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뒤편의 기묘한 감정 독백
글쓰기엔 무언가가 묻어 있다. 잊고 지내던 누군가의 모습, 수줍은 설렘 같은 것이. 그 무언가는 정보가 될 수도 나의 오래된 감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정보는 그렇다 치자, 나는 왜 감정을 애써 글 속에 심으려는 걸까. 아무도 모르는 사람에게 공감을 얻고 싶어서일까, 값싼 동정을 받고 싶어서일까. 글쎄, 내가 타인이 될 수 없으므로 내 글이 그들에게 무엇이 될 것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모니터 화면엔 어제 쓰다 만 원고가 놓여 있다. 이것은 내가 아닌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하는 숙제 같다. 나는 언제나(라고 하지만 극히 예외적으로 글을 쓸 때만) 나의 생각과 감정을 활자라는 수단으로 남에게 보여준다. 보여준다니 블로그 체험단으로 날아온 공짜 연극 티켓처럼 느껴진다. 글 쓰는 사람은 그렇다면 연극? 쇼 비즈니스를 하는 걸까? 하지만 무대 연출은 내 전공이 아니다. 조명은 어느 정도 밝기로 해야 하고, 배경음악은 어떤 곡을 깔아야 할지, 그런 건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빈 화면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글쎼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는 사람은 세상에 없을지도. 세상 사람이 모두 나 같다고 생각하는 건, 내 그릇 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방증이 아닌가. 그릇을 깨뜨리든 그릇 바깥으로 탈출하든 나는 무엇이든 실행해야 한다. 아무튼 나는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 내 생각을 혹은 견해를 타인에게 전달하고 싶은.
꽤 오래전이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었다. 글쓰기 책은 그게 처음이었다. 논리적으로 써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 주장에는 근거가 필요하다, 근거 없는 주장은 개인의 취향일 뿐이기 때문이다, 뭐 대충 그런 이야기였다.
결국 설득의 문제란 말인가? 최종 결론은 결국 설득으로 치닫는다. 내가 지금 고민하는 감정이든 아내에게 숱하게 듣는 말인 "당신은 너무 이성적이야"처럼, 모든 문제는 설득에서 나온다는 거다. 그래, 아내의 말에 따르자면 나는 꽤 이성적인 인간인 것 같다. 아내의 귀에 들리는 내 모든 말은 논리로 중무장하고 있었나 보다. 그런데 왜 아내는 설득이 안될까? 왜 나는 그토록 이성적인데, 늘 도리어 아내의 감정에 굴복하고 마는 걸까.
차라리 'Earth Wind and Fire'의 'September'나 듣자. 음악 듣는 일이 글 쓰는 일보다 훨씬 재미있고 쉬운 일 같다. 볼륨을 낮추자 방 안은 다시 고독해졌다.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만 의미 없이 꼼지락거렸다.
https://youtu.be/WadipGcTgF0?si=G_sbQ9GI6kWqICbN
Ba-dee-ya, dee-ya, dee-ya
Ba-dee-ya, dee-ya, dee-ya
Ba-dee-ya, dee-ya, dee-ya, dee-ya!
Ba-dee-ya가 도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모리스 화이트는 "누가 신경이나 쓰냐?"라고 대답했다. 그래 감정이란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설득이란 대체 무슨 뜻이란 말인가. 나도 모르는 내 감정을 어떻게 완벽하게 글로 전달할 수 있겠는가. 그냥 그루브나 타고 말 것을.
다시, 이야기로 돌아오자. 나는 타인을 설득하기 위해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무엇을 설득하지? 유시민 선생이 그토록 강조하던 중심 주제에서 그만 벗어나 길을 잃어버린 기분이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었을까. 나는 어느 지점에 서 있었을까. 그곳으로 돌아갈 방법은 과연 있을까.
아내를 다시 언급할 수밖에 없다. 결코 아내를 비난할 의도는 없다.(이 글을 아내가 볼지도 모르니 유의하자.) 아내는 감정을 곧잘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이것은 물론 내가 내린 가설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성적인 인간인 내가 아내의 감정호소에 넘어가는 걸 보면 감정은 분명 이성보다 강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그래, 아내는 언제나 설명이 아닌 몸의 언어로 보여준다. 의도적으로 보여주기가 아내의 글쓰기, 아니 몸 쓰기의 핵심이다.
"나 당신 때문에 너무 화가 나. 짜증 나 미치겠어. 게다가 슬퍼서 온몸이 부서져 내릴 것 같다고"
나는 이 한 마디에 허물어진다. 아내의 얼굴은 깨인 유리컵처럼 산산조각 나고 나는 그 속에 스며 있던 축축한 물기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현실에서 감정의 현현을 목격한다. 감정이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작가로서 통찰하는 것이다. 감정은 이성의 창구를 통해서 전달된다고 믿었는데, 사실은 감정이 이성을 상대로 채찍질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나는 가만히 글 쓰는 일을 잠시 멈추고 마음속에서 설계도를 그린다.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얼핏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무심하게 내 감정, 아니 이 글에 어떤 감정을 담아 전달해야 할 것인지 연필로 스케치를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하루키는 감정을 무심하게 대한다. 감정 따위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태도다. 굳이 감정을 유치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좋다, 슬프다, 기쁘다, 처럼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그는 소설가답게 다양한 변주를 시도한다. 구어적인 표현을 쓰며 친구에게 대화하듯 편안함을 주고, 일상에서 발견한 사소한 사건에 의미를 대입한다. 이를 테면 티셔츠 수집, 길가에서 발견한 고양이의 묘사, 레코드판 수집, 등들 자신만의 시선에 담아낸다. 그곳엔 유머가 있고 위트가 있다. 종종 자기 자신을 비하하거나 아이러니한 상황을 건조하게 표현하는 것이 그의 문체의 특징이다.
하루키는 대상을 담담하게 관찰한다. 자신이 쓰지만 그곳엔 자신이 없다. 오직 작가와 대상 간의 거리감만이 존재할 뿐이다. 느끼는 것은 그 글을 읽는 독자에게 있다. 독자는 글을 읽으며 의미를 스스로 곱씹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니까 그 과정에서 독자는 감정을 스스로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관찰하는 대상과의 거리를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을 느낄 수 있다니 글 쓰는 사람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가치가 아닌가. 하루키는 이 모든 상황을 담담하고 건조하게 다룬다. 그러나 거기에는 시니컬한 유머와 엉뚱한 과장이 있다.
게다가 하루키의 글은 늘어지지 않는다. 간결한 것이 그의 특징이다. 간결함은 리듬을 만든다. 물론 간결함만 존재한다면 그의 글은 무미건조할 것이다. 거기에는 짧은 문장과 긴 문장 간의 리듬이 있다. 그것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특유의 고조가 존재하는 것이다.
한참 동안 빈 화면과 씨름하다 잠시 커피를 내리러 부엌으로 갔다. 그런데 냉장고 문에 붙여둔 메모지가 말을 걸었다. 아내의 환청이 들리는 듯하다. '마트에서 페이장 브레통 버터 퇴근 길에 사오기' ‘버터’와 '마트'라는 단어가 오늘따라 유난히 철학적으로 다가온다.
결국, 글쓰기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September'의 알 수 없는 그루브처럼, 영원히 그 의미를 찾아 헤매는 일. 어쩌면 아내는 처음부터 그 정답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모니터 앞에서 '버터'와 '마트'라는 글자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아래 하루키 프롬프트에 이 글의 분석을 맡겨보자.
"제가 작성한 아래 글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글쓰기 스타일을 얼마나 잘 담아내고 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해 주시길 요청합니다. 이전에 우리가 논의했던 하루키 스타일의 주요 특징들을 평가 기준으로 삼아, 각 항목별 유사점과 차이점, 그리고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제언(가능하다면 수정 예시 포함)을 받고 싶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스타일 분석 기준 및 요청 사항]
다음 각 항목을 기준으로 위 글을 면밀히 검토하고 답변해 주십시오.
관찰 vs. 판단의 균형:
이 글은 대상이나 상황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화자의 주관적인 생각, 감정, 혹은 직접적인 설명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까? 독자에게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여지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나요?
'가설'로서의 이야기 또는 독창적 사유:
하루키가 종종 보여주듯, 단정적인 결론보다는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가설'을 제시하거나, 평범한 소재로부터 독특하고 개성적인 생각이나 철학('굴튀김 이론'처럼)을 이끌어내려는 시도가 글에서 엿보이나요?
목소리(Voice)와 말투(Tone):
글의 전반적인 목소리와 말투가 하루키 특유의 1인칭 시점에서 나타나는 담담하고 건조한 듯하면서도, 그 안에 유머나 슬픔, 혹은 어떤 정서가 미묘하게 배어 나오는 혼잣말 같은 느낌을 얼마나 잘 살리고 있습니까?
일상 속 비일상성 및 미묘한 유머:
평범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미묘하게 어긋나거나 살짝 기묘한 분위기를 포착하여 그려내고 있습니까? 글 속에 하루키적인 아이러니나 시니컬하면서도 위트 있는 유머 코드가 자연스럽게 녹아 있나요?
어휘 선택과 문장 스타일:
하루키처럼 쉽고 평이한 단어를 사용하면서도 그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때로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어휘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문장의 길이(짧은 문장과 긴 문장의 리듬감 있는 교차 등), 간결함, 그리고 접속사나 부사의 활용 방식이 하루키의 문체와 얼마나 유사한가요?
비유와 은유의 활용:
글에 사용된 비유나 은유가 하루키의 작품에서처럼 일상적인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신선하고, 대상의 본질을 정확히 짚어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까? 아니면 다소 평범하거나 설명을 위한 비유에 그치고 있나요?
감각적 묘사와 디테일의 힘:
음식, 음악(특히 재즈나 클래식), 특정 시대의 풍경, 인물의 사소한 버릇이나 옷차림, 혹은 주변의 특정 사물 등에 대한 하루키 특유의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묘사가 글 속에 잘 살아 있습니까?
소재 선택과 주제 의식의 접근 방식:
글에서 다루는 소재가 하루키가 자주 탐구하는 주제들(예: 상실, 고독, 기억, 정체성 탐색, 일상의 균열, 우연한 만남과 기묘한 사건 등)과 어떤 식으로든 맞닿아 있습니까? 주제를 직접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이야기나 상황을 통해 은근하게 독자에게 전달하려는 경향이 보이나요?
결말 처리와 여운:
글의 마무리가 명확한 해답이나 교훈을 제시하기보다는,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거나 어떤 감정적 여운을 남기는 하루키 스타일의 특징을 얼마나 잘 반영하고 있습니까?
'하루키적' 모티프 및 장치의 활용도:
음악, 음식, 술(특히 맥주나 위스키), 고양이, 달리기, 우물, 도서관, 정체불명의 전화, 독특한 이름을 가진 인물, 우연과 필연의 교차 등 하루키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나 장치가 이 글에도 사용되었다면, 그것이 얼마나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글의 주제나 분위기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습니까? 단순히 피상적인 흉내에 그치지는 않았는지 평가해 주십시오.
[종합 평가 및 구체적인 제언 요청]
위 개별 항목 분석을 바탕으로, 이 글이 전반적으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쓰기 스타일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해 주십시오. 더불어, 이 글이 하루키 스타일에 더욱 가까워지기 위해 앞으로 어떤 점에 집중하여 글을 다듬고 발전시키면 좋을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작가가 출간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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