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다 마고이치의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외부로 드러내는 구체적인 행위 예술 중 하나이다. 충분한 생각이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 이것은 입력이 없으면 절대 출력이 나올 수 없는 프로그래밍 세계의 중앙 제어 시스템과 유사한 성격이 많다. 생각들은 머릿속에서 오랜 시간 발효되고 가공되어 추상화된 나의 내면을 구체화시킨다.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심야의 시간, 하루가 또 다른 하루를 예비하는 경계선에 위치할 때, 어떤 기운이 나를 사색으로 인도한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모든 글의 바탕은 생각 속에 담겨있고 그 생각들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글자들이 조합되고 대화의 언어로 표현된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이 세상 속의 생각들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있다. 더 이상 사람의 뇌는 사유를 위한 장치가 아닌, 교감신경의 본능적인 반응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생각이 없는 컴퓨터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컴퓨터에 의존할수록 인간은 사고의 필요성을 잃게 된다. 정해진 규칙과 일정대로 기계적인 삶을 살고 있는 현대인의 진지하지 못한 삶이 떠올랐다.
우리는 현실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살고 있을까? 나는 유난스럽게도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요즘 들어 더욱 깊이 심취하고 있다. 혼자서 책을 읽고, 일을 하고, 생각을 하고, 어쩌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늘어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일상은 혼자 하는 것들로 빈 공간을 꽉 채우고 있다. 내향적인 성향은 모든 일들을 혼자서 해내게끔 나의 외면을 지도한다. 나는 혼자서 생각하고 일을 하고, 글을 쓰고 중요한 일을 결정한다. 저자의 말대로 나는 혼자서 생각하는 시간이 즐겁다. 물론 혼자서 모든 일을 처리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요즘 "혼밥"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혼자 밥을 먹는 사람들이 유행하고 있는데, 그 부분에는 유달리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모순된 나라는 인간이기도 하다.
새로운 책을 한 권 소개받았다. 공교롭게도 혼자 생각하는 의미에 대해서 글을 쓰고 있는 나에게 적당한 책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장서가이자 사색 철학자로 유명한 "구시다 마고이치"의 <혼자 생각하는 즐거움>이라는 책이었다. 이 책은 구시다 마고이치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복간된 그의 사색 산문집이라고 한다. 나는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과 같은 수필을 좋아한다. 일상을 사유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따뜻한 생각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는다. 구시다 마고이치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혼자 생각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세상들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들려주고 있다.
44가지의 생각할 수 있는 주제들을 펼쳐놓고 저자의 개인적인 사색과 그 느낌의 이야기들을 펼쳐 나간다. "P.10 : 인간은 주변의 것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어 무슨 생각을 하든지 가늠할 수 없는 동물에게 온갖 정을 쏟기도 하고 고양이가 개를 위해 눈물을 흘릴 뿐 아니라, 새빨간 사과를 보면 기분마저 이해한다고 착각합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각과 주관적인 관점으로 사물과 동물의 감정을 이해하려 한다. 때로는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고 착각을 하기도 한다. 생각의 범위가 좁고 얕은 지식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려 하는 사람들에게 생각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한다.
인간은 다른 사물을 이해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는 존재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단순하게 추측할 뿐이다.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문제지만, 짧은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 하는 선입견을 경고하기도 한다. 생각에는 즐거운 생각, 괴로운 생각이 존재한다. 생각하는 기능은 우리가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기능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비관적인 생각을 품거나, 회의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 "P.12 : 생각하는 기능은 인간이 보다 나은 상태가 되기 위한 심사숙고 혹은 그를 위한 노력이어야 합니다." 단지 생각만 한다고 하여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자신의 일을 멋있게 하는 사람, 자신의 일, 삶에 대하여 주체적인 의식이 있는 사람의 생각이 더 아름답다.
같은 사물을 관찰하는 사람도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성향에 따라 생각이 모두 다르다. "베르그송 : 일반적으로 인간은 필요에 의해 행동하는데, 필요는 사물을 잘 보게끔 작용하는 게 아니라 도리어 필요 자체가 일종의 베일이 되어 잘 볼 수 없게 차단한다." 생각을 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생각이 사라지는 세상에서 생각의 필요성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필요 이상의 생각은 우리의 시야를 방해할 수 있음을 경고하기도 한다. 너무 많은 생각은 행동을 느리게 할 수 있다. 생각에 잠기다가 실천할 수 있는 타이밍을 놓칠 수도 있다.
"P.35 : 안다는 것을 통해 사람들끼리 따뜻한 무언가를 나누는 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많이 알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고 올바른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얕은 지식의 깊이를 자랑하며 잘 알지도 못하는 사실을 아는 체한다. 알지 못하면서 허세를 부리기 위하여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것처럼 자신을 포장한다. "P.36 : 안다는 것과 아는 척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해봤으면 합니다. 안다는 것에는 알고 싶은 의욕과 호기심이 존재합니다. 아는 척하는 것에는 호기심이 없습니다."
"P.46 : 국민 전체를 강압적으로 끌고 가는 권력이 있다면, 게다가 그것이 분명히 국민을 불행으로 빠뜨리는 잘못된 힘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그에 저항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항할수록 그 권력이 더 강해진다면 저항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뒷걸음질을 치게 됩니다. 그렇다고 저항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이 구절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정치 상황을 떠올리게 되었다. 우리는 현재 자유롭게 상상하고 자신의 의견을 소신 있게 펼칠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을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센 저항의 물결들이 차츰 잦아지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못난 현실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할까? 많은 생각이 들게 하는 문장이었다. 몽테뉴가 얘기한 것처럼 "내 이성은 굽히거나 꺾이지 않는다. 굽히거나 꺾이는 것은 내 무릎이다."라고 강하게 주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놀기 위해서 돈을 버는가, 그런데 나는 지금 충분히 놀고 있고 쉬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인간으로서 행복한가? "버트런드 러셀 : 주말에 번화한 길모퉁이에서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라" 이 구절에서 주말 거리를 지나가는 무표정한 나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내와 함께 하는 평화로운 주말, 나의 표정은 왜 그리도 굳어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는데, 저자의 다음 문장을 읽으면서 나의 처진 현실을 돌아볼 수 있었다. "P.57 : 모두 행복해지려고 주말에 밖으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조금도 행복해 보이지 않습니다. 분명히 돈은 없는 것보다야 있는 것이 낫지만 돈을 진정으로 즐겁게 쓰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아마도 나의 표정이 굳어있는 이유는 여유가 없는 탓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무게와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는 숙명이 내 표정을 어둡게 했을 것 같다.
구시다 선생은 생각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강조한다. 우리는 생각이 사라진 인스턴트 시대를 살고 있다. 생각하는 것인 피곤함으로 치부되는 시대를 산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고, 글을 쓰려하지 않는다. 술에 취하며 웃고 떠들고 다니지만 진지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생각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내면이 고통스럽다. 나 혼자만 열심히 생각하면 무슨 소용일까? 사실 생각은 인간으로서 경솔한 행동을 방지하기 위한 사전의 중요한 기능이다.
"P.282 : 당신은 저녁노을이 지는 하늘을 봐도, 저녁 무렵 항구를 아름답게 밝히는 등불을 봐도, 쇼팽의 녹턴을 들어도,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나요? 이런 아름다운 순간이 당신에게는 그저 매일 보는 하늘이고, 등불이고, 음악이고, 음식일 뿐인가요?" 나는 생각을 좋아하는 유별난 사람임에 틀림없다. 수많은 생각의 과정 속에서 올바른 언행이 나온다고 믿고 있으며, 생각은 나의 글에 바탕이 된다고 믿기에, 생각하는 시간을 사랑한다. 특히 혼자서 나에게 몰입할 수 있는 기회인 생각하는 시간을 존중한다.
나는 앞으로도 사색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나의 내면 속으로 더 깊이 다가서야 한다. 물론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두뇌로 공급시켜야 한다. 나의 활발한 두뇌의 활동을 위하여 건전한 영양졔를 공급해야 한다. 영양제로는 책과 글쓰기다. 좋은 책은 올바른 생각으로 이어지고 다시 좋은 글로 생산된다. 내 머리는 지금도 복잡하다. 수많은 생각들과 세상에 토해내야 할 글감들이 머릿속에서 떠돈다. 혼자서 생각하는 즐거움을 제대로 아는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무료로 제공받았으며, 객관적으로 리뷰를 쓴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