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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Aug 27. 2016

유재하 -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는 노래하는 시인이었다.




우린 매일 이별을 하고 있다.


아침 출근길, 아직은 덜 영근 하늘에서 찾아온 반가운 손님이 내 옆을 거닐었다. 수줍은 듯 아직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은 보드라운 바람이 내 얼굴을 포근히 감싸 안는다. 아직 정들었던 지난여름과 제대로 이별을 나누지도 못했는데, 불현듯 나를 찾아온 새 손님이 반갑기만 하다. 내가 이토록 차가움을 원할 정도로, 가슴 시린 감정을 그리워했던 사람이었단 말인가? 내가 그토록 미워했던 여름과 이제 끝인사를 맺어야 한다니, 떠난 사람의 빈 기억이 떠올라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가을에게 빈자리를 물려주고 떠나는 여름의 고운 마음씨에게 감사의 편지를 띄운다. 맑은 하늘에 한가로이 떠 있는 구름 한 점에 쪽지를 태워 흘려보낸다. 그동안의 짜증과 불만 섞인 목소리들을 감당해줘서 고맙다고... 다음 여행 때 꼭 다시 함께 하자고... 언제나 이별하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난 우리지만,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잊지 않으려는 나의 마지막 몸부림을 기억해주기 바란다고...


이별 때문에 무너졌던 과거의 처참한 시간들을 돌이켜봤다. 우리의 주변을 스쳐갔던 수많은 인연들, 언제나 가슴 아픈 이별을 주고받아야 했지만, 뜨겁게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추억은 아련했다. 어제까지 바로 내 옆에서 함께 뜨거운 정을 나누었던 계절과 생이별의 통증을 나누었고, 가까스로 버티었던 괴로운 하루도, 진한 참회와 함께 과거의 시간으로 떠나보내며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인간은 이별의 슬픔 앞에서도 왜 항상 처연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괴로워해야 하는가?" "왜 자꾸 흘러내리는 눈물을 거두며 견디라고만 하는가? 그냥 옆에서 위로의 한마디만 건네주면 안 되는가?" 이별이 전해주는 슬픔에 괴로워하지도 못하고, 다시 새 삶에 적응해야 하는 것이 대체 인간다운 삶이란 말인가? 





이성적인 인간이기에 이별의 아픔을 서러워할 여유도 없이, 찢어진 상처를 봉합할 여유도 없이, 뜨거운 눈물을 토해낼 빈틈의 시간도 없이, 또 거짓스러운 내일을 맞이해야 하는 건가? 나이를 먹으면 속절없이 이별이란 감정에도 무덤덤해지는 걸까? 나는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 찰나를 과거로 떠나보내며 아파할 겨를도 없이, 거친 이별의 전언을 반복해야 하는 숙명을 안았다.



나의 헤진 감정의 조각들을 들춰보았다. 너덜너덜해져 버린, 때우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는 과거의 상처들이 보였다. 인생을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맞아야만 하는 그런 폭풍 같은 소나기처럼, 급격히 쏟아부어야만 마음이 겨우 진정이 되는, 눈물의 시절이 그리울 때가 있다. 내 몸을 온전히 빗물 속에 잠겨버리고 그 속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순간을 떠올린다. 그때 나는 어디에 있었고 누구를 바라봤었는지 이제 기억조차 아득하다. 





유재하와의 만남


아주 오래된, 이제 기억에서도 희미한 어린 시절이었다. 가요에 관한 내 선입견을 일거에 무너뜨린 혁명적인 사건이 하나 일어났다. 나의 짧은 음악 인생에 새로운 희망과 고통을 동시에 심어주었던 유재하의 음악 이야기를 하고 싶다. 1987년, 아마도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무렵인 것 같다. 미세한 기억이긴 하지만, 이문세가 유재하의 앨범을 들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유재하의 사후였는지 이전이었는지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다. 그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 뒤통수를 강하게 때리는 전율 같은 충격이 있었다. 당시 인정하지 않았던 한국 음악에 대한 반항심이 한방에 무너지는 경험이었다. 당시 유행가의 느낌과는 차원이 달랐다.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음악의 패턴과 그 상식적인 틀을 깨어버린 듯했다. 비상식적인 코드의 진행, 클래식의 도입, 시도 때도 없이 넘나드는 변조들...... 어린 내가 얼마나 그의 음악적인 깊이를 이해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기존의 가요들의 전형적인 패턴과는 격 자체를 달리하는 것 같았다. 그 시대에 들을 수 있는 수준의 음악이었는지 스스로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즐겨 들었던 Bread의 if, Eric Carmen의 All By Self, Queen의 Love Of My Life 등과 같이 클래식을 배경으로 하는 팝 음악과 맥락이 이어지는 느낌이었다. 즐겨 듣던 명품 팝송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었던 것 같다. 그의 목소리는 비록 어눌했지만, 마치 시인처럼 읊조리듯 평범하게 노래를 불렀는데, 그것이 그의 장점이었다. 그때는 몰랐었던 그의 장점을 수십 년이 흐르고서야 문득 깨닫게 되었다.


 

87년도 대중가요의 흐름


잠시, 당시 87년도에 유행하던 국내 가요의 흐름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87년도 최대의 히트 가요는 아마도 이문세의 4집인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아래의 곡들을 지금 다시 들어보면, 오래된 시간의 흔적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빛바랜, 낡아버린 예전의 느낌을 감출 수 없지만, 유재하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소위 "잘 뽑아낸 발라드"의 느낌으로 세월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멜로디, 편곡, 가사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아래는 87년도에 인기 끌었던 대표적인 대중가요 들이다.


전영록 - 내 사랑 울보
장덕 - 님 떠난 후
이선희 - 알고 싶어요
최성수 - 애수
이치현과 - 벗님들 사랑의 슬픔
김범룡 - 카페와 여인
김학래 - 하늘이여
이정석 - 사랑하기에
이문세 - 사랑이 지나가면 


 

사실 같은 가수가 불렀어도, 시대의 편곡에 따라서 분위기가 달라져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유재하의 원곡은 당시 녹음 그대로지만, 지금 들어도 전혀 생경스럽지 않고, 클래식한 과거와 현대적인 감각이 우아하게 조율이 된 느낌이다. 87년도는 기성 가수들과 이문세를 중심으로 하는 신흥 발라드 세력 간의 새로운 경쟁 구도가 시작되었다. 그 틈바구니 속에서 유재하가 발표한 앨범은 그가 사고로 사망하기 직전까지는 큰 반향을 일으키진 못 했다. 앨범을 내기 전 '조용필'과 '봄여름가을겨울'과 함께 활동을 시작하긴 했지만,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고, 자신이 만들었던 곡들이 예상보다 반응이 없어서 실망을 많이 했다고 전해진다.

 


공교롭게도 그의 사후에, 그의 음악들이 다시 조명을 받게 된다. 그의 음악은 엄청난 사랑을 받게 되었고, 그것은 대중들에게 다시 재평가를 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유작 앨범은 순수한 자신의 힘으로 제작이 되었다. 작사, 작곡, 편곡 등 모든 부분을 그가 직접 담당했다. 앨범에 그가 시도했던 클래식과 가요의 실험적인 접목을 당시 평론가들은 좋은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 그는 시대를 너무 앞서갔다. 그와 함께 클래식을 전공했던 그의 동료들은 그의 음악을 냉정하게 이단으로 평가했다. 가요 앨범을 발표했던 것 자체가 고상한 클래식 문화에 대한 이단의 성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대로 가요 관계자들에도 클래식을 접목한 편곡 방식이 그리 달갑진 않았다. 그는 결국 양쪽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그의 영향


대한민국 음악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선을 그은 인물로 현재는 평가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발라드를 하는 사람 치고, 그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현재의 모든 발라드가 그의 영향권 아래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적은 그의 사망으로 인하여 한국의 발라드 음악이 100년 뒤로 퇴보했다고 언급했다. 음악 평론가 임진모는, "대한민국의 발라드는 이영훈에 와서 문이 열리고 싱어송라이터의 세계, 즉 창작과 작곡 편곡의 세계로 발라드의 지평으로 올린 사람이 유재하이다" 라고 평했다. 



당시에는 최초로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음대생 으로써, 특히 김현식과 같은 기성 선배들에게 아낌의 대상이자 자랑의 대상이었다고 전해진다. 특히 유재하의 사망 소식을 알리던, 이문세의 벅찬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울먹이던 그의 육성이 기억난다. 나중에 얘기를 듣게 되었는데, 이문세는 유재하와 개인적으로 친분이 좀 있었던 것 같다. 남달리 유재하의 가능성을 더 높게 봤던 그였기에 개인적인 슬픔이 더욱 컸었던 것 같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다시 이별의 감정을 들춰내 보고자 한다. 이 노래의 가사는 유재하가 경험한 이별의 감정을 선명히 담았다. 그가 이야기했던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이란 무엇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걷고자 했던 미래였을까? 처절하게 노래하고 싶었던 그의 불굴의 투지였을까? 모든 것이 무너지는 슬픔을 겪었을 때, 그는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스스로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현실에 무너지지 않았고, 멈추지 않았다. 내일도 삶은 이어지며, 살아가야 할 인간이라면, 그 흐름을 거역할 수는 없다. 비록 그가 의지하는 것이 방황일지라도, 그는 방황에 묶일지라도 그 숙명에 순응하려고 했다.





삶은 거짓일지도 모른다. 속마음을 밖으로 드러낼수록 나의 존재는 어두워진다. 투명해야 한다는 요구는 나에게 피곤함을 안겨줄 뿐이다. 그는 어렸지만, 삶에 모순된 거짓들이 난무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헤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들과 주고받았던 거짓말 같은 위안들 속에 스스로 감추지 못 했던 진실들이 담겨 있음을 말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들였을 때, 이미 시간은 저만치 흘러가버렸고 아무것도 주워 담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았다. 보탤 것도 덜어낼 것도 없는 그저 내가 보낸 시간들을 허망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무것도 아닌 무의 상태가 되었다.



나머지 시간들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송두리째 빼앗긴 마음의 공허함은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랑일까? 새로운 음악에 대한 열정일까? 그는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라고 말이다. 과거의 슬픔, 이별의 상처, 방황의 시간을 극복한 자아에게 구원을 안긴다. 그리고 묵묵히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걸어간다. 아마도 그곳은 외로운 길일지도 모른다. 한참 걸어왔는데 틀린 길, 바로잡아야 하는 후회를 안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의 선택은 오로지 개인에게 내려진 숙제다. 그는 질문을 던질 수도 없다. 그 대답은 공허한 메아리로, 빈 대답으로 돌아올 뿐 구체적인 해답은 스스로의 여정을 통해서 찾아야 한다. 인생은 외로운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남들과는 비록 다른 길을 걷는다 하여도 스스로를 믿고 또 가야 할 길을 가려는 굳은 의지를 본다.



하지만 그도 사람이다. 시간이 흘러, 먼 곳에 당도하게 되니 근심들이 하나둘씩 쌓여있었다. 또 극복해야 할 장애물과 같은 멍에들이 그의 시야를 어지럽힌다. 지워버리고 싶은 생각들은 때로 그의 발목을 붙든다. 머릿속에 계속적으로 떠오르는 과거의 생각들, 다시 억지로 지우려는 의지들이 느껴진다. 뒤늦은 후회의 순간이 찾아와 봤자, 이미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억지로 다른 소리로 들으려고 하지 말고, 단지 내가 시각을 바꾸면 될 뿐이다.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에는 화자인 유재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 그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그의 가사에서 드러난 깊은 사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시인이었다. 젊은 나이에 이미 자신의 내면이 전달하는 이야기들을 정확히 끄집어내고 있었다. 





이 노래는 나에게 두 가지 감정을 교차하게 한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포기하라는 뜻""미래를 향하여 나아가라는 뜻", 두 가지 생각을 자아내게 한다. 과거에 얽매이며, 이별의 상처에 아파해봤자 나에게 곪은 상처만 안길 뿐이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새 살로 환원이 된다. 물론 시간이 무조건 상처를 아물게 해주지 못할 수도 있다. 다만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과거의 상처에 고통받거나 과거를 향한 집착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유재하는 자신의 과거의 감정을 감싸 안았다. 스스로 상처받은 내면을 치유한 것이다. 유재하는 시인이었다. 그의 노래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한 포인트로 나는 가사를 주의 깊게 듣고 그 뜻을 각자가 새겨 보길 기대해본다.



끝으로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에서 입상한 그의 후배들이 부른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이다.



붙들 수 없는 꿈의 조각들은
하나 둘 사라져 가고
쳇바퀴 돌 듯 끝이 없는 방황에
오늘도 매달려가네

거짓인 줄 알면서도
겉으론 감추며
한숨 섞인 말 한마디에
나만의 진실 담겨있는 듯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엇갈림 속에 긴 잠에서 깨면
주위엔 아무도 없고
묻진 않아도 나는 알고 있는 곳
그곳에 가려고 하네

근심 쌓인 순간들을
힘겹게 보내며
지워버린 그 기억들을
생각해내곤 또 잊어버리고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이제와 뒤늦게
무엇을 더 보태려 하나
귀 기울여 듣지 않고
달리 보면 그만인 것을

못 그린 내 빈 곳
무엇으로 채워지려나
차라리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그려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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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진 출처 : 플리커(CCL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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