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난도
우연한 선택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결정장애가 있는 나는 주로 지인들의 소개로 책을 추천받는 편이다. 요즘은 친해진 지인분들의 서평을 통하여 감사하게도 좋은 책들을 추천받고 있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고민할 필요 없이 대형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 꽂힌 책들 중에서 정해진 순위에 따라 수동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다양한 선택을 통해서 나에게 주어진 책들을 접하며, 역시 세상엔 내가 모르는 좋은 책들이 너무나 많고 모든 책들을 읽기에 나의 시간이 턱없이 모자람에 쌓인 책들을 “빨리 읽어 버려야 되겠다”라며 마음을 조급하게 다지기도 한다.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깐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깐> - 김난도
이 책도 솔직히 말하자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전시되어 있던 책들 중에서 몇 페이지 읽어보고 충동적으로 골라 뽑은 책이라 하겠다. 자꾸 불어나기만 하는 서가의 책들이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느낌으로 이끌리는 책들이 있는데 이 책이 그러했다.
제목에서 뭔가 바로 느낌이 오지 않는가?
이 책은 용기를 잃고 희망조차도 사라진 이 시대의 아픈 사람들이 다시 일어서고 삶을 놓치지 말고 붙들 수 있는 용기를 다시 심도록 저자 “김난도”의 경험을 통하여 써내려 간 희망의 기록이다.
한 단계 앞으로 전진을 위해서 웅크린 채 잠시 머물러 있는 시간도 소중하다. 저자 “김난도” 는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조언들을 주변에서 쉽게 일어나는 일상적인 얘기들을 통하여 전달하고 있다.
금수저인 김난도 교수가 아픔을 제대로 아는가?
사람들은 저자 “김난도”의 책들에 날이 선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엘리트의 삶을 살아온 사람이 과연 아픈 청춘들의 삶의 애환과 고뇌를 정확하게 이해하겠느냐는 것이다. 힘든 삶을 살아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아픔을 이해하고 그들이 처한 삶을 이해할 수 있겠으며, 그들의 “역경과 고난을 바로 볼 수 있을까”라는 부정적인 시각인 것이다.
단순히 아픔을 견디라고 만 하고, 아픔은 누구나 겪는 것이니 “너도 시간이 지나면 아픔이 사라질 거야”라는 단순한 충고는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용기보다는 포기의 자조 섞인 푸념이 될 수 도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금수저로 대변되는 “김난도”가 처한 엘리트 환경을 비유 삼아 “웅크리게 만들어 놓고 병 주고 약 주는 것이냐”라는 날이 선 역풍을 날리고 있기도 하다. 사회의 기득권 세력인 김난도 교수가 "청년들의 아픈 삶을 아는 것 같이 행세를 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것이다.
기득권으로서의 올바른 시각
그런데,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저자 “김난도”가 적어도 사회의 구조적인 잘못된 점들과, 사회적 갈등에 대한 이해의 시각이 나름 올바르다는 것이었다. “단순하게 아픔을 견뎌라”라는 듣기 좋은 희망 섞인 말들만 던지는 것은 아니었다.
기득권이지만 그거 던지는 말들에는
지식인으로서 반성하는 솔직한 말들이 담겨 있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픈 영혼들의 마음에 정확히 파고들어 그들의 좌절을 가슴 깊이 이해하고 방황에서 용기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현실적인 조언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웅크리고 있는 것은 도약을 위함이다.
웅크리고 있는 것은 앞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한 준비자세에 해당이 된다. 한 단계 도약하려면 도움닫기 자세가 필요하듯 내 몸에 기를 모아 한껏 움츠렸다가 크게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웅크리는 것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전진을 위해서 에너지를 응축하기 위한 시동을 거는 작업이다.
우리는 때로 자신의 한계에 굴복한다. 자신의 능력은 스스로가 이미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없기에 스스로 장애물을 세워, 그것을 넘지 못하는 두려움을 만들어 낸다. 그러나 나에게 숨겨진 잠재능력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
그 능력을 일으켜 깨우면 어떨까?
나의 글쓰기 철학
개인적으로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고 브런치를 이용한지도 약 일주일이 되었다. 블로그와 브런치의 공간은 내가 하고 있는 업무의 기록보다 내 생각과 공감할 수 있는 사람과의 소통이 더 우선이다. 난 언제나 다른 사람과 상호 작용하고 호흡하기를 원했고 그 이끌림은 글쓰기의 밑바탕이 되었다. 자의던 타의던 나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면 하는 소망으로 오늘도 글을 쓰고 있다. 저자 “김난도”의 생각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어쨌든 나는 금수저는 분명히 아니다.!!
삶의 스윙 바이
글은 추진력을 상실한 상황에도 목적지에 데려다 줄 힘이다.
사람도 인생을 살다 보면 추진력을 상실하여 내 마음 둘 곳 없이 기약 없는 방황을 하게 될 때가 있다. 누군가 내 옆에서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거나 “내가 힘든 얘기할 때 말없이 들어주면 좋을 텐데..”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주위 사람들과 서로 의지하여 그들의 사랑, 관심, 우정이라는 “스윙 바이”를 통해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도록 도움을 나누는 것은 어떨까?
인생에 정답은 없다.
고정관념으로 정해진 답을 요구하는 한국 사회가 잘못됐다. 이것은 한국 사회의 병폐다. 누구도 나의 정답에 점수를 매길 수 없고 획일적인 판단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다. 선택한 정답은 나에게만 유효한 것이다.
자극을 받고 견디면 새로운 힘이 생긴다(응내성)
물론 적절한 자극, 즉 적절한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긴장하게 하여 위기를 견뎌낼 에너지를 주는 것이 사실이긴 하다. 그러나 나는 저자의 의견에 100% 공감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근본적인 시스템의 허점은 뜯어고치려 하지 않고, 모든 역경을 당사자의 전적인 책임으로 내몰고 있기 때문이다.
절망에서 헤어 나오기 위하여 고통쯤은 그냥 견디라는 것인데 이미 사회와 그 구성원인 기성세대가 잘못된 시스템을 방치해두고, 자신들은 굴레에서 벗어났다 하여 좋은 소리로 단지 ‘견뎌라’, 응내성을 ‘길러라’라고 만 강요만 하고 있다.
좌절에 빠지지 않도록 내버려두지 말고
성공한 기성세대야말로 시스템과 생각부터 바꿔라
그리운 사람은 너무 멀리 있고, 괴로운 사람은 너무 가까이 있다.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보다 직장의 사람들과 보내고 있다. 직장 동료들은 철저히 이익관계에 따라 모인 사람들이고 내 선택에 의하여 만난 사람들이 아니다. 특히 실적을 거두기 위해 옆 자리 동료마저
때로는 정치적이며 숙적인 관계로 경쟁을 해야 하며, 내가 살기 위하여 다른 사람을 죽여야 하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해야 하는 괴로운 곳이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이렇게 괴로운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같이 숨 쉬는 것은 참기 힘든 스트레스다. 이곳에도 정답은 없다.
행복하세요? 묻는다.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가?
우리는 왜 머뭇거리는가? 행복했던 기억에 집착하여 시간을 어물정 보내기보다는, 안 좋았던 기억을 유지하며
각성한 상태로 있으면서 적당히 긴장한 채 닥칠지도 모를 위기를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삶의 자세일지 모른다.
몇 가지 저자가 얘기한 기억나는 글귀들을 옮겨본다.
제주시의 맛집을 알려줄 온라인 속 친구는
1만명이 넘는데, 현실에서 어깨를 내어주며
당신의 고민을 밤새 들어줄 이가 한 명도 없다면,
그 ‘좋아요’의 의미는 얼마나 무색한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필연적으로 자신의 세계를 부정해야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 한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지난 꿈을 밀어내야 새로운 꿈이 나타난다.
화살처럼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것,
종이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려가는 것도 아니다.
등산로의 계단 오르듯,
차근차근 이어지는 것이 인생이다.
건강이란 질병이 휴가 중인 상태
- 독일 과학자 헬무트 발터
작심삼일을 극복하는 유일한 길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실행하는 것
“글을 쓰는 이유는 그 일이 가장
‘나답다’고 믿기 때문이다.
글을 쓸 수 있게 하는 힘은 바로 권태다.
같은 방법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미친 짓이다. – 아인슈타인
반드시 해야 하지만 선뜻 실행에
나설 수 없는 마음의 숙제를 안고 있을 때
나는 자주 ‘약간 중요한 일’로 도망쳤다.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에서 배운다.
웅크린 것들은 결국 다 일어선다. 하늘을 향해 기지개를 켜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