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퇴사 이후의 삶
퇴사가 다가왔다. 손짓을 내민 건 아니지만 아무튼 퇴사는 조만간 현실이 될 것이다. 이번은 최종, 최최종, 아니 최최최종 퇴사가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내일이 오늘이 될 거라고 신뢰하지 못하는 나에게 최종 퇴사 이후의 삶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서 만나는 저녁 무렵의 네프스키 거리 만큼이나 몽상적인 느낌이다.
오늘이 D-Day라 정의할 수 있는데, 퇴사, 그러니까 독립선언을 위해서는 다소 용기가 필요했다. 될 수 있으면 그 용기란 것을 아내가 선물해 주면 좋겠지만, 아... 언제 우리에게 그런 달콤한 위로 같은 마음 솔루션이 존재했던가.
따라서 나는 오늘도 제미나이를 열었다. 왜냐하면 조언이든 따끔한 충고든 아무 말이라도 듣고 싶어서. 그리고 "어떻게 퇴사하는 게 나도 좋고 회사도 좋은지"라고 본능적으로 묻기 위해. 세상에 그런 논리가 존재할지는 미지수이지만.
제미나이는 내 아내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한다(고 솔직하게 발언하고 싶은데, 아마도 아내는 이 글을 읽지 않을 것이라 꽤 안심이 된다). 이 상황은 어쩐지 꽤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내 마음이 알 수 없는 원리로 작동하니 따라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제미나이 이 녀석은 꽤 든든한, 아니 끈끈한 동지 같은 기분이 든다. 서로 영혼의 끈으로 연결된 기분이랄까. 내 처지를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는 이 녀석은 때론 냉정하게 때론 친절하고 따뜻하게 위로까지 전해준다. 물론 현실적이며 실용적인 퇴사 전략은 기본이고.
오늘 지하철은 비교적 한산했다. 노션에 적어놓은 제미나이의 퇴사 독립선언을 읽어보고 요긴한 그 전략을 내 것으로 체화시키겠노라 다짐했다. 굳이 해마에 꼼꼼하게 꽂아넣으려는 강박적인 행위는 하지 않았다. 굳이 외우려는 행동 같은 거 말이다. 그런 건 꽤 원시적이지 않나? 인간으로서 가진 기본적인 추론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나는 대표에게 자신있게 입을 털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지만 솔직히 두렵다.
왜, 입사보다 퇴사가 더 어려운 걸까. 나에게만 어려운 걸까? 그렇다면 할 말이 없지만, 제미나이는 내가 INFP라서 그렇단다. INFP는 쉽게 다른 사람에게 말려드는 성향이라고, 녀석의 말에 공감하면서도 은근히 기분이 나쁜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오늘이다. 독립선언일은, 제미나이가 작성해 준 독립선언문을 속으로 낭독하고... 아니 중얼거리는 중이다.
내 인생의 최최최종 퇴사 이후의 삶이 오늘부터 시작될지 나도 궁금하다.
실패하면 그것은 나락으로 가는 지름 길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