 책들이다. 6개월 동안 문학서만 200여권 가까이 읽었다. 물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시간을 쪼개가며 읽었다. (사장님 이 글 읽고 오해하지 마소서)


시몬 드 보부아르, 뱅자맹 콩스탕, 래이 브래디버리, 레이먼드 카버, 마르셀 프루스트, 오스카 와일드, 무라카미 하루키, 다자이 오사무, 에라스무스, 존 버거, 존 치버, 미셀 트루니에, 아니 에르노, 버지니아 울프, 프리드리히 토어베르크, 도스토 옙스키, 기억나는 작가들의 이름이다. 회사 동료들의 이름도 가끔 잊는데, 작가들의 이름은 절대 잊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왜 변화의 물결에 몸을 실은 걸까? 아마도 내가 원한 건 다양성, 낯섦, 깊음, 정체성, 의미, 무엇보다 결정되지 않음(불확실)에 있지 않았을까. 단순하고 명료하고 분명하게 꼬집어 주는 단편하고 재미없는 지식 같은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축적되고 체화되고 그러다 어느 순간에 발화되는 그런 불상의 지점을 획득하고 싶음이 아니었을까,라고 나는 판단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 자체가 없다는 데 있다. 문학을 읽는 건 순전한 재미, 좋아함 때문이다. 작가에게는 저마다의 개성이 있고 그들의 이야기는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문학엔 수없이 많은 인간들이 존재했고 내성적인 나로서는 굳이 문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편안하게 내 방에 앉아 여러 인물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구경하고, 그들의 마음과 행동을 따라가고, 격하게 공감하고, 행동에 불만족스러움을 나타내고, 반항심을 느끼고, 응원하고, 결정에 반대하고, 주장에 편승하기도 한, 마치 내 인격이 정해지지 않은 방향으로, 특별히 규정하지 않아도, 형태를 갖추거나, 형식이 없어도 상관없는, 그런 자유의 세계, 궁극적으로는 시간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가 바로 문학을 동경하고 무작정 뛰어든 이유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니까 2022년은 문학에 빠진 해다. 직장이 사라진다고 해도, 말썽 많은 이 나라의 정치에 공백이 생긴다 해도, 경제가 파탄된다고 해도, 나는 책을, 아니 문학을 읽을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도서관과 서점을 밥 먹듯, 아니 밥 먹는 횟수 그 이상으로 그곳을 찾아다닌다. 


그래서 무엇을 찾았냐고? 무엇을 찾을 거냐고?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목적은 없다. 나는 무엇을 찾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그곳에 가면, 그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러니 나는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찾을 수밖에 없다. 수없이 많은 것들이 나에게 당도하는데, 그것들 중에서 내게 맞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면 될 일이 아닌가.


2022년은 책과 함께, 그중에서도 문학과 함께 살았으니 2023년도 그렇게 살면 된다. 살다 보면, 읽다 보면, 의미 같은 것들은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찾아와 줄 테니까. 여러 우연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혀든 것처럼 문학은 나에게 우연으로 범벅된 의미들을 조합해 줄 테니까. 열심히 읽자고. 자, 문학의 세계를 향해, 닻을 올리고 출항에 나서 보자.


2022년 공심(다 정한 책식선생 : 문학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하고 새로 지은 닉네임)이 읽은 책들이 궁금한 사람들은 아래 링크를 참조하자.


https://www.notion.so/wordmaster/0f68d5893a2043179ab181e5669acf37




매거진의 이전글 지난주의 나는 외로웠다. 이번주의 나도 가끔 그렇지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