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컴퓨터를 개발한 수학자, 과학자, 해커, 인공지능 전문가
전산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유명한 '앨런 튜링'은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일반인에게도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인류 최초의 컴퓨터를 발명한 위인으로 컴퓨터의 아버지라 불리어도 마땅하다. 전산학 개론에 등장하는 '폰 노이만' - 그는 앨런 튜링의 스승이다. - 보다 실제로 더 뛰어났다고 전해진다.
그는 인류 최초의 컴퓨터를 디자인했던 천재 수학자이자, 과학자, 해커, 인공지능 등 오늘날 컴퓨터와 관련된 모든 학문과 기술의 선구자였다. 컴퓨터와 연관된 최초라는 수식어는 모두 그에게 해당된다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내가 전산학을 배울 때는, 인류 최초의 컴퓨터 형태의 머신이 에니악(ENIAC)이라고 잘못 알려진 시절도 있었다. 물론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인류 최초의 컴퓨터를 발명한 사람은 분명히 앨런 튜링이 맞다. 나중에 영화를 접하면서 실제 주인공의 위대한 업적과 삶이 은폐되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고, 젊은 나이에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에 두 번째로 놀라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군이 독일에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기여는 튜링이 발명한 암호 해독 머신 때문이었다. 영국은 오랫동안 그 사실을 비밀에 붙였다. 왜 영국은 충분히 자랑하고도 남을만한 역사적인 사실을 감춘 것일까? 단지 이유는 그가 동성 연애자라는 사실 하나 때문이었다.
튜링은 독일의 난공불락의 통신 암호 체계인 'Enigma(에니그마)'를 무력화시킨 'The Bombe(봄브)'를 개발했다. 에니그마는 나치 독일이 군 기밀을 암호화시키기 위하여 발명한 강력한 암호 체계이다. 연합군은 에니그마 암호 해독에 매번 실패하여 고전을 면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튜링이 고안한 머신인 '봄브' 덕분에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다.
독일은 연합군이 자신의 암호 체계를 해독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한다. 이 세상에 뚫지 못할 암호 체계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해독 시간이 얼마나 경과될지 인간의 힘으로 예측하기가 곤란할 뿐. 당시에는 절대 난공불락의 대상이라 믿어졌던, 인간의 계산 능력으로 도저히 해독할 수 없다고 판단되던 암호를 머신의 힘을 빌어 해독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시켜버린 엄청난 사건이었다. 독일은 전쟁 종료 전까지 영국이 자신의 암호를 해독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 독일 스스로도 너무나 강력하여 아무도 뚫을 수 없다고 자평했던 '에니그마' 때문에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셈이라 할 수 있다.
에니그마를 깨뜨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계산 시간이 필요했다. 인간의 능력으로 도저히 계산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었다. 튜링은 인간이 직접 계산할 수 있는 것은 물리적, 시간적 한계가 존재하므로, 머신의 힘을 빌려 계산을 해야 한다는 논리를 세웠다. 영화에서도 나타나지만, 모두들 그의 생각을 비웃었다. - 심지어 같이 연구하는 동료들까지도... - 그리고 재정 지원을 하는 영국 정부조차도 그의 의견을 100% 신뢰하지 않았다. 당시에는 아무도 그의 주장을 믿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가 고안한 머신을 통해서 에니그마의 암호 체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그가 개발한 최초의 머신은 이렇게 훗날 모든 컴퓨터 원리의 시초가 되었다.
그의 공로로 1,400만 명 이상의 목숨을 구한 것이다.
아래 사진은 실제 봄브 머신이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의 종전에 있어서 1등 공신의 활약을 했었던 튜링은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자살하고 말았다. 나는 그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왜? 전쟁영웅의 대접을 받아 마땅한 그가 왜 자살을? 정말 궁금했다. 튜링은 사실 동성 연애자였다고 한다. - 당시에는 동성연애가 금기시되었다. - 동성 연애자로 밝혀진 후, 그는 영국 사회에서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다. 그리고 동성 연애자로서 삶을 살기 위하여, 강제적인 화학적 거세 - 여성 호르몬 주사를 맞았다고 한다. - 를 강요당하고 만다. 결국 동성 연애자라는 낙인은 그를 죽음으로 내몰게 한다. 그가 가진 명석한 두뇌와 뛰어난 능력조차 사회가 씌운 동성애라는 낙인의 굴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국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끊고, 죽음을 통해서 명예를 되찾는 방법뿐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그의 명예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천재였다. 악명 높은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를 뚫은 인류 최초의 컴퓨터 머신을 발명했던 그였다. 인류 최초의 해커였으며, 범죄자 취급을 받는 동성 연애자 이기도 했다. 스승이었던 폰 노이만은 제자 - 앨런 튜링 - 가 고안한 '추상적인 모델을 통한 계산 방식'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스티브 잡스가 특별히 존경한 과학자였다. 비공식적인 이야기로 전해지는 사실이지만, 애플의 로고가 튜링의 죽음과 관련하여 그를 기린 것이라는 정확하지 않은 이야기도 있다. 즉 "반쯤 베어 문 사과 로고"와 그가 죽음을 택했던 마지막 방법인 '청산가리가 스며있던 사과'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살아생전에 공식적으로 이를 부인한 바 있다. 물론 애플과 튜링을 연결하고 싶은 사람들이 지어냈다는 것이 정설이긴 하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사회가 나에게 여자가 되라고 강요했으므로, 가장 여성스러운 방법으로 죽음을 맞는다.'
그의 유서에 위와 같이 쓰여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마치 동화 속에서 보았던 백설공주의 죽음과 비슷하다. 치욕스러운 화학적인 거세를 당한, 호르몬 주사로 인하여 여성처럼 가슴이 나오게 된다. 목소리도 여성처럼 변하게 되는 끔찍한 경험을 당한다. 동성 연애자라는 모멸감과 수모를 당하면서 고통을 감내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나머지 남은 삶에 대한 의욕을 상실했을 것이다. 그에게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튜링은 인공 지능이라는 최초의 학문을 세웠다. 그가 내놓은 논문(1950, 철학 학술지 '마인드'에 게재한 논문 '계산 기계와 지능')은 현재의 튜링 테스트를 기초로 하게 되었다. 튜링 테스트는 머신이 만약 인간처럼 대화할 수 있다면, 인공 지능을 가지고 있다고 판별한다는 논리로 시작되었다. 기계와 인간, 심판이 참여하여, 심판은 인간과 기계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하고 서로 채팅을 통하여 대화를 주고받도록 한다. 심판은 누가 인간이고 누가 기계인지를 판단하게 되는 원리다.
2014년도에 이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놀라운 인공지능 컴퓨터가 있다. 유진(Eugene)이라는 이름을 가진, 인공 지능 컴퓨터는 자신을 13세 소년인 것처럼 속이고 대화를 나누었고, 심판들의 33% 이상은 인공지능 컴퓨터가 인간이라는 확신을 했다. 물론 33%라는 것이 다소 낮은 수치이긴 하지만, 최초로 통과했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각에서는 오래전, 인공 지능 이론이 제대로 정립되기 이전에 튜링이 세운 테스트 방법으로는, 정확한 인공 지능의 판별이 어렵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알파고가 인간을 이기는 세상에, 채팅 봇을 통하여 인공지능을 판별하는 방법이 신빙성이 있을지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단순한 채팅 방법이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대화를 통한 튜링 테스트는 영화 <엑스 마키나>에서 사실적으로 등장한다.
학교에서 사회성이 부족하여 남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하는 소년이었다. 영화에서도 나오지만 문제아 취급을 당했던 튜링을 있는 그대로 받아준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가 돌연 사고로 사망하게 되고, 그 사건으로 인하여 튜링은 심리적인 내상을 입게 된다. 친구 이상으로 사랑했고 절실하게 의지했던 친구였다. 그 친구가 튜링에게 항상 했던 말은 '가끔은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내니깐' 이었다. 이 말은 튜링의 인생에 많은 변화를 일으켰음이 틀림없다.
그의 죽음이 지금의 컴퓨터 계의 노벨상인 ACM 튜링상(ACM Turing Award)을 낳게 하였고, 이 상은 컴퓨터 과학에 대한 지대한 공헌을 남긴 사람을 기념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이라고 하지만, 튜링상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중국도 배출한 상을 아직까지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는 과연 배출이 가능할까?
그의 일대기는,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로 제작되었고, 영화의 제목은 컴퓨터가 사람의 사고방식을 모방한다는 의미로 튜링 테스트를 가리킨다고 한다.
그에 관한 숨겨진 사실 중 재미있는 것은 그가 조정이라는 스포츠를 즐겼고, 러닝을 좋아했다는 것이다. 특히 마라톤에 참여한 경력도 있다.
그는 일생에 자신을 히피라 생각했고, 히피 정신을 존중했다고 한다.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었다고 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스티브 잡스가 앨런 튜링을 존경한 의미로 평상시 청바지와 티셔츠를 따라 입은 것이 아닐까?
천재라고 불렸지만 실제 그의 학교에서의 성적은 좋지 않았다고 한다.
물리학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심취하여 노트에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적어놓았다고 전해진다.
100년이 지나서야 자신의 명예를 제대로 회복한 앨런 튜링을 기린다. 그리고 그의 삶을 통하여 개발자로서의 직업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본다. 글쓰기에 심취한 나머지 스스로 홀대했던 개발자의 삶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나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현재의 욕망에 충실할 뿐이다.
참고로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것을 다시 한번 퇴고한 것이다. 현재까지도 네이버 검색 - 앨런 튜링으로 검색 시 - 상위에 노출되고 있는 의미 있는 포스팅이기도 하다. 과거에 작성했던 부끄러운 글을 두고 볼 수 없어, 다시 한번 갈고 다듬어 브런치에 포스팅을 하게 되었다. 이번 글을 작성하는 계기로 다시 한번 개발자로서의 삶, 그리고 작가로서의 삶을 성찰할 수 있게 되었다.
앨런 튜링에 관한 보다 자세한 정보는 나무 위키에서 확인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