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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대생의 심야서재 Feb 23. 2016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 리뷰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것!

일본의 여성  영화감독 '오기가미 나오코' (72년생)는 우리나라에서 "카모메 식당", "안경", "토일렛" 등으로 마니아들 사이에서 곤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도 그녀의 열혈 팬으로서, 언제나 그녀의 영화를 반기고, 언제 신작이 나올까 싶어 학수고대하며 산다. 내가 늘 그녀의 영화에 깊이 젖어드는 것은 오기가미 나오코만이 연출할 수 있는 '느린 세상', '천천히 사는 것', '내면을 깊이 살펴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통해 나에게 사색의 시간과 함께 삶을 촉촉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한치의 빈틈없이 속도만을 강조하며 살고 있는 우리에게 '느린 것'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 약간은 독특한 시각으로, 이상야릇하지만 천천히 전개되는 이야기의 흐름으로, 재기 발랄하고 엉뚱한 상상을 통하여 사람들이 살아가는 각자의 삶에 농밀하게 접근한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은근히 조급함을 강요당하고 살았다.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것들을 외워야 하고 배워야 했으며, 빨리 먹기 위하여 덜 익은 것들에 집착하고, 물감이 채 마르기 전 도화지에 손을 대고, 심지어는 사업조차도 조급하게 시작을 했다가 몇 년 버티지 못하기도 하였다. 멀리 필리핀에서 만난 원주민들은 다른 말은 몰라도  "빨리빨리"라는 말은 모두 알고 있을 지경이었다. 


왜 우리는 조급함, 속도감, 성급함을  강요당하고 사는 걸까? 빨리 배우고, 익히고, 소모시키는 것들이 삶의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는 사회의 비루한 풍토를 바꿔보려고 노력을 안 하는 걸까? 느린 사람들에게 답답하다 하여 느림보, 굼벵이와 같은 하찮은 별명들을 붙여준 사람들은 누구일까? 누군가 명령한 것들에 무의식적으로 따르듯이,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당위성과 부담감을 마음속에서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진지하게 묻고 싶었다. 조급함에 의지하다 보니 나의 인생은 마치 가속도가 붙어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한 없이 달리고만 있었다. 기관차에 올라탄 승객이 아닌, 철로 바깥에서 내 인생의 스피드를 상대적으로 느껴보니 얼마나 빠른 속도를 내며 내달리고 있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조급함에서 벗어나고, 인생을 느리게 살고, 주위의 것들을 천천히 바라보며 사색하고 싶은 나의 배고픔과 쉼의 열망들이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 <안경>와 같은 특별한 세계 속에 눈빛이 영롱하게 빛난 이유이기도 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의 <안경>에서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방법으로 독특한 스토리 텔링을 통하여 바쁜 나머지 잠시 여유로움도 즐기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느리게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선사하고, 느림의 의미를 스스로 터득하게 만드는 특별한 선물을 전달한다. 그녀는 슬로우 라이프라는 메시지를 영화에서 자연스럽게 연출하며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감독이다.  



그의 대표적인 필모그래피는 아래와 같다.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2012)
토일렛(2010)
안경(2007)
카모메 식당(2006)
요시노 이발관(2004) 


마지막 작품인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를 2012년에 제작한 이후로는 특별한 활동이 없는 것 같다. (아마도 다른 작품을 구상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그녀에게 새로운 소재가 고갈된 것은 아닐까 싶어 걱정이 살짝 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 중 가장 공감대가 높게 형성되는 작품은 바로 <안경>이다. 이 영화는 오키나와 북동쪽의 '요론 섬'이라는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제작되었다. 실제 위치는 아래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영화는 외딴섬에 휴가를 즐기러 온 중년 여성(타에코 : 고바야시 사토미)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묵직한 첼로의 연주와 함께 시작된 '안경'은 이제 나에게 너무나 익숙한 삶의 한 가지 요소가 되었다. 경비행기의 낮은 엔진 소리, 묵직한 첼로의 저음으로 시작하는 '안경', 누구의 인생이든 시작은 묵직함과 경건함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첼로라는 악기가 동원됐을 거라는 뜬금없는 생각을 한다. 어느 정도의 휴가 기간을 보내려고 온 것인지는 정확히 가늠할 수 없지만 그녀의 우직한, 뭔가를 감싼 듬직한 캐리어를 보게 되면, 긴 휴가를 즐기러 온 것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온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그녀가 살던 곳은 어디이며 대체 직업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도시였겠지? 그렇다! 도시라는 시끄럽고 번잡한 곳을 떠나고 싶은 그녀의 어떤 내면이 먼 외딴섬까지 이끌었을지는 모르겠으나, 외부와의 소통까지 단절하고 전화까지 터지지 않는 외진 섬에 찾아온 목적과, 그녀의 선택에 대한 궁금증이 갈수록 증폭되었다. 혼자서 조용히 쉴 곳을 찾은 그녀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것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채 마음 한구석에 남은 마음의 짐은 버릴 수 없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녀가 찾은 민박집의 이름은 '하마다'이다. 간판이 너무 작아서 좀체 눈에 뜨이지 않을 정도다.  민박집주인은 손님이 많아지게 되면 분명 번잡하게 될 것이니, 이 정도 작은 크기면 딱 좋겠다는 마음으로 간판이라 하기에 부끄러울 것을 작게 만들어 붙여 놓았다. 사람들이 찾아주길 바라지 않는 주인의 마음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굳이 찾아와 주는 이 없어도 외로움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친구가 되어주니깐, 여행객 따위는 굳이 필요 없다는 단단한 멘탈을 뜻하는 것일까? 이 주인 뭔가 범상치 않다. 


민박집의 주인인 '유지'는 그녀의 짐 가방을 옮겨다 주겠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옮겨주지 않는다. 나중에 타에코가 한숨 섞인 표정으로 그녀의 캐리어를 질질 끄는 장면이 나온다. 유지는 타에코에게 삶(캐리어에 담긴 마음의 짐)을 버리라고 충고하지만, 그녀를 괴롭히고 번뇌하게 만드는 삶은 그녀의 다리를 여전히 붙들고 있었다. 결국 그녀의 짐은 스스로 버리던지 계속 가지고 다닐 것인지, 선택은 스스로가 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는 것이다. 내 짐을 남이 대신 덜어줄 수 없다는 것일까? 결국 인생의 여러 가지 선택의 최종 판단은 개인의 몫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은 유지와 타에코의 만남을 통해서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장면에도, 수많은 인생의 의미들을 숨겨 놓았다. 작은 장면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인, 그녀의 소중한 메시지를 발견하는 건, 인생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나 같은 특이한 관객의 심장에 익숙한 것들이었다. 



섬에서 휴식을 즐기러 온 타에코는 자신에게 '사색'의 재주가 있는지 자신도 인식하지 못한 채, 섬과 서서히 하나로 동화되어가는 이야기를 보여준다. 혼자서 시간을 덧없이 보내러 온 타에코, 그녀는 섬사람들과의 소통을 거부한다. 팥빙수를 파는 무표정한 할머니인 '사쿠라'의 반갑지 않은 아침 인사를 받게 되는데, 타에코는 자기에게 생경한 이 섬의 독특한 관습이나 문화 때문에 혼란스러운 감정과 불쾌감을 내비치기도 한다. 또한 전체 섬주민들이 모두 해변가에 모여서 이상 야릇하면서도 괴상한 동작의 메르시 체조라는 것을  일사불란하게  실시하는데, 이에 대한 제안을 노골적으로 거부하기도 한다. 




처음 찾은 관광객 입장에서는 참으로 이상한 섬이 아닐 수 없다. 섬에 갑자기 찾아온 사람과 마주치자마자 팥빙수를 권하고,  민박집주인인 유지는 손님에 대해서 특별한 관심도 없고, 오히려 자신을 찾는 것을 귀찮아하고, 자신의 방에 무례하게 찾아와서 아침마다 깨우는 할머니, 이상 야릇한 체조를 아침마다 반복하는 주민들, 그녀의 상식으로는 일상적인 이 섬만의 문화를 이해하기가 힘들어 보였다.

 

긴박하고 스릴 넘치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의 진행이 느리기만 한 이 영화는 어쩌면 지루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바쁜 일상 속에서 극적인 스토리라고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 단순한 이야기의 플롯이지만, 오히려 이러한 단순하기 짝이 없는 느슨한 스토리에 더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발휘한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타에코는 섬에 점차 적응해나가게 된다.  



처음에는 이해 못하던 그들이었지만, 섬에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도 모르게 생애 최고의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이해할 수 없었던 '팥빙수'는 그녀에게 최고의 시원함과 달콤한 맛을 깨닫게 해준다. 또한 돈이 아닌 초등학생의 예쁜 그림도 시원한 맛에 대한 대가가 될 수도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물질적인 가치가 필요하지 않은 섬, 내가 줄 수 있는 따뜻한 정이면 다 될 것 같은 섬. 그 섬의 가치가 부러웠다.


팥빙수에 대한 지불수단은 시장에서 장 보고 온 물건이 될 수 도 있고, 멋들어진 만돌린의 화음이 될 수 있다. 가장 보편적인 수단이었던 '돈'이라는 가치가 그들만의 세상에서는 무용지물이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타에코가 그렇게 동화되고  젖어들기까지는 여러 고비가 있었다. 영화 중반에서 타에코는 이상한 민박집의 행태와 사람들에 싫증을 느끼고 다른 민박집으로 떠나기도 했다. 아래는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한 장면이다.

  


다른 민박집으로 떠나는 그녀를 태워준 고등학교 교사와의 차 안에서의 대화 장면인데, "왠지 불안해지는 지점에서 2분 정도 더 참고  지나면......"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나는 이 장면을 이렇게 해석해보았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너무나 앞만 바라보고 달려간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직장 생활을 하고, 그 대가로 더 많은 연봉과 더 높은 지위를 보장받으려고 노력한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더 많이 배워야 하고, 더 많이 일해야 하고, 남들보다 앞서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의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은 희생당하게 된다. 소위 저녁이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잠시 쉬어야 하고, 숨도 고르고 해야 하지만, 시간은 우리에게 잠시의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무조건 앞만 보고 무작정 달리는 게 정답일까? 그렇게 살다가 자신도 모르게 인생의 종착지에 다다를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덧 불안해졌음을 알아차렸을 땐, 너무나 늦어버린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익숙하다고 생각하고 지금껏 무작정 달려왔던 길이 정답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잠시 숨 고르고, 한숨 쉬어가면 다른 길로 돌아갈 수 있거나,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삶의 여정이 나타나지 않을까? 나는 영화를 보고, 한 참 시간이 흐른 뒤 사색하는 도중, 이 장면이 의미하는 뜻이 불현듯 떠오르게 되었다. 나에게는 생경하지만, 그들에겐 익숙한 사색이라는 시간, 혼자 있는 시간, 홀로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아래는 타에코가 섬에 동화되어가는 결정적인 장면이다.  



민박집을 떠나겠다고 호기스럽게 나섰던 그녀였지만, 바꾼 선택이 오히려 더 나쁜 선택임을 깨닫고, 뒤늦게 돌아가고자 하는 여정을 선택한 그녀에게 구세주와 같은 사쿠라가 찾아온다.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다. 다만 다시 돌아갈 수 있는가? 잘못된 길도 다시 돌아가면 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전달한다.


친절한 사쿠라는 타에코를 자전거 뒤에 태우지만 절대 무거운 캐리어는 허락하지 않는다. 그녀는 드디어 자신의 굴레를 벗어 버리는 선택을 감행한다. 쓸데없는 짐은 비우라는 뜻이지 않겠는가? 그녀는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우리가 늘 버리지 못하고 품고 다니는 마음의 짐일지도 모른다. 이 장면에서 타에코는 중대한 결정을 내리고 인간의 세상과 자신을 마지막으로 연결해주던 고리를 과감히 끊어버린다. 자기와 세상의 모든 것을 연결해주던 마지막 매개체였던 연을 과감히 끊어버리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위의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그 후 타에코는 섬사람이자 섬주민으로 거듭나게 된다. 점차 그들의 삶에  젖어들게 되고 그녀가 본래 가지고 있었던 사색의 매력에 깊이 빠져들게 된다. 사쿠라가 건네는 달콤한 팥빙수와 메르시 체조가 자연스럽게 되고, 늦잠도 자연스러워지게 된다.

  



너무나 맛있어 보이는 팥빙수다. 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 추운 겨울이지만 팥빙수가 더 간절해지는 건 왜일까?


팥빙수를 맛있게 먹기 위해서 팥을 삶은 과정도 기다림의 과정이고, 주인공인 타에코를 찾아온 젊은 학생도 교수가 돌아오길 바라는 기다림이겠고, 사쿠라에게 시원한 팥빙수의 보답인 목도리를 전해주기 위한 생산의 과정도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기다림이라고 생각한다. 팥빙수의 댓 가를 지불하기 위한 뜨개질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오랜 숙성의 기간이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 방식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도 없고, 모든 선택의 자유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다. 이 섬에서 조급함은 허용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른 뒤 섬을 다시 찾은 주인공들은 조용히 사쿠라를 맞이하는데, 사쿠라는 타에코가 선물한 목도리를 두르고 나타난다.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이다. 더운 남쪽 날씨에 어울리지 않은 목도리지만 타에코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그녀만의 소박한 방법일 것이다.

  

언제부터 그들이 섬에 있었고, 왜 섬에 있었는지는 관객들에게 궁금할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감독이 던져주는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러한 뒷 배경 이야기는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바쁜 시간이 흘러가는 도시의  생활보다는 아주 가끔 일지는 모르겠지만, '요론 섬'에서와 같이 복잡한 것들을 떠난 시간이 정지된, 외딴곳에서 사색의 시간을 통해서 자신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고, 나는 누구이고 무슨 의미로 살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지 생각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영화의 요론 섬의 느린 시간처럼, 한없이 느리게 살아가는 삶이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보다 의미가 있다. 그러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 사쿠라나 타에코와 같이 인생의 동반자를 생각하지 못한 난데없는 곳에서 우연히 만날 수도 있다. 목도리는 그들을 따뜻하게 연결하는 고리가 되었고, 팥빙수는 시원하게 그들을 녹이는 재료가 되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가슴 시원함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줄 수 있을까?


영화에서 사쿠라는 자신을 희생해서 타에코의 짐을 나누었다. 서로가 믿고 따르는 과정 속에서 신뢰가 구축되고, 긴밀한 관계가 성립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누군가를 믿고, 유심히 바라 보고, 가만히 기다리는 과정이 중요할 것 같다. 그렇게 천천히 기다리다 보면 서로가 함께 동화되고 젖어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어느 인간관계에서나 모두 통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어쩌면 가장 지루한 것이 나에게는 가장 보람된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


섬주민들은 모두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것이 그들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공통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보는 세상은 안경으로 함께 보고 더 깊게 잘 볼 수 있는 능력을 심어줬을지도 모른다. 우리도 서로를 연결해주는 안경과 같은 매개체를 분명 가지고 있을 것이다. 바쁠 때 잠시 일을 떠나서, 속도를 떠나서 <안경>과 같은 느린 영화에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나는 이 영화를 거의 한 달에 한번 정도는 보게 된다. 그냥 멍하게 보다가 멍하게 사색하며,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잠시 시간을 덧없이 보낸다. 나만의 힐링 방법이랄까......  많은 위로를 이 영화를 통해서 받고 느끼고 있다.

  

언젠가 '요론섬'에 찾아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꼭 그렇게 하고 싶다.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은 언제든지 나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이다. 달리는 것을 잠시 멈추고, 느림을 맛보도록 하자!


중요한 건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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